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초 판매 늘어난 독일, 전기차 세우는 스위스... 최악의 겨울 덮친 유럽

      2022.12.11 18:32   수정 : 2022.12.11 18:32기사원문
유례없는 에너지 위기를 맞고 있는 전 세계가 코로나19 대유행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이중 충격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 힘들 것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전망하고 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항의로 유럽 국가들은 의존율이 높은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제재를 실시해왔다. 지난 5일부터 제재 수위를 더 높여 유럽연합(EU)은 해상을 통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했으며 내년 2월부터는 휘발유와 디젤유 등 러시아산 석유제품 수입을 금지할 예정이다.

또 주요7개국(G7)이 러시아산 원유의 판매 상한 가격을 배럴당 60달러로 못박는데 동참함으로써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비용 조달을 최대한 막으려 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에너지 부족 사태 위험을 무릅쓰고 단호하게 러시아에 맞서는 것에 대해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마치 영웅적인 행동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의 위기가 에너지에 국한되지 않는 글로벌 지정학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 제재, 일제히 가격 상승 촉발

유럽의 대 러시아 제재는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림으로써 유럽대륙 내 부채가 많은 국가들과 세계의 개도국, 에너지 순수입국들을 불안에 빠뜨릴 수 있어 위기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급등했던 천연가스의 가격이 떨어지긴 했지만 유럽 에너지 사태가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가스 가격이 10% 오를 때마다 겨울철 사망자가 0.6% 증가할 것이라며 이것은 유럽에서 앞으로 수개월 내 고령자 10만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화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현재까지 사망한 전사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EU 국가의 시민들이 추위로 인해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추운 날씨로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면역체계가 약해진 틈을 타 독감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 오래 잔류하게 되고 체온 저하 등으로 뇌졸중이나 심장마비 발생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의 온화한 국가들은 취약한 난방 시설로 인해 겨울철 사망자가 여름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뿐만 아니라 우방과 적 모두에게 경제적으로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구 남반구와 개도국에서도 에너지 전쟁 여파로 인한 재정 부담이 커지고 내년에는 이들 국가들의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 유력한 상황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유럽발 에너지 사태는 유럽의 번영에 위기를 안길뿐만 아니라 범대서양 경제협력에도 금이 가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자국에서 생산한 친환경 에너지와 제품에 4000억달러(약 527조원) 규모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보호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어 EU와 마찰을 빚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동안 값싼 러시아산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한 EU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줬다. 일부 EU 국가들이 에너지 탈러시아를 시도하면서 대신 중국에 접근하려 하고 있지만 이것 또한 새로운 의존으로 이어질 수 있다.

EU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 비중을 높이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중국이 생산을 장악하고 있는 희토류가 절대 필요하기 때문이다. EU가 친환경 기술 경쟁력과 혁신에서 중국에 뒤져있는 상황에서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는 화석연료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온화한 날씨 끝…본격 에너지 대란

EU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천연가스의 40~50%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해 사용했다. 지난 8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럽으로 연결되는 가스관을 차단하면서 가격이 급등했고 겨울을 앞두고 비축에 비상이 걸렸다.

여기에 러시아에서 독일로 연결되는 해저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1이 지난 9월 사보타주(고의적 파괴행위)로 추정되는 피해를 입어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유럽은 지난 10~11월 예상 밖의 온화했던 날씨 덕분에 에너지 사용을 절감하면서 일단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EU는 겨울 수요에 대비해서 11월 1일까지 회원국들에게 천연가스 저장 시설의 80%를 채울 것을 요구했으며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돼 지난 4일 현재 저장률 91%를 보이고 있다.

EU는 지난 11월 천연가스 수요를 2017~21년의 평균 보다 24% 줄일 수 있었다. 가스 가격 상승으로 산업계의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가스 소비 감소는 겨울용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유럽의 정부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날씨가 점차 추워지면서 가스 소비가 늘고 가격도 다시 오르고 있다.

북극에서 찬 공기가 이동하면서 본격 추위가 시작될 것에 대비해 EU 회원국 정부들은 에너지 공급 차질로 생길 수 있는 정전 발생에 대비할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프랑스는 이르면 다음 달부터 순환 정전이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공무원들에게 준비를 지시했다. 영국 국영 전력업체는 가스가 부족해질 경우 오후 4~7시에 가정에 전기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위스는 이번 겨울 전력 사정이 나빠질 경우 비필수적인 전기차의 사용을 중단시키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전체 자동차의 3분의 1이 전기차인 핀란드는 아침에 차유리에 낀 성에를 차량 히터 가동이 아닌 손으로 긁어서 제거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러시아산 천연 가스 의존도가 가장 높은 독일에서는 양초 판매가 급증하고 있으며 손전등과 함께 취사할 수 있는 캠핑 장비 확보도 권장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겨울 유럽 도시들에서 정전으로 나타날 수 있는 시나리오로 △휴대폰과 인터넷 서비스 중단 △조명과 난방 부족에 따른 휴교 △도로 신호등 미작동을 제기했다.


가정이나 학교, 업소 뿐만 아니라 열차 운행까지 멈추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겨울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중단에 따른 유럽의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EU가 이번 겨울에 필요한 가스는 확보했지만 에너지 전문가들은 러시아산 공급이 없는 내년에는 저장 시설을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하고 있어 EU의 중대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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