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빚 떠안는 아이들.. '빚의 대물림' 족쇄 풀릴까

      2022.12.08 05:00   수정 : 2022.12.08 05:00기사원문
#. 여덟살인 A양은 친모가 지병으로 사망한 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이후 A양 할아버지는 후견인으로 선임됐다. 할아버지는 A양 친모가 생전 카드빚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친모 사망 뒤에도 지속적으로 1500만원가량의 채무 독촉을 받았지만 한정승인(상속재산 내에서만 상속채무 부담)이나 포기제도에 대해 알지 못했다.

뒤늦게 A양에게 채무가 상속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나 이미 고려기간 3개월이 지난 상태였고, A양에게 남은 것은 파산신청 뿐이었다.

[파이낸셜뉴스] 많게는 수천만원, 수억원대에 달하는 부모 빚을 물려받은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후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빚을 물려받지 않도록 하는 '빚 대물림 방지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하면서 그동안 취약계층을 옭아맸던 빚의 족쇄가 해결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간 미성년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없이 부모 빚에 대한 상속 방식을 결정할 수 없어 사각지대에 놓여왔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막대한 빚을 대물림하다보면 자칫 성년이 되어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커녕 빚이 빚을 낳는 경제적 악순환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 몰라 '빚더미 낙인' 찍힌 아이들

8일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 3월까지 미성년자 개인파산 신청은 총 80건에 이른다. 이중 대부분은 채무 상속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A양 사례와 같이 그동안 미성년자들의 파산 신청이 잇따랐던 건 법정대리인 동의없이 상속 방식을 선택할 수 없었던 현행법의 허점 때문이었다.

현행법에선 상속인이 부모 등 피상속자의 사망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상속재산과 채무를 전부 물려받는 '단순승인' △상속재산 내에서만 상속채무를 부담하는 '한정승인' △상속을 전부 포기하는 '상속포기'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3개월 내에 의사 표시를 안 할 경우 '단순승인'으로 간주한다.

미성년 상속인이 파산 신청을 피하기 위해선 반드시 법정대리인의 '한정승인' 또는 '상속포기' 결정이 필요한데 법정대리인이 법률에 무지하거나 연락이 단절되는 경우 미성년자인 자녀가 모든 빚을 물려받게 되는 '단순승인'으로 간주돼 개인 파산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제적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특히 한부모·조손가정, 가정위탁, 보호시설 거주 아동 등 취약계층의 경우 법정대리인과의 관계가 단절된 사례가 상대적으로 많다보니 현 제도가 취약계층을 법 구제의 사각지대로 몰아내는 구조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최근 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전가영 변호사(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는 지난해 국회에서 개최된 '미성년자 빚대물림 방지를 위한 민법 개정의 필요성과 개정방향' 토론회에서 "미성년 상속인은 상속채무 초과사실을 인지해도 한정승인, 상속포기 등의 여부는 전적으로 법정대리인에게 달려있어 사각지대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며 "법체계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미성년을 보호하기 위한 법 개정이 조속히 진행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개정법안이 발의된 상황이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지난해 5월 미성년 상속인의 경우 상속채무가 과다한 경우 법정대리인이 단순승인을 했더라도 한정승인을 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민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족쇄 풀릴까


이런 가운데 소위 '미성년 상속인 빚 대물림 방지법'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이 같은 미성년자의 '빚의 대물림' 고리가 과연 제대로 끊어질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미성년자 상속인이 빚을 물려받더라도 성인이 된 후 한정승인을 가능토록 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지난달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향후 미성년 상속인은 성인이 된 후 물려받은 빚이 재산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 해당일로부터 3개월 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다.

또 법 시행일 기준 19세 미만인 모든 미성년자와 상속채무 초과 사실을 알지 못하는 성년자에게도 개정 규정을 소급 적용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송기헌 의원은 "청년 세대를 옭아매던 빚의 족쇄가 풀리게 됐다"며 "앞으로도 누구나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정한 사회가 되도록 의정활동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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