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없는 세상을 모방한 현대조각… 진리는 사라지고 해석만 남았다

      2022.11.11 04:00   수정 : 2022.11.11 04:00기사원문
그리스의 로도스 섬에는 조각의 거장들이 많았다. 헬레니즘 최고의 걸작 '라오콘 군상'도 이들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 섬에서는 해질 무렵 광장의 조각상들을 묶어 놓았다고 한다.

사람과 똑같이 만들어진 조각상들이 밤이 되면 살아나 거리를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든 조각이 너무 아름다워 비너스에게 간청해 대리석을 살아나게 했던 피그말리온 신화는 로도스 섬의 전설과 마찬가지로 조각이 차가운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임을 말해주고 있다.

과거에 조각이란 얼마만큼 사람과 똑같이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고 사람과 똑같을수록 생명력이 있다고 보았다. 재현 능력이 뛰어난 작가는 천재나 반신(半神)으로 불렸다.

하지만 재현 예술은 모더니즘과 함께 막을 내린다.
모더니즘은 추상의 시대였고 대상을 모방하지 않았으며 천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인체를 똑같이 묘사할 수 있는 재능은 창의성을 해치는 기교로 간주됐다.

구상과 추상의 또다른 차이는 작품이 내러티브, 즉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과거의 구상 조각은 역사 신화 종교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내러티브가 있으므로 작품 안에 모든 답이 들어있는 것인데 이 때문에 재현 예술은 아는 만큼 답이 보인다.

현대 조각은 추상 조각뿐만 아니라 현실을 재현한 조각이라도 내러티브가 없다. 작품 안에 답이 없는 것이다. 관객들이 현대 예술 작품의 감상을 어려워하는 것은 작품 안에 답이 없는데 답을 찾기 때문이다.

답이 없다면 어떻게 현대예술을 감상해야 할까. 이제 답을 가진 주체는 작품에서 관객으로 옮아간다. 서사가 없는 텅 빈 현대 조각의 내용을 채워주는 주체는 관객인 것이다.

몬드리안의 그림 한 점이 실수로 75년 동안 거꾸로 걸려 전시되었다. 이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거꾸로 전시될 것이라 한다. 어차피 작품에 정답이 없으므로 어떻게 걸어도 무방한 데다 내용을 채우는 주체인 관객에게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정서영의 작품 '전망대'를 감상해 보자. 바닷가 해수욕장 저 멀리 서 있는 전망대를 재현했지만 아무런 내러티브가 없다. 그러므로 관객은 그냥 자신의 관점대로 작품을 감상하면 된다. 어떤 느낌도, 어떤 감정도, 어떤 해석도, 어떤 생각도 여기서는 모두 정답이다.

초현실적으로 보인다든지 삭막하거나 건조해 보인다든지 재료인 나무가 따뜻해 보인다든지 전망대에 오르고 싶다든지 그 어떤 것도 모두 정답이다. 작품의 정답은 관객의 시시각각 변하는 감각과 감정에 달려 있으며 작품을 감싸고 있는 유동적인 어떤 상황들 속에 있게 된다.

"예술 작품에 대한 궁극의 해석은 있을 수 없으며 오직 다양한 해석이 있을 뿐이다"고 했던 자크 데리다의 말처럼 작품에 유일한 답은 없고 수많은 유추만 있다.

왜 현대예술이 이러냐고 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 의하면 세상에 객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없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모든 것은 각자의 믿음이고 각자의 견해다.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과 같다. 우리는 진리의 다원성과 불확실성, 이성의 한계를 절감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예술은 그 현실을 명료하게 비춘다.
피그말리온이 사람을 똑같이 재현했듯이 현대의 작가들은 각자 자신이 믿고 싶은 바를 진리라고 믿는 포스트트루스(탈진실)의 현대사회를 모방한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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