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리서치센터도 폐지"...증권가 구조조정 전운 감돈다
2022.11.03 06:00
수정 : 2022.11.03 05:5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글로벌 증시 침체와 강원도 '레고랜드'발 자금시장 경색으로 유동성 우려가 커진 증권가에 구조조정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일부 중소형 증권사들이 구조조정을 본격화했고, 보험사에서는 조기상환(콜옵션)을 미행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중소형 증권사 구조조정 시작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케이프투자증권은 최근 법인본부와 리서치본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전원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
해당 부서에 소속된 임직원은 약 30명으로 일부는 부서 폐지에 따라 재계약 대상에서 제외됐다. 계약 기간이 남았거나 계속 근로자인 임직원의 경우 유사 업무로 전환 배치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중소형 증권사들이 전반적인 유동성 악화에 시달리면서 고정 비용이 많은 리서치와 법인영업을 구조조정 1순위로 삼았다는 진단도 나온다. 케이프투자증권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 때문이 아니라 오랫동안부터 인력 효율화를 위해 고민했다"며 "투자은행(IB) 전문회사로 집중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사업본부 구조조정은 케이프투자증권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하나증권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관련 사업을 담당했던 구조화금융본부 직원들을 IB부서 내 다른 본부로 편제하며 해당 본부를 아예 없앴다. "내부 감사결과 해당 부서 임원의 배임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라고는 하나 신설 1년도 안 된 주력 부서를 해체한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 밖에 일부 중소형 증권사들에서 IB와 자기자본투자(PI) 부문을 비롯해 고정비는 높은데 수익이 저조한 부문을 정리하는 계획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사업부문에 대한 구조조정은 증권가 전반에서 연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연말이 되면 자체 유동성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곳들이 나올 것"이라며 "이대로라면 연내 PF를 많이 하는 중소형 건설사, 증권사들 중심으로 디폴트가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정부의 유동성 지원책은 자금 흐름의 물꼬를 터주는 역할에 그쳐 부실이 심한 곳까지 흘러가기 어렵다"라며 "중소형 증권사 중에서 내년 1·4분기 말께 도산이나 회생 절차를 밟는 곳들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콜옵션 미행사도..."투자 심리 위축될 것"
유동성 우려 악화로 은행과 보험사에서 콜옵션을 미행사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IB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싱가포르거래소를 통해 오는 9일 예정된 5억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을 미행사키로 했다. 흥국생명은 조기상환을 위해 지난 달 말 5억달러 가운데 3억달러는 외화로, 1000억원은 원화 후순위채로 조달하려 했으나 발행 계획을 취소했다.
국내 기업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이 조기상환을 실시하지 않는 것은 2009년 우리은행 이후 처음이다. 조기상환 미행사는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아니다. 그러나 콜옵션이 글로벌시장에서 신종자본증권의 신뢰를 뒷받침하는 요소 중 하나인 만큼 시장의 신뢰가 깨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흥국생명은 2017년 11월 연 4.475% 금리로 5억 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조기상환은 발행일로부터 5년 후로 이달 9일 첫 기일이 도래한다. 발행시 투자자들과 맺은 스텝업(금리인상) 조항에 따라 흥국생명 채권금리는 5년 미국고채에 2.472%의 가산금리가 붙을 전망이다. 6.7% 수준이다.
앞서 우리은행이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을 미행사하자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의 외환 사정이 우려된다며 투자자들의 대거 이탈이 발생했다. 그러자 우리은행은 후순위채를 스텝업 금리보다 높은 일반 채권으로 바꿔 준 바 있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레고랜드 이슈와 기업들의 기초 여건 저하 가능성 고조로 국내 기업이 발행한 외화채권 신용 스프레드는 확대 기조였다"며 "이번 일로 당분간 투자심리가 위축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다만, 전반적인 채권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엄밀히 따지면 콜옵션 미행사는 계약 위반도 아니고, 전체적인 조달 여건이 어려워진 것에 따른 결과"라며 "흥국생명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보험사이기 때문에 공기업이나 은행에서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에 대한 영향은 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kakim@fnnews.com 김경아 한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