흥행 실패해도 상장하는 기업들.."IPO 아니면 자금조달 어려워"
2022.10.12 06:00
수정 : 2022.10.12 08:3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하반기 들어 몸값을 낮추면서 기업공개(IPO)를 진행하는 기업들이 늘었다. 기대 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자금 마련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증권가의 분석이다.
■'겸손한 공모가' 줄 잇는 하반기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의약품 제조업체 선바이오는 이달 5일 코넥스시장에서 코스닥시장으로 이전 상장했다.
코넥스에서 1500억원이 넘는 시가총액을 보이던 선바이오는 코스닥으로 상장한 직후 1300억원대로 줄었고, 지금은 1100억원대로 내려 앉았다.
문제는 희망밴드보다 낮은 공모가로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이다. 올해 3·4분기 기관 수요예측을 거친 16개 기업의 공모가를 보면 △공모가 상단을 초과한 기업이 3개(18.8%) △상단에 확정된 기업이 6개(37.5%) △하단에 확정된 2개(12.5%) △하단 미만이 5개(31.3%)으로 나타났다. 하단 아래에서 공모가를 확정한 기업의 비중이 2020년 이후 가장 높다.
하반기 기대주들도 몸값을 한껏 낮춰 IPO를 실시했다. 2차전지 분리막업체인 더블유씨피(WCP)는 공모가를 희망밴드(8만~10만원) 하단보다 25%나 낮은 6만원으로 정하고, 공모물량도 900만주에서 720만주로 줄였다. 그럼에도 상장(9월 30일) 이후 주가가 떨어지면서 3조원 이상으로 예상되던 시총이 1조30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의 비상장기업) 상장'에 도전했던 쏘카 역시 희망밴드(3만4000~4만5000원) 상단 대비 38% 낮은 2만8000원에 IPO를 진행했다. 쏘카의 시가총액은 이날 기준 5726억원이다. 이 밖에 오픈엣지테크놀로지, 에이프릴바이오, 루닛 등도 희망밴드보다 낮은 수준에서 공모가를 확정했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공모가 상단 이상이 56.3%에 그쳤다"며 "주가 조정으로 IPO 종목에 대한 선별작업이 진행되면서 공모가에도 변동성이 확대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고민 깊어지는 컬리·케이뱅크
몸값을 낮춰가며 IPO에 도전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 증권가는 '자금 조달'을 원인으로 꼽았다. 금리인상 기조로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 등 다른 자금조달 환경이 여의치 않아서다. IPO가 유일한 조달 창구로 남으면서 재정이 열악해진 기업들이 공모가 할인을 불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쏘카의 경우 적자를 벗어나지 못해 유니콘 특례상장 절차를 통해 상장 문턱을 넘었다. 올해 1·4분기 기준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361억원)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안정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IPO를 통한 대규모 자금조달이 이뤄져야 했다.
WCP는 올해 상반기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내년 유럽 현지 생산을 추진하면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WCP는 공모자금 중 구주매출을 제외한 전부를 국내외 공장 증설에 쓸 계획이다.
고민이 깊은 곳도 있다. 컬리와 케이뱅크 등 자금조달이 시급한 예비 상장사들이다. 지난 8월 상장 심사를 통과한 컬리는 내년 2월, 지난 달 상장 심사를 통과한 케이뱅크는 내년 3월까지 공모 일정을 마쳐야 한다.
'IPO 흥행'과 '자금조달'의 딜레마는 이해당사자 간의 의견 충돌로 이어지면서 일정과 공모가 조정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시장 분위기를 감안해 공모가를 낮출 수도 있지만 쉽지 않은 문제"라며 "주관사는 어떻게든 상장을 추진하려고 하나, 기업과 구주주는 최대한 높은 가격을 받으려는 탓에 조율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