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논리에 휘둘린 한국 경제 '초비상'…시계 '0'

      2022.12.11 17:49   수정 : 2022.12.12 09:3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민생은 안중에 없고 당리당략에만 휘둘리는 정치와 특정 분야 이익만을 앞세운 불법 파업의 후유증이 한국 경제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내년도 국정 살림살이에 쓰일 새해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이 정기국회 내 처리 무산이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에 직면하면서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이른바 3고(高) 파고에 휘청거리는 국내 경제의 불확실성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

총파업 고비를 겨우 넘겼지만 이미 전(全) 산업 분야로 확산된 화물연대 파업 장기화에 따른 손실이 수조원대에 달하면서 국내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마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특히 경제계는 내년 최악의 경기 상황이 예고되는 가운데 파업 후폭풍과 법인세율 인하 무산 등에 따른 경영 리스크 악화 요인까지 가중되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 기업들은 운용비 절감, 신규 투자 연기 등 자체적으로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하는 등 초비상에 걸렸다.


■당리당략에 정기국회 처리 첫 무산
11일 재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안의 정기국회 처리가 끝내 무산됐다. 여야는 정기국회 만료일인 지난 9일 막판 담판을 시도했지만 주요 쟁점 예산을 비롯해 법인세율 인하 등 예산부수법안을 놓고 최종 조율에 실패했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내년도 예산안이 정기국회 이후로 넘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장 큰 쟁점은 법인세율 인하(25%→22%)다. 여당은 대내외적인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기업 부담을 줄이고 투자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법인세율 인하가 시급하다는 입장인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초대기업 감세는 재벌 특혜'라고 맞섰다.

여야는 또 대통령실 이전 및 경찰국 예산 등 '윤석열 정부 예산'과 지역 화폐 예산 등 '이재명표 예산'을 둘러싼 증·감액을 놓고도 양보 없는 외나무 혈투를 이어 갔다. 총 감액 규모와 관련, 2조6000억을 마지노선으로 삼은 여당과 5조 이상을 요구하는 야당 간 대립각이 여전하다. 다만 여야는 추가 협상을 거쳐 오는 15일 본회의에서 합의 처리키로 했다. 하지만 쟁점 예산과 부수법안을 놓고 여야 간 견해차가 워낙 커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내 처리 무산 시 헌정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 사태가 우려된다. 준예산 편성 시 일부 인건비를 빼고 SOC 투자 및 복지 예산 집행이 '올 스톱'된다.

자력 생존 내몰린 경제계, 초비상
경제계는 내년 최악의 경기 침체를 앞두고 화물연대 파업, 법인세 인하 처리 지연 등 국내 경영 리스크 악화로 말 그대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여야가 경제 활성화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삼성 등 주요 기업들은 운용비 절감, 투자 연기 등 비상 경영 체제로 자구책 마련에 돌입했다.

우선 16일간 이어진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계에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석유화학, 철강, 건설 등 산업계 피해가 4조원을 넘은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총파업 철회로 최악의 상황은 넘겼지만 공장에 발이 묶인 제품들의 출하 정상화까지는 일주일 이상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화물연대 소속 차주의 운송 비중이 큰 석유화학과 시멘트 업계도 급한 불은 껐지만, 언제 파업 불씨가 다시 살아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만약 파업이 일주일 더 이어졌다면 일부 석유화학 소재 기업들은 공장을 아예 멈춰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정부의 고강도 행정 조치로 위기는 넘겼지만 운송 대란이 재발될 걱정에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법인세법 개정안이 공전 중인 것도 경제계의 애만 태우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6단체는 지난 9일 법인세율 인하가 물 건너가자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앞서 이들이 세 차례나 법인세율 인하를 요청했지만 정치권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경제6단체는 공동성명에서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고 심지어 내후년까지도 저성장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활력을 되찾기 위한 제도상 모멘텀을 마련해 주는 것이 정부와 국회의 중요한 책무"라며 조속한 법인세법 개정안 처리를 거듭 촉구했다.


올 상반기만 14조원대 영업 손실을 기록한 한국전력의 채무 불이행(default) 상황을 막기 위해 회사채 발행 한도를 6배까지 늘리도록 한 '한전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도 전기료 폭등 등 시장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glemooree@fnnews.com 김해솔 김동호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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