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제친 현대차…'쩐의 전쟁' 승리 뒤엔 정몽구의 '집념'
2022.11.12 05:00
수정 : 2022.11.16 09:06기사원문
올림픽에 삼성전자, 도요타, 인텔, 비자 등 15개의 최상위 후원사인 '월드와이드 파트너'가 있다면, 국제축구연맹(FIFA)에는 7개사의 'FIFA(피파) 파트너'가 있다. 최상위 후원사인 피파 파트너가 되려면 비용은 물론 치열한 로비전을 거쳐야 하지만 되고나면 효과는 그 몇배, 몇십배다.
2002년 한일월드컵부터 2006 독일, 2010 남아공, 2014 브라질, 2018 러시아, 그리고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6회 연속, 20년간 독일차, 일본차들을 제치고 피파 공식 파트너로 활동한 현대차그룹의 월드컵 마케팅도 이 공식에 잘 들어맞는 케이스다. 현대차그룹은 세번째로 오래된 피파 공식 파트너사이자, 가장 의욕적인 후원사다. 동시에 20여년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비약적으로 성장한 기업 중 한 곳이다.
日도요타·獨폭스바겐 제친 현대차 마케팅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충격에서 채 벗어나기 전인 1999년, 현대차는 도요타, 메르세데스-벤츠를 제치고, 피파의 파트너사가 됐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당시 현대차 회장에 오른 해다. "10년 내(2010년)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하겠다." 단일 대회 누적시청 35억~70억명의 월드컵은 '2010 글로벌 톱 5'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따내야 할 기회의 장이었다. 직전 프랑스 월드컵(1998년) 파트너사였던 독일 오펠(GM의 독일 자회사, 직전 파트너)이 빠지고 나간, 자동차 부분 한 자리를 놓고 도요타, 벤츠, 현대차가 경합을 펼쳤다.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현대차의 승리였다. 현대차는 절박했고, 도요타는 자만했다. 피파는 월드컵을 도요타 본사가 있는 도요타시에서 치러야 한다는 도요타의 오만함을 외면하고, 총력전을 펼친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월드컵 광고 효과, 투자비의 60배
"돈으로 따지면 투자비의 60배에 달하는 광고효과를 얻었다."
한일 월드컵 당시 TV중계를 통해 현대차 로고가 노출된 시간은 경기당 평균 11분 32초. 세계 200여개국에 총 12시간이었다. 경기중에 TV를 통해 노출될 현대차의 경기장 보드 광고, 월드컵을 활용한 기업 이미지 광고, 각국 귀빈과 선수단, 진행요원 등에 제공되는 차량을 통해 당시 현대차가 내부적으로 판단한 월드컵 마케팅 추산치였다.
한 번 피파 파트너사의 지위에 오르면 다음 대회 스폰서 우선 계약권이 확보된다. 하지만 그 다음 대회인 2006년 독일월드컵을 향한 독일 자동차 기업들의 판흔들기는 만만치 않았다. 현대차로선 당시 20만대 규모인 유럽시장 판매량을 50만대로 확대하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선 반드시 지켜내야 할 방어전이었다. 막판까지 치열하게 로비전을 펼쳤던 폭스바겐은 체면을 구길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월드컵 기간, 귀빈·선수용 등으로 제공된 차량은 에쿠스, 그랜저(TG), 쏘나타(NF), 싼타페(CM), 트라제, 버스 등이다. 독일에서 열린 2006년 월드컵에서도 현대차는 A보드를 통해 노출된 시간은 13시간 42분 24초였다. 당시 현대차가 피파에 지불한 비용은 약 7000만 달러(약 970억원)정도로 알려졌으며, 독일에서의 마케팅 효과는 9조원 정도로 추산됐다. 약 10배 효과다.
잘 만드는 것 만큼, 잘 파는 것도 중요한 법이다. 축구를 통한 스포츠 마케팅은 글로벌 전략의 요긴한 수단 중 하나였다. 월드컵의 효과성을 확인한 현대차는 2006년 이후, 남아공, 브라질, 러시아 월드컵, 이번 카타르 월드컵까지 잇따라 계약을 맺었다. 2010~2022년 공식 파트너로서 피파에 지급한 돈은 약 2억4000만 달러(약 3300억원)정도로 추산된다.
23년간 마케팅의 진화…車비전 선도
월드컵 스폰서 23년차를 맞아, 현대차의 월드컵 마케팅도 진화했다.
초기에는 브랜드 알리기에 주력했다면, 6번째 월드컵 마케팅의 무대가 될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선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서의 '탄소 중립, 친환경' 비전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업의 목표도 진화했다. "2025년 고객이 선호하는 '톱3' 모빌리티 기업이 되겠다."(정의선 회장) '많이 팔겠다'는 양적 목표에서 '기업의 위상'을 고민하는 질적 성장으로 기업의 구호가 바뀐 것이다.
질적 성장에 대한 갈망은 모빌리티 기업으로서 '탄소중립, 친환경'이라는 글로벌 아젠다 제시로 전개됐다. 월드컵 기간 현대차와 기아가 제공할 차량은 983대(현대차 616대·기아367대)이며, 이 중 316대(현대차 236대·기아 80대)가 아이오닉5, G80 전동화 모델 등 전기차와 친환경차다.
현대차의 경우, 승용차의 약 50%인 226대가 아이오닉 5, G80 전동화 모델, GV70 전동화 모델, 쏘나타 하이브리드, 투싼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다. 현지에 전기차 충전소를 운영, 전기차 시장 선점 전략도 펼칠 계획이다. 방탄소년단(BTS), 박지성, 스티븐 제라드(전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 선수), 제레미 스캇(미국 유명 디자이너) 등이 현대차그룹의 월드컵 캠페인(세기의 골)에 가세, 브랜드 마케팅도 한 층 화려해졌다.
글로벌 브랜드 가치 25조...카타르 이후엔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올해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브랜드 가치 평가액은 173억 달러(약 24조7000억원), 전세계 브랜드 중 35위다. 브랜드 경영을 처음 선포한 2005년 첫 100위 진입(당시 84위, 브랜드가치 35억 달러) 이후, 2015년부터는 8년 연속 3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초기 브랜드 구축과정에서의 월드컵 마케팅의 기여도는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측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지만 스포츠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카타르를 끝으로, 월드컵 공식 파트너사 대신 프리미어 리그, 세리에 A등 유럽 주요 프리미엄 축구 클럽과 제휴하거나 축구 외에 레이싱, 마라톤 등 다양한 분야로 스포츠 마케팅을 확장해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는 월드컵이란 무대를 활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대·기아차가 카타르 월드컵 이후 '오랜 동반자'로서의 피파와 연을 이어갈 지, '아름다운 결별'을 택할지, 고민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