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위 배우가 내게 말을 걸어 왔다..볼만한 '이머시브' 공연

      2022.10.21 06:00   수정 : 2022.10.21 06: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프랑스 문학평론가 롤랑 바르트는 에세이 '영화관을 나오면서'에서 영화 자체보다 관객이 영화를 보는 극장의 어둠에 더 주목했다. 외부의 현실과 차단된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관객은 일종의 최면 상태처럼 영화의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2017년 제70회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경재부문에 초청 받자 전통주의자들은 암실에서의 경험이 빠진 '넷플릭스' 영화는 부적절하다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작품 자체보다 이를 감상하는 관객에 초점을 맞춘 이 같은 변화는 영화뿐 아니라 공연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종전처럼 배우와의 거리, 높낮이만 다른 좌석이 아니라 무대 위에 객석을 설치해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걸고, 관객이 작품의 일부로 녹아드는 '이머시브(몰입형) 공연'이 떠오르고 있어서다.

■금주령 내린 조선, 관객은 밀주방 손님으로
18세기 조선, 임금은 금욕을 강조하며 백성들에게 '술'과 '이야기'를 법으로 금지시킨다. 이야기에 대한 욕구는 법으로 막을 수 없는 법. 부녀자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몰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금란방'에 모여들고 금란방에서는 차로 위장한 술도 판다. 모순적인 임금은 매일 밤 사대부 김윤신에게 '뜨거운' 소설을 읽힌다. 하지만 김윤신의 무미건조한 낭독에 대노한 왕은 조선 최고의 이야기꾼 이자상이 있는 금란방에가서 김윤신에게 재밌게 이야기 하는 법을 배워오라고 어명을 내린다.

서울예술단이 2018년 초연 이후 4년 만에 다시 국립정동극장에서 무대에 올린 '금란방'은 이렇게 시작한다. 금란방은 작품의 주 무대인 이야기방이자 조선시대 법을 어기는 사람들을 규제하는 관리직의 이름이기도 하다.

기존의 극장형(프로니시엄) 무대에서 관객이 참여하는 '이머시브' 공연의 대표적인 사례다. 공연 시작 10분전 관객석을 지나 무대로 올라가자 한 배우가 손을 내밀고 에스코트를 해준다. 공연 중간 중간 무대석의 관객은 '운명의 종소리'라는 시그니처 음악에 맞춰 LED 술잔을 높이 들고 건배사를 취한다. 극중 조선 최고의 이야기꾼 이자상은 열애 소설 이야기를 낭독하다 "금녀는 과연 금강(여성), 불괴(남성) 중 누구와 사랑에 빠질 것인가"라고 관객에게 묻는다. 관객은 무대석에 마련된 엽전으로 즉석 투표를 하고, 투표 결과에 따라 금녀의 사랑은 '남녀상열지사'가 되기도 '녀녀상열지사'가 되기도 한다. 공연은 11월 13일까지 국립정동 극장.


■2022 구운몽? 피지컬 퍼포먼스 '잠시 놀다'
서울예술단은 올해 대표 레퍼토리 '금란방'과 함께 국립공연단체로서 올해 새로운 시도에 도전했다. 이달 8일부터 오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진행 중인 피지컬 퍼포먼스 '잠시 놀다'가 그것이다. 우리나라 대표 고전소설인 '구운몽'을 모티브로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세계를 무대위에 재현한다.

서울예술단 이유리 단장은 "공연계에서도 최근 장르의 융복합, 논버벌(대사가 없는) 공연 등 총체 공연이 대세가 되고 있다"며 "서울예술단도 국립단체로서 민간에서 하기 힘든 새로운 시도와 실험의 첫 발로 '잠시 놀다'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서울예술단은 무용, 관현악 등 동일한 장르의 예술인이 모인 다른 국립단체와 달리 한국무용, 뮤지컬 연기, 사물 타악 단원 등 3종류의 단원이 함께 모여있다. '잠시 놀다'는 한국무용 단원들과 함께 작품의 구성에 조각가 권오상(무대 연출 및 소품),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음악), 세계 최정상 조명 디자이너 타카유키 등이 참여했다. 최근 공연계 트렌드에 맞춰 미술, 음악, 조명, IT기술 등이 결합해 '꿈의 무대'를 시도한다.

관객석과 달리 무대석에서는 배우들의 볼에 흐르는 땀방울과 호흡, 손가락과 발가락의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볼 수 있는 또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과도하게 추상적이고, 무용에 대한 감상이 어려운 관객을 고려해 음악과 함께 시각효과, 때때로 텍스트를 곁들여 이해를 돕는다.


무대가 끝나고 객석에 불이 켜지면 관객 역시 '여러가지 의미(?)'로 한 잠 꿈을 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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