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널주택의 겨울..."추위와 소음, 미안함을 견디는 삶"
2022.12.07 05:00
수정 : 2022.12.07 05: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패널(panel)'의 사전적 의미 중에 하나는 '건축용 널빤지'다. 그럼 널빤지로 만든 주택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일단 단열이 안돼서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요즘 같은 시기에는 무척 추울 것이다. 추위를 막기 위해 난방을 지속한다면 고유가에 만만치 않은 기름값에 생활이 어려워 보인다.
이처럼 문제가 많은 거주공간이지만 패널로 만들어진 주택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 이른바 '원룸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택 유형 중 하나가 패널주택이다. 공급자 입장에선 건축선 규제 등을 신경 쓰지 않고 더 많은 원룸을 임대할 수 있고, 수요자 입장에선 저렴한 값으로 서울 살이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패널주택은 전월세 시장에 꾸준히 공급된다. 하지만 단열과 소음, 화재에 취약해 양질의 주거시설로 보기 불편하다.
이에 본지 기자는 패널주택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지를 알아보기 위해 패널주택 거주자 집을 찾아 일상을 함께 해봤다.
"덜 춥기 위해 난방한다".. 패딩 입고 잠자리
서울 동대문구의 한 패널주택에 자취를 하는 대학원생 강모씨(27)는 지난 5일 기자와 만나 "안 춥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덜 춥게 하기 위해 난방을 뗀다"고 입을 뗐다.
강씨의 자취방은 이른바 '빌라' 옥상층에 패널을 덧대어 만들어진 공간이다. 연구실에서 집으로 돌아온 강씨는 우선 보일러의 실내 온도를 25도로 올린다고 한다. 집을 감싸고 있는 한기를 몰아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보일러 온도를 올리는 것으로는 실내를 가득 채운 한기를 몰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이내 강씨는 긴팔 위에 경량 패딩을 껴입었다. 또 침대에 누워 두꺼운 솜이불을 정수리까지 끌어올린 채 잠을 청했다.
단열이 안 되는 집에 살면서 강씨가 느끼는 또다른 부담이라고 하면 '난방비'다. 현재 강씨는 다른 '원룸족' 친구들 보다 난방비를 약 2배 더 많이 지출한다. 강씨가 납부한 지난달 가스비는 3만4460원. 강씨와 비슷하게 5~6평 원룸에 사는 주변 친구들이 낸 지난달 가스비의 평균 금액은 1만6350원이다.
강씨는 "단열이 취약한 자취방(패널주택)에 살고 있기 때문에 10월 말부터 보일러를 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 기자가 방문한 강씨의 자취방은 바닥과 천장의 온도차가 상당했다. 바닥은 절절 끓는 반면 천장 위쪽으론 조그맣게 입김이 나왔다.
아울러 패널주택에 살면서 건강에 대한 걱정도 커졌다는 것이 강씨의 이야기다. 바로 '곰팡이' 때문이다.
자취방 한 모퉁이의 벽면과 천장이 만나는 몰딩 부분에 곰팡이가 눈에 띄었다. 2주 전부터 벽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하면서 우연 발견한 것이다. 강씨는 임시방편으로 휴지를 덧대고 있었다.
패널로 된 벽은 방음에도 취약하다. 연구실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시간은 저녁 11시, 강씨는 샤워 후 마음 편히 머리를 말릴 수 없다. 옆방으로 소리가 새어나가기 때문이다.
강씨는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정께 헤어드라이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며 "다음날 아침 포스트잇을 통해 '밤에 헤어드라이기 사용을 자제해 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아마도 옆집에 사는 사람이 붙여놓고 간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집
'이런 주택에 살지 않으면 된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지만 강씨의 개인사정상 이사가 쉽지 않다.
강씨는 지난 2015년 대학 진학을 위해 부산에서 상경했다. 지난 7년 동안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기숙사, 고시원 등을 전전했다. 철근콘크리트가 아닌 패널주택에 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월부터다. 이마저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세자금대출을 통해 간신히 얻을 수 있었다.
강씨는 "단열과 소음에 취약하지 않은 안전한 자취방에 들어가고 싶지만 이 같은 방들은 매달 월세를 50만원 이상을 내야 하거나 전세금을 1억2000만원 이상을 얹어 줘야 한다. 그러기엔 수중에 돈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자취방이 아니면 저렴한 비용으로 서울 땅에 붙어 있을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