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파는데 써 주세요, 아이들 교육에 보태고 싶어요... 후원자 뜻 그대로 도움 전달하는 '희망친구 기아대책'

      2022.11.22 18:14   수정 : 2022.11.23 09:43기사원문
"후원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내가 내는 돈이 도움이 필요한 곳에 몇 %나 갑니까'입니다. 희망친구 기아대책은 탈중앙화된 구조를 통해 한국에서 모금된 돈은 한국에서, 미국에서 모금된 돈은 현지의 가장 필요한 곳에 사용됩니다. 중앙집중화된 구조를 탈피해 불필요한 비용의 낭비를 막아 기부금을 가장 효율적으로, 투명하게 사용합니다.

"

유원식 희망친구 기아대책 회장은 다른 비정부기구(NGO)와 차별화되는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특징을 묻는 질문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최대한 기부자의 도움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희망친구 기아대책은 '떡과 복음으로 전세계의 영적·육체적 굶주림을 종식시킨다'는 선교적 사명을 갖고 있는 국제구호개발 NGO로, 지난 1971년 미국 레리 워드 박사의 인도적 지원 난민 사업으로부터 시작돼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실제로 희망친구 기아대책은 후원자의 95%가 크리스천일 정도로 국내 NGO 중에서 복음적 색깔을 강하게 나타내는 단체다. 다른 NGO 후원자 모집단이 대한민국 인구수인 5000여만명이라면,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후원자 모집단은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20%가량인 1000여만명인 셈이다. 희망친구 기아대책은 홈페이지를 통해 '선교사'와 '교회'의 이야기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눈으로 보이는 숫자와 결과물을 통해 다른 NGO단체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께서 떡과 복음을 위해 부르셨다'는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존재 의미를 충실히 지키고 있다.

다른 NGO단체에 비해 절대적인 후원 규모가 작지만 희망친구 기아대책은 후원자가 유지되는 비율이 높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후원자들은 바로 후원을 시작하지 않고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선교적인 사명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후원을 시작하고 이어간다.

'삼성맨'으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해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거치며 '직업이 CEO'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유 회장은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첫 외부 공모 회장으로 2015년 3월 취임했다. 그의 손이 닿는 기업마다 매출과 수익이 올랐던 것처럼 희망친구 기아대책 역시 유 회장의 취임 이후로 후원금이 2배가량 커졌다.

유 회장은 "지난 2004년 출간된 '한국의 IT 리더들'이라는 책을 최근 들어 우연히 다시 읽어봤는데 당시 내가 10년 후 목표에 대해 '사회봉사기관의 책임자'라고 얘기했더라. 희망친구 기아대책 회장에 취임한 것이 2015년 3월 1일인데 정확히 책이 나오고 11년 뒤에 그 목표가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맨이 NGO단체 회장이 된 연유

1958년생인 유 회장은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지난 1981년 삼성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삼성은 당시 컴퓨터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로 유 회장은 입사 후 미국 HP로 파견을 가서 선진 마케팅 기술을 배웠다. "HP 오리엔테이션 첫 시간에 당시 존 영 회장이 와이셔츠 차림에 커피를 들고 신입사원들에게 질문했다. '누가 여러분의 월급을 주는가?'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에 존 영 회장은 '고객'이라고 말했다."

비영리단체에게 고객은 '후원자'이자 '수혜자'다. 고객 중심의 운영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유 회장은 1995년 삼성과 HP가 결별할 당시 HP의 사업 총괄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미국 본사 부사장, 한국 오라클 대표이사 등을 거친 뒤 2015년 3월 기아대책 회장에 부임했다.

유 회장은 대학생으로 재학하던 때부터 사회봉사 선교단 멤버로 활동했고, 희망친구 기아대책 회장으로 부임하기 전에는 메이크어 위시의 재단에서 법인 이사를 맡았다. 메이크어 위시는 난치병 아동의 소원을 들어주는 재단이다.

유 회장은 "아들이 2명 있었는데 1997년 첫째 아이가 뇌종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 그 이후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폴란드 시인 치프리안 노르비트의 말을 인용하며 "인생에는 3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는 경제적인 안정, 둘째는 목숨을 걸 만큼의 재미, 셋째는 의미다. 3가지가 모두 있으면 행복한 삶이겠지만 2가지만 있어도 좋은 삶이다. 회사 생활을 정리하면서 의미가 있는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희망친구 기아대책' 새로운 명칭으로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굶주림을 겪는 모든 아이들과 가정, 공동체가 회복되어 또 다른 공동체를 돕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아대책이라는 기관명을 사용했지만 2년 전부터 기관 명칭 앞에 '희망친구'라는 말을 더해 표기하고 있다. 기아대책은 영어로 'Food for the Hungry'를 뜻하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굶주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Friend of Hope'라는 의미로 '희망친구'라고 부르고 있다.

유 회장은 "33년 전 기관이 생길 때 기아대책이란 명칭을 썼는데 수혜자 인권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기아(hungry)'라는 말 대신 '희망(hope)'라는 말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FH'라는 약어를 사용하고 기아라는 말의 사용은 줄이는 추세다.

기아대책은 '기아'를 '육체적·영적·사회적·정서적으로 고립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단순히 육체적인 기아를 넘어 사회적으로, 정서적으로 고립된 사람을 돕는 다양한 활동을 지원한다.

취약계층아동이 겪는 신체적, 심리·정서적, 교육적 영역의 결핍이 아동의 잠재력 성장에 방해요소가 될 수 있어서다. 또 돌봄 공백이 심화되는 방학이 되면 결연아동 및 지역아동센터아동을 대상으로 4대 영역인 △식사지원 △돌봄지원 △심리정서지원 △교육지원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특히 국가 복지시스템에 비교적 적은 지원을 받는 △무연고아동 △빈곤청년 △가정밖청소년에게 집중하고 해당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재단 운영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차별화된 특징을 묻는 질문에 유 회장은 모두 4가지를 꼽았다. 먼저 기아대책은 국내 최초다. 지난 1989년 해외를 돕는 NPO로 최초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33여년 동안 해외와 국내, 사회적경제 등 다양한 사업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고 있다.

아울러 탈중앙화된 글로벌 조직으로 본부와 협력 형태로 운영한다. 중앙화된 조직과 달리 각 국가별 시장에 맞는 차별성을 인정하며 한 가지의 가치와 신념을 가지고 연대하고 협력한다.

마지막으로 기대봉사단을 직접 파송한다. 47개국 213가정에 500여명의 '기대봉사단'을 직접 파송하고 현장에서 직접 사업을 진행한다. 새로운 나라에 구호 사업을 시작할 때 출입 전략과 출구 전략을 함께 계획한다.

유 회장은 "기대봉사단은 해외 현지에서 생활비를 자체 조달해 사용해 후원금을 별도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바탕으로 희망친구 기아대책은 재정 투명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후원자의 효율적 기부금 사용을 위해 체계적 시스템으로 투명하게 재정을 운영한다"며 "국세청이 승인한 성실공익법인 획득, 한국가이드스타의 공익법인 투명성과 책무성, 재무안정성과 효율성 평가에서 7년 연속 만점을 획득했다"고 강조했다.

1989년 1개 사무소, 상근직원 1명으로 출발했던 희망친구 기아대책은 올해 6월 기준 7개 사무소 상근직원 1600여명에 달한다. 후원 회원도 780명에서 현재 16만명을 넘어섰다. 2021년 한해 누적 후원금은 850억원에 달하며 이중 정기 후원자 비율이 약 65%를 차지한다. 특히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경우 후원자들 대부분이 '우물을 파주세요', '학교를 지어주세요' 등과 같이 목적성 후원을 한다.
기아대책은 목적성 후원금에 대해 실제로 이를 집행하고 사후에 보고하게 된다.

유 회장은 "모든 조직의 핵심은 결국 직원"이라며 "감사하게도 2년 전 한 후원자 분이 1억원을 맡기며 직원 교육을 위해서만 써달라고 기부를 했고, 올해에도 한 분이 3000만원을 직원들을 위해 후원했다.
최근 들어 나름대로 찾은 삶의 의미는 직원들의 표정이 7년전과 비교해 많이 밝아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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