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흑자 전환, 내년 2분기 지나야 가능… 러·우 전쟁이 변곡점 [김홍재의 이슈인사이드]

      2022.10.23 18:54   수정 : 2022.11.11 17:03기사원문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과 환율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무역수지 적자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이에 대해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지난 21일 파이낸셜뉴스와 만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러·우 전쟁) 등 무역적자 요인이 해소되더라도 글로벌 경제 정상화에 8개월 정도가 소요되고,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는데는 4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사실상 올해 연말까지 무역적자가 계속될 수 밖에 없고, 러·우 전쟁이 연말이나 내년 초에 끝나더라도 내년 2·4분기 이후에나 무역흑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얘기다.

■올 연말까지 무역흑자 전환 기대 어려워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6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0월 1~20일 무역수지(통관 기준) 적자가 49억5400만달러를 기록하면서 7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확실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원·달러 환율은 1450원을 위협하고 있으며, 올해 한국의 성장률은 2%대에서 내년 1%대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연말까지 무역흑자로 돌아서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조상현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우리나라가 무역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재의 3가지 핵심 과제가 해결돼야 한다"면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강달러가 언제 해소될지, 러·우 전쟁이 언제 끝날지, 이 두 가지 여파로 위축된 글로벌 수출 수요가 언제 되살아날지에 따라서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는 시점도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원장은 "이들 3가지 변수 중 하나가 해결되더라도 병목구간이 해소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연말까지 무역흑자 전환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3가지 변수 중 강달러와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내년 상반기에 종료되면 글로벌 수요가 되살아나 하반기부터는 우리나라 무역수지도 흑자로 돌아서 가능성이 있다"면서 "특히 러·우 전쟁이 연말이나 내년 연초에 끝나면 무역흑자 전환 시기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우크라 전쟁이 무역흑자 변곡점

결국 러·우 전쟁이 언제 끝나느냐가 무역적자 해소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만기 부회장은 "우리나라 무역적자의 원인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불안, 미국과 중동 산유국 간 갈등으로 본다"면서 "이 중 가장 큰 원인은 러·우 전쟁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러·우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인지에 따라서 글로벌 경제와 우리나라 수출 정상화 시기도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수출은 세계 경기 둔화 등 어려운 여건에도 지난 9월까지 23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러·우 전쟁 장기화로 인한 에너지 수입 증가세와 국제유가 폭등, 환율 급등이 겹치면서 무역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1~8월 국내 3대 에너지원인 원유, 가스, 석탄의 수입액은 1205억달러로 지난해 총수입액(1072억달러)을 이미 넘어선 상태다.

6월을 고점으로 국제 유가가 하락세를 보였으나 러·우 전쟁 장기화, 대러시아 제재,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갈등 등으로 추가 상승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해 있다. 이달 초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 협의체 '오펙플러스'(OPEC+)가 대규모 감산에 합의한 이후 국제유가가 다시 상승 추세로 전환돼 배럴당 80~90달러대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무역적자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20일까지 누적 무역적자는 338억4300만달러로 무역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56년 이래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무역적자를 역대 최대인 480억달러(약 68조원)로 전망했는데. 이는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무역적자(206억2000만달러)의 2.3배에 달한다.

■대미 수출비중 15.8%까지 확대를 기회로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러·우 전쟁 종식 등 대외 불확실성이 해소되기만을 기다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와 관련, 올 들어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줄어든 반면 대미 수출 비중이 늘어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미중의 글로벌 패권경쟁이 격화되면서 반도체, 이차전지, 전기차 등 첨단산업 분야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의 활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규모 및 비중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미 수출은 전년 대비 29.4% 증가한 959억달러를 기록했으며, 올해 1~8월 수출도 전년동기 대비 17.1% 증가한 737.1억달러로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8%까지 늘었다. 2018년 대미 수출 비중은 6.0%에 불과했다. 반면 올 들어 8월까지 대중 수출 비중은 전체 수출의 23%로 지난해의 25.3%보다 줄었다. 2018년 대중 수출 비중이 26.8%에 달했던 것과 대비된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입 시장인 미국에서 한국, 베트남, 대만의 점유율이 동반 상승한 가운데, 특히 한국과 대만 간 격차는 최근 5년간 1.24%p에서 0.63%p까지 좁혀졌다. 수출유사성 지수도 0.351에서 0.373으로 높아지면서 두 나라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과 일본의 대미 시장 점유율은 각각 3.76%p, 1.07%p 하락하고 한국과의 수출유사성 지수도 하락했다.

대중 수출 의존도를 줄여야 하지만 무역적자의 가장 큰 원인이 대중 수출 감소라는 점에서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 10월 1~20일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 대한 수출이 16.3% 급감했다. 대중 수출이 이달까지 줄어들면 2020년 1~5월 이후 2년여 만에 다섯달 연속 감소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대중 무역적자의 원인은 올해 2·4분기 중국의 성장률이 전년동기 대비 0.4%에 그치는 등 경기둔화와 함께 이차전지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수산화리튬 등 수입 공급망 편중, 대중 수출 감소에 기인한다"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핵심 소재의 수입선 다변화 및 국산화, 중국과의 기술격차 유지, 수출선 다변화 및 현지 맞춤형 수출마케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력품목 초격차 유지·수출 경쟁력 높여야

한국이 대외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수출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력 품목에서 초격차를 유지하고, 하이테크 제품 등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우선 전기차, 반도체 등 수출 주력품목에서 초격차 유지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 5년간 미국 자동차 수입시장에서 일본의 점유율이 2.23%p 감소한 데 비해 한국의 점유율은 1.47%p 증가하면서 양국의 점유율 격차도 2017년 10.54%p에서 2021년 6.84%p로 축소됐다. 특히 고부가가치 차종인 SUV를 중심으로 차종이 다양화되고, 프리미엄 브랜드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 반도체도 같은 기간 일본과 중국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각각 -1.22%p, -16.59%p를 기록한 반면 한국은 5.34%p 늘었다.

주력품목에서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이테크 제품의 수출경쟁력도 높여야 한다.

특히 반도체는 세계 하이테크 교역의 30.9%를 차지하며 연평균 5.5%로 성장하는 핵심 품목으로, 앞으로도 4차 산업혁명 및 디지털 전환에 따라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의 반도체 업계는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에 역량이 집중돼 있다"면서 "향후 점유율 확대를 위해서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후공정(패키징, 테스트) 등 시스템반도체 전·후방 공정에서의 역량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의약품, 항공우주 등 관련 제품의 수입이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에 바이오, 로봇, 드론, 도심항공교통(UAM) 등 새로운 수출 동력을 확보해 반도체에 편중된 수출구조를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완화, 인재양성 및 기업의 연구개발(R&D)·인프라 투자가 절실하다. 무엇보다 민관의 인재양성 노력이 필요하다. 차세대 반도체 등 5대 신산업에서 향후 10년간 4만4000명의 인재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적 수출성장 프레임서 벗어나야 할 때"

우리나라가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전체 무역규모에서 무역적자 비중이 크지 않은 만큼 이제는 양적성장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수출만 놓고 보면 올 들어 20일까지 누적 수출은 5573억4000만달러로 지난해 동기 대비 11.0% 증가�L다. 두자릿수 성장세는 독일, 일본 등과 비교해도 선방한 것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사상 첫 7000억달러 돌파가 예상된다.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올해 수출액을 전년 대비 9.2% 증가한 7039억달러로 예측했다.


조 원장은 "우리나라 전체 무역규모에서 무역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만큼 과거와 같이 양적 성장만을 강조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면서 "이제부터는 국가 단위의 수출 프레임에서 벗어나 전 세계를 아우르는 글로벌 상거래 관점에서 한국 기업들이 얼마만큼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느냐를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9월까지 무역규모는 1조787억달러로 전체 교역에서 무역적자(289억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7% 수준이다.
지난해 상반기 대비 올해 상반기 무역적자 규모만 놓고 봐도 일본(-724억달러)과 독일(-722억달러)이 한국(-279억 달러)보다 더 많다.

hjkim@fnnews.com 김홍재 산업부문장
hjkim@fnnews.com 김홍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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