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려니 세금폭탄, 사려니 규제문턱… 약자 더 옥죄는 정책 언제까지
2022.12.04 18:34
수정 : 2022.12.04 21:46기사원문
#1.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외국음식점을 운영하는 최 모씨(63)는 며칠 전 중개업소를 나서다 한참동안 눈물을 쏟았다. 아내가 아끼던 20년 넘은 단독주택을 팔아 가게 운영자금으로 보탤 생각이었지만 초급매로 내놓은 가격에서 더 내려도 팔 수 있을지 장담 못하겠다는 말을 듣고서다. 결국 최 씨는 가격과 상관없이 무조건 팔아만 달라고 말하고 중개업소 문을 나섰다.
#2. 서울 노원구 현대우성아파트에 사는 송 모씨(47)는 오는 2월 서울 강남구 개포자이프레지던스 입주를 앞두고 걱정이 한가득이다. 가족 모두 그토록 그리던 강남의 새 아파트지만 잔금 마련 생각만 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송 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아 잔금을 치를 계획이지만 최근 몇달새 가격이 3억원 가까이 빠져 대출금을 제외하면 손에 쥐는 돈은 2억원 남짓으로 확 줄었다. 송 씨가 당장 필요한 돈은 잔금 3억여원과 취득세 등 총 4억원 정도인데 당초 계획과 달리 차질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송 씨의 더 큰 걱정은 주택시장 거래 빙하기가 계속되고 있어 터무니 없이 떨어진 가격이라도 살던 아파트를 팔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3. 수원 영통구에서 오피스텔 3채를 가지고 임대사업을 하던 안 모씨(62)는 이틀 전 지방국세청 직원과 종합부동산세를 놓고 한바탕 입씨름하고 온 후 몸져 누웠다. 은퇴를 앞두고 하나둘씩 마련했던 오피스텔이 지난 2020년 6월 정부의 갑작스런 임대주택 말소 조치로 살고있는 주택에 합산돼 작년부터 '눈덩이 종부세'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살고 있는 아파트의 공시가격이 급등하면서 안 씨는 작년보다 200여만원 뛴 826만원 고지서를 받았다. 이제 재산세를 포함한 보유세만 오피스텔 2채에서 나오는 연간 수입을 고스란히 세금으로 내야 한다. 안 씨는 오피스텔을 당장이라도 처분하고 싶지만 다주택자 중과세가 여전히 그대로여서 아무리 싸게 내놔도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안타까운 이 세 가지 사례는 당장 고개만 돌려도 금방 마주할 수 있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이들은 투기꾼도 속칭 '갭투자자'도 아니다. 시장경제 사회에서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오르는 집값에 대한 분풀이로, 다주택자에 대한 화풀이로 5년 내내 쏟아낸 '반 시장적 규제'의 피해자일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무차별적인 '규제 폭탄'은 정권이 바뀌어도 주택 취득, 보유, 매매 모든 과정에서 세금폭탄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대출규제와 고금리까지 겹치면서 주택시장은 아예 마비 증세를 보이고 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거주 이전의 자유'까지 침해받고 있는 실정이다.
내집마련을 계획하고 있는 무주택자는 불황에 따른 불안감과 대출 규제 등으로 시장 진입을 꺼리고, 기존 주택을 팔고 보다 나은 곳으로 가려는 갈아타기 수요자는 기존 주택이 안팔려 꼼짝달싹 못하고 있다. 그나마 주택 구입 여력이 있는 다주택자는 취득 단계부터 모든 과정까지 각종 세금 등으로 봉쇄 당한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팔려는 사람은 수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회적 환수'를 빙자한 세금 폭탄 때문에 팔 수가 없다. 사려는 사람도 모든 과정에서 촘촘히 쳐놓은 규제 때문에 진입 자체가 불가능 한 상황이다.
이는 서울 지역 아파트 거래량에서 금방 드러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들어 11월말까지 아파트 거래량은 총 1만825건으로 월 평균 984건을 기록했다. 이는 2020년 월 평균 거래량이 6761건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6분의1 수준까지 줄었다. 월 평균 거래량이 9193건에 달했던 2016년(11만322건)과 비교하면 10분의1 수준이다. 한마디로 거래 실종이다. 서울아파트 거래량은 지난 7월부터 600건 이하로 떨어지더니 11월에는 465건까지 쪼그라들었다. 서울 25개 구에서 한 달동안 거래되는 건수는 평균 20건이 안된다. 구 한곳에서 하루 1건의 거래조차 일어나지 않는 셈이다.
■주택시장에 올라 탄 '정치'라는 '괴물'..사회적 약자들만 피해
상황이 이렇다보니 위의 사례처럼 여러 상황에 쪼들려 집을 내놓는 사람들만 손해를 보고 있다. 이른바 사회 약자층이거나 이 계층으로 내몰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경제 상황이 좋아도 급매물은 있게 마련인데, 요즘 같은 시기에는 급매물이 나와도 받아 줄 사람이 없다보니 가격이 계속 내려가는 것이다. 이렇게 눈물로 얼룩져 헐값에 나오는 아파트는 이른바 '가진 사람들'이 주워가고 있다. 현금 동원력이 좋다보니 대출이 막혀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두 건 예외적인 가격에 거래가 일어나자 이 틈에 증여도 크게 늘고 있다. 가격이 내린 시기를 이용해 헐값에 자녀들에 증여해 세금을 줄이려는 사람들이다. 이런 비정상적 거래가 일어나자 벼랑 끝에 내몰린 급한 사람들은 가격을 더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고 있다. 이게 현재까지 주택시장 모습이다.
주택시장이 이렇게 된데는 국민 경제의 필수재인 주택에 '정치'라는 '괴물'이 올라탔기 때문이다. 이념에만 휘둘리다보니 당초 겨눴던 칼끝은 이제 '가진 자'가 아닌 오히려 '약자'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를 복원하겠다"며 들어선 윤석열 정부도 주택시장 정상화에는 눈을 감고 있다. 시장이 이 정도로 마비증세를 보이고 있고 부작용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에도 문재인 정부때 박아놓은 '규제 대못'을 뽑는 것에 주저주저하고 있다. 심지어 주무부처 장관은 현재 주택시장에 대해 정상화로 가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는 말을 쏟아내 놀라움을 줬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최근 부동산 시장에 대해 "(주택)가격이 너무 높아 상당 기간 하향 안정세가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경착륙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서만 관리해야 한다"고 말해 현재 주택시장이 정상화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말까지 했다.
유력 정치인 출신 장관이라 주택시장도 정치의 잣대로 바라보는 것일까.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자신의 임기동안 집값이 안정됐다는 치적을 이루기 위해 반시장적인 규제를 걷어내는데 주저한다면 이전 정부와 뭐가 다르겠냐"며 "주택구입심리가 쪼그라든 지금이 시장 기능을 돌려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이를 놓치게 되면 주택시장은 나중에 또 규제완화 롤러코스터를 타게 될 것"라고 경고했다.
■DSR 규제 추가 조정해야 대출 규제완화 효과 나타나
전문가들은 원 장관과 다르게 주택시장은 이미 경착륙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문재인 정부때의 반시장적 규제를 없애 시장기능을 살려놔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우선 대출규제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1월 규제지역 내 무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최대 50%까지 상향조정하고,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에서의 15억 초과 아파트에 대해서도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했다. 새 아파트 중도금 대출 보증도 현행 분양가 '9억원 이하'에서 '12억원 이하'로 확대했다. 지난 2019년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말도 안되는 대출규제를 정상화시킨 것은 다소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조치다. 그러나 이 조치만으로 주택담보대출 시장이 정상화 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있다. 주담대 금리가 상단 기준 7%를 넘어선 상황에서 총부채상환비율(DSR) 40% 규제를 손대지 않으면 대출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봉이 6000만원 수준인 직장인이 금리 6.50%, 40년 원리금균등상환 방식으로 주담대를 받을 경우 대출 가능액은 1억7000만원이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마이너스대출이나 자동차 할부금융이 있을 경우는 더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출금리가 워낙 많이 올라 DSR을 그대로 두면 오히려 대출가능액이 과거보다 더 줄어드는 경우도 생긴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몇년새 가계부채 규모가 크게 늘었지만 자금이 꼭 필요한 실수요자를 위해서는 DSR을 어느 정도 높여줘도 주담대 채권이 부실화 될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워낙 시장금리가 높아 대출여건이 안되는 경우 은행에서 사전심사에서 걸러낼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일률적으로 과도하게 제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취득세부터 손보자.. 10억 아파트 구입하면 3300만원
전문가들은 취득세도 서둘러 손 봐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현재 취득세는 1주택자(일시적 2주택자 포함)6억원 이하 1.1~1.3%, 6억원 초과~9억원 이하 1.11~3.50%, 9억원 초과 3.30~3.50%에 달한다. 웬만한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6억원에 달하고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0억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이같은 취득세는 과도하다는 것이다.
실제 10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한다고 치면 1주택자라 하더라도 취득세만 330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중개수수료(0.9% 이내)까지 합쳐지면 4000만원이 훌쩍 넘는 돈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만약 다주택자라고 하면 주택 구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취득세가 기본적으로 8.40%에서 시작해 많게는 13.40%에 달하기 때문이다. 앞서 위의 사례처럼 안 씨 등 피해자들의 물건이 팔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취득세율을 조정하거나, 취득세 적용 구간을 다시 짜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말한다. 과거 2013년 박근혜 정부때는 주택거래 활성화를 위해 취득세를 최대 절반으로 내린 경험이 있다. 당시 6억원 이하 주택은 2%→1%, 6억원 초과~9억원 이하 주택은 2%→2%, 9억원 초과 주택은 4%→3%로 낮추면서 거래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만약 이런 조치가 어렵다면 세율 구간을 조정해 높이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외곽지역 규제 푼다고 누가 집살까..노른자위 지역부터 풀어야
최근 규제지역 해제도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지난 10월 서울과 서울에 인접한 과천, 성남, 하남, 광명 등 경기 지역 4곳을 제외하고 전국의 모든 지역이 부동산 규제지역을 해제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현재 규제지역 해제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 전문가는 "정부가 이번에 규제를 해제한 곳은 죄다 시장상황이 안좋고 주택보급률도 높은 지역"이라며 "실거주요건 배제, 다주택자 패널티 등이 약간 완화되지만 없어지는게 아닌데 누가 해당 지역에서 주택을 구입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부가 주택시장 정상화가 목표라면 이런 외곽지역이 아닌 서울과 주변 핵심지역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택 수요가 있는 곳에서 거래를 원활하게 해줘야 그 온기가 외곽지역으로 퍼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에 제외된 서울과 경기 지역 4곳도 집값 내림폭이 심해 이미 규제지역 해제에 필요한 정량요건은 모두 갖춘 상태다. 또 다른 전문가는 "서울에서도 '노도강(노원, 도봉, 강북)' 등 많이 떨어진 곳이 많은데 정부가 정무적 판단을 들이대면서 규제 완화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함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도 검토할 때가 됐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 전문가는 "지금은 어떤 규제를 풀어도 시장이 급등할 가능성이 없는데 경착륙이 확실한 상황에서 나중에 주택시장 규제를 한꺼번에 풀게 되면 자칫 규제완화로 인한 롤러코스터가 발생할 수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과감하게 시장 정상화에 나서는 게 오히려 주택시장을 덜 자극하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