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근현대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남긴 것은
2022.10.24 18:33
수정 : 2022.10.24 18:55기사원문
일제강점기 자신의 가족을 죽인 친일파 처단에 나선 80대 노인의 복수극 '리멤버'(26일 개봉)부터 재일교포 양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프와 이데올로기'(20일 개봉) 그리고 변호사 출신의 재미교포 전후석 감독의 '초선'(11월 3일 개봉)이 그것이다.
세 작품은 아픔의 역사를 딛고 현재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역사는 그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일깨워준다.
극영화 '리멤버'는 노인 필주가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기 전 평생을 계획한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 단짝 동료였던 20대 '인규'(남주혁)는 운전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영문도 모른채 복수극에 동행한다. 둘은 빨간 포르셰를 타고 질주하는데 "노인의 느린 움직임과 달리 복수의 감정은 격하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리멤버'는 비극적 역사를 딛고 선 노인과 그 역사의 자장 안에서 현재를 사는 청춘의 동행을 통해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를 다시금 돌아보고, 세대간 공감과 화해를 도모한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양영희 감독의 '디어 평양'(2005), '굿바이, 평양'(2009)을 잇는 가족 3부작의 완결편이다. '디어 평양'이 조총련으로 활동한 아버지의 삶을 들려줬다면,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제주 4·3 생존자인 자신의 어머니와 일본인 남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때 아버지와 밥도 같이 먹지 않았던 양 감독은 '오로지 가족을 이해하고 (가족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그는 "왜 남한 출신 부모는 북한을 조국이라고 여기며, 세 아들까지 북한에 보냈나 궁금했다"며 "'디어 평양' 이후 '수프와 이데올로기'까지 26년이 걸렸다"고 돌이켰다. 이번 작품에서 어머니는 일본인 사위를 위해 큰 솥을 꺼내 삼계탕을 끓인다. 세 사람은 '수프'를 나눠 먹으며 식구가 되고, 2018년에는 나란히 제주 4.3 70주년 추모식에 참석한다.
지난 2020년, 미국의 한국계 여성 연방 하원의원 메릴린 스트릭랜드(한국명 순자)가 한복을 입고 취임선서를 해 화제가 됐다. 한국전쟁 당시 흑인 미군 출신 아버지와 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조국에서도 환대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을 딛고 자신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초선'은 스트릭랜드를 비롯해 데이비드 김, 미셸 박 스틸, 앤디 김, 영 김 등 다섯 정치인이 2020년 선거에 도전한 이야기다. 당시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한국계 후보가 출마했고 이중 4명이 당선됐다.
이 작품은 1992년 재미교포 사이에선 '사이구(4·29)'로 통하는 LA 폭동이 한인사회에 어떤 영향을 줬으며, 이들은 또 어떻게 이민자로 성장하고 왜 미국 정치계에 뛰어들었는지를 그린다. 한반도평화연구원 금초롱 연구원은 "감독의 전작 '헤로니모'가 디아스포라의 정의에 대한 영화였다면 '초선'은 그들의 역할에 대한 영화"라고 평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