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올인 vs 양다리' 둘중 하나는 혹독한 대가 치른다

      2022.11.01 05:00   수정 : 2023.01.11 16:3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테슬라 비켜라."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전기차(EV)시장의 '테슬라 1강 체제'를 허물어뜨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면서도, '전기차로 올인할 것인가'를 놓고선 기류가 엇갈리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현대차그룹, 폭스바겐그룹이 전기차 대세론을 만들어가고 있는 반면, 도요타와 BMW는 전기차 전환이 지연될 것이라며 내연기관차의 기술·생산주도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이다. 전기차 올인 전략과 내연기관차와의 양다리 전략 간 한판 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글로벌 1위 도요타 아키오 "전기차가 능사 아냐"

글로벌 시장 자동차 판매 1위 기업인 도요타의 전기차 전략은 현재로선 갈팡질팡이다.

도요타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CEO)은 지난 10월 30일 탈탄소화를 주제로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실시한 한 강연에서 자동차 업계의 탄소 중립(탈탄소화)에 대해 "여러 선택지가 있다"면서 "전기차는 중요한 해결책의 하나이나, 모든 것을 능가할 만한 선택지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미국,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의 전기차 일변도에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자동차 전문 판매상들과 만난 자리에선 "예상보다 전기차 전환 속도가 자율주행차처럼 더디게 진행될 수 있다"며 전기차 전환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놨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기술 주도권을 내려놓고 싶지 않다는 점, 나아가 전기차 배터리 핵심 원료인 리튬과 니켈 공급이 향후 5~10년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속도조절론의 이유로 해석된다. 여기에 엔진차가 주는 소위 '운전하는 맛'에 대한 도요다 사장 개인의 강한 애정도 거론된다. 그렇다고 해서 도요타가 전기차 제조 역량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배터리, 모터 등 전기차 관련 특허가 세계 1위다. 만들려면 만들수 있지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나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앞다퉈 전기차 선점 전략을 펼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행보다.


전기차 늑장 대처라는 세간의 비판이 불편했던지 도요다 사장은 지난해 말 '전기차·배터리 전략 설명회'를 열어 양산 중인 bz4x 외에 16개종의 전기차 콘셉트카를 끌고나와, "이래도 전기차에 진심이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믿어달라"는 그의 발언에도, 시장은 여전히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카 등 내연기관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의 한 자동차 전문가는 "현대차 아이오닉5가 지난해 일본시장에 진출했을 당시, 시승을 해보고, '이거 대박이다'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도요타의 누구도 아이오닉5 시승에 나서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도요타의 첫 전기차인 'bz4x'는 바퀴가 빠지는 결함으로 일시 생산이 중단되는 굴욕이 발생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도요타 내부에서 위기감이 증폭된 것은 최근 일이다. 전기차 1위 미국 테슬라를 따라잡기 위해 기존 전기차 전략을 완전히 '리부팅'하는 혁신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내부 관계자는 "전기차 수요를 오판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도요타 핵심 인원들은 "전기차 보급이 예상보다 훨씬 가파르고, 테슬라 등 경쟁사들이 신기술을 도입하는 속도도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당초, 전기차 수요가 이토록 커질 지 모르고, 전기차를 기존 가솔린·하이브리드 모델과 같은 조립라인에서 생산할 수 있는 'e-TNGA' 플랫폼으로 생산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이 플랫폼을 가지고선 비용 경쟁에서 테슬라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내부 판단이 있었다.

BMW, 내연기관차+전기차 같은라인 생산

도요타는 사실, 독일 BMW가 있어서 덜 외로운 상황이다. BMW는 현재 전기차 전용라인이 아닌, 혼류 생산(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같은 라인에서 생산)을 고수하고 있다.

전동화에 대한 소극적 태도로, 투자자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으나 BMW는 당분간 내연기관 사용이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생산을 이어나간다는 입장이다. BMW도 전기차로의 전환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도요타와 마찬가지로 양다리 전략이다.

BMW의 프랑크 베버 AG개발 총괄 이사는 최근 한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BMW는 내연기관차 생산 종료를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며 "전기차 전환은 거대한 산업적 변화로 전기차 충전소와 같은 인프라나 친환경 전기(Green electricity) 생산기술 등 우리 주변의 시스템은 아직 전기차만 생산하는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BMW의 판단은 일견 순항하는 듯 보인다. 한 생산 라인에서 파워트레인까지 넘나드는 BMW의 혼류 생산 능력이 공급난에 시달리던 팬데믹 기간에 오히려 판매량 증가라는 성과를 낳은 것이다. BMW는 지난해에 전년대비 8.4% 많은 252만1525대를 판매했다. 라이벌 메르세데스-벤츠(242만7686대)를 제치며 2016년 이후 5년 만에 프리미엄 시장 1위에 올랐다.

내연기관과 전기차를 아우르는 혼류 생산 방식을 유지하며 시장 수요에 맞춰 각각의 생산 비율을 조율해 나가겠다는 게 BMW의 전동화 전략이다.

여기에 최근 스텔란티스도 전기차 신중론에 가세하는 모양새다. 카를루스 타바르스 최고경영자(CEO)는 "2024~2025년 전기차 배터리 부족 사태가 발생, 2027~2028년에는 전기차 제조에 필요한 원자재 부족으로 전기차 보급이 늦어질 것"(올해 5월)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시장이 중국 천하이기 떄문에, 결국 중국 좋은 일만 시킬 것이란 목소리도 크다.

현대차·벤츠, 전기차 시장 공략에 가속도

전기차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는 곳을 메르세데스-벤츠, 현대차·기아, 폭스바겐 그룹, GM 등이다.

이들은 시장선점 전략을 앞세워 공격적 투자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미국 자동차의 '자존심'인 GM은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소유한 트위터 광고를 끊는 등 테슬라와 장외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GM은 테슬라는 제치겠다며 전동화에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발표하는 등 절치부심이다. '은원관계'인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의 제휴관계도 전기차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의 1위 굳히기 전략도 전기차를 둘러싼 경쟁을 한 층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오는 2030년까지 전세계에 12개 공장을 지어 테슬라 전기차는 연간 2000만대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 업체인 일본 도요타(연간 1000만대 안팎) 생산량의 2배 수준이다. 중국 BYD는 중국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 힘입어, 올해 3·4분기 중국 본토에서 판매량 기준(53만대)에서 테슬라(34만대)를 제쳤다. 이에 발끈한 테슬라가 중국 시장에서 차가격 인하로 맞불을 놓은 상태다.

일본 자동차 업계의 만년 2등 혼다는 전세역전을 위해 엔터테인먼트·IT기업으로 전향에 성공한 소니그룹의 손을 잡고, '움직이는 스마트폰'의 콘셉트로 2026년부터 양사의 합작법인 '소니혼다모빌리티'를 통해 미국과 일본을 시작으로 전기차를 판매한다고 밝혔다. 미국에선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에 배터리 합작 공장을 짓기로 하고, 미국 전기차 시장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세계 2위 완성차 기업 폭스바겐그룹도 2033년부터 유럽에서 폭스바겐 브랜드 내연기관차를 생산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당초 2033년에서 2035년 사이로 잡았던 '올(all) 전기차 생산' 일정을 앞당긴 것이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974만대 수준인 전기차 시장 규모는 2025년 2172만대로 성장할 전망이다.

美·유럽, 내연기관 퇴출 압박... 전기차 선호 심화

전 세계에서 가장 앞다퉈 환경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2035년부터 휘발유 등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기로 합의하면서, 자동차 업체를 압박하고 나섰다. 차량 제조사들이 2035년 이후 판매하는 신차의 탄소배출량을 100% 감축해야 한다고 규정, 사실상 가솔린이나 디젤 등 연료를 이용하는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를 불가능하게 한 것이다. 앞서 영국은 2030년에 가솔린차와 디젤차의 신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해 말부터 유럽에선 전기차가 디젤차보다 더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 중국도 2025년까지 신에너지차 보급률을 25%까지 올린 후 2030년 40%, 2035년 5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중국은 올해 전기차 판매 대수가 500만대를 넘길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이미, 전년 동기 대비 63% 증가한 428만5000대다.

국내에서도 전기차 판매량이 증가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3·4분기 전기차는 34만7000대가 팔려, 전분기 대비 16.3%(4만8762대) 증가했다.
글로벌 업계의 전기차 대세론에 가솔린차에 비해 전기 충전료가 4분의 1수준으로 싸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작용하면서, 소비자들의 전기차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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