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령'에 긴장감 돌았던 베이징의 밤
2022.11.24 16:13
수정 : 2022.11.24 16:35기사원문
발단은 한 음식점에서 시작됐다.
차오양구 방역당국의 ‘통보’가 근거로 곧바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여기엔 ‘전문가 연구 판단을 거쳐 일부 지역을 임시 관리 통제구역으로 정하고 3일간 봉쇄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대상 아파트 목록도 적시됐다.
동시에 각 메신저 단체방에선 ‘식재료를 구입하러 나왔다’거나 ‘현재 상점의 상황’, ‘배달 가능한 상점 명단’ 등의 정보가 쉴 사이 없이 쏟아졌다. 이미 봉쇄 상태인 아파트 주민이 오히려 상대적으로 담담했다. 어차피 외출이 불가능해서다.
20여 분 뒤 도착한 한 대형마트 앞 도로는 주민의 주차로 도로 기능을 절반은 상실한 상태였다. 왕복 4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이들의 양손에는 커다란 쇼핑 봉지가 들려 있었다. 마트 내부는 예상대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평온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다 급하게 나온 듯 슬리퍼 차림이거나 가벼운 옷차림의 구매자도 눈에 띄었다.
쇼핑 바구니와 카트는 벌써 동이 났다. 육류, 달걀, 채소 등을 한가득 양손에 들고 20여m 늘어선 계산 줄 속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소비자들도 상당수였다. 진열대 중 중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돼지고기는 아예 텅 비었다. 닭고기도 채워 넣기가 무섭게 담아갔다. 채소와 달걀 진열대 또한 듬성듬성 빈 공간을 드러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비자는 몰려들었고 계산원의 손놀림은 더욱 바빠졌다.
해당 마트의 혼란을 목격한 것은 올해 4월 25일 이후 두 번째다. 당시에는 차오양구 전면 봉쇄설이 나돌았다. 당국이 ‘유언비어’라고 했지만 주민들은 마트로 몰려들었다.
“왜 이런 것을 또 해야 하느냐” 등 불만의 목소리가 마트 내에서 들렸다. 일부는 아예 이골이 난 듯 평온한 표정을 짓거나 미소를 보였다. 다만 이들의 쇼핑 카트에도 물건은 한가득 담겼다. 일부는 마트 전쟁을 포기하고 영업을 중단한 식당의 식자재를 구입하기 위해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당국이 이날 통보한 격리 기간은 3일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 5일 혹은 10여일 이상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구 2500만명의 도시를 65일간 완전히 봉쇄했던 상하이 당국이 당초 제시한 첫 봉쇄 기간도 4~5일에 불과했다.
중국 중앙정부가 ‘정밀 방역’ 기조의 규제 완화를 지시했으나 지방·지역 지도부는 역방향의 방역을 고집한다. 자칫 확진자 수가 폭주할 경우 그 책임과 처벌을 고스란히 자신들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단 3일 봉쇄에도 주민들의 장기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은 이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식료품이 부족해 대규모 노동자 탈출이 일어났던 애플 광저우 폭스콘 공장이나 아기 분유를 사기 위해 목숨 걸고 봉쇄 바리케이드를 뚫은 아빠의 사례는 간접적 학습효과도 됐다.
강도 높은 방역 정책과는 달리 코로나19 감염자는 늘고 있다. 마트 사재기가 일어났던 전날에도 중국 본토 신규 감염자는 2만9754명으로 집계됐다. 베이징의 경우 1648명이 나왔다. 전날보다 162명 더 많다.
부작용도 속출한다. 광저우 폭스콘 노동자들은 임금 지급 시위 과정에서 중국에선 이례적으로 경찰과 물리적으로 충돌했고 중국 곳곳에선 방역요원의 폭력적 단속이 벌어졌다. 또 각 산업계의 행사는 잇따라 연기·취소하고 공장은 생산을 멈췄으며 기업들은 출장과 회의를 중단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가 감염자 데이터 발표를 일정 기간 금지시킨 뒤 ‘코로나19와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할 가능성도 일부에선 제기된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