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소리 아직도" "구해주지 못해 죄책감" 트라우마 확산

      2022.11.01 18:16   수정 : 2022.11.01 18:16기사원문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계속 들려요. 못 자겠어요."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김모씨(21)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0월 29일 밤 그는 이태원역 좁은 골목에서 사람들이 넘어지자 누군가의 손길로 간신히 참사를 모면했다. 김씨는 "'아프다' '살려달라'는 비명이 아직도 들린다"며 "절룩이는 발을 이끌고 분향소를 찾았는데, 내가 구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그는 사건 이후 제대로 잠에 들지 못해 남자친구 집에서 기거 중이다.

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현장의 여파로 수많은 시민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참사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부상자와 현장 구조를 했던 시민들은 죄책감에 고통받고 있으며, 참사 당시 시민의 안전을 책임졌던 소방·경찰 관계자들까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심리상담지원센터를 설치해 이들의 트라우마 회복을 돕고 있다.

■트라우마로 남은 그날의 악몽

1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대참사가 일어난 '죽음의 골목'을 직접 목격한 사람만 수천명에 달한다. 이태원역 인근으로 실려 나온 심정지 사상자들을 본 사람들까지 따지면 목격자가 수만명에 이른다. 부상자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했고, 지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시민들은 곳곳에서 동시에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하는 전대미문의 참혹한 현장을 목격해야 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CPR에 참여한 시민들은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40대 중반의 김모씨는 사람들을 도로로 옮겨 CPR을 실시했다. 10명 정도 CPR을 실시했으나 단 한 명만 살아남았다. 김씨는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에 고인들을 남기고 왔다는 사실이 너무 참담하고 죄송스러웠다"며 "CPR을 하면서 시신을 마주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아무도 돕지 않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소방, 경찰 등 당시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던 공직자들에게도 트라우마는 남아있다. 수도권 지역에서 구급지원에 나섰던 A씨는 "구급대원 생활을 하며 극단적인 상황을 많이 봤으나 이 같은 참사는 처음"이라며 "코스프레를 한 시민들이 떠나는 친구를 목놓아 부르짖는 장면이 계속 생각난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 심리상담소 운영

정부는 녹사평역 합동분향소에 심리지원상담소를 설치해 시민의 정신건강을 어루만질 방침이다. 이날 오전 10시 한 노인이 심리상담센터를 방문해 심리상담 절차를 물어봤다. 그는 "20대 손자가 사고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심리지원상담소 관계자는 "어제 8명이 이곳을 방문해 심리상담을 받았다"며 "사연을 듣고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피해자라면 가까운 병원과 연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도 마음 안정방법 등 간단한 심리상담을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계에서는 일반 국민도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는 만큼 당분간 SNS 활동 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성명을 발표해 "사고 당시 현장 영상과 사진을 여과 없이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며 "이런 행위는 2, 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호소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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