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와 무죄 사이

      2022.12.25 18:43   수정 : 2022.12.25 18:43기사원문
무죄가 선고될 때 피고인들이 보이는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마치 무죄 선고를 예상했던 것처럼 담담한 피고인도 있지만, 그간의 긴장이 풀린 듯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거나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보이는 등 몰아치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피고인도 적지 않다. 짧은 순간 얼굴을 스치는 오묘한 표정을 보고 있자면, 그들의 일생일대의 순간을 감히 엿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피고인과 피의자를 무죄로 추정한다는 원칙이다. 검찰이 기소한 사건을 심리한 결과 판사가 유죄판결을 내릴 확신을 얻지 못할 때에는 '의심스러운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본다'는 법리에 따라 무죄판결을 하게 된다.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충분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무죄 가능성을 놓치지 않겠다는 이런 형사소송 대원칙에 기반한 것이다.

한 변호사단체가 조사해 발표하는 문제법관 사례에 매년 "예단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는 걸 보면, 무죄 추정의 원칙은 법정에 피고인 신분으로 선 이들에게 가장 간절한 원칙인 듯하다. 홀로 혐의를 부인하는 피고인에게 "왜 당신만 부인하느냐"며 비꼬거나, 진술증거에 동의하지 않자 "피고인 주장대로 증언할 것 같으냐"며 면박을 주는 것도 모두 예단을 드러내는 문제사례로 꼽혔다. 누군가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며 법정에 선 것만으로도 유죄를 의심하지만, 운이 좀 나쁜 우연이 겹쳐 법정에 선 사람이라면 낯선 용어와 위압적인 법정 분위기 속에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무죄 추정의 원칙을 찾게 될 수밖에 없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법정에서뿐만 아니라 수사 단계에서도 지켜져야 하는 원칙이지만, 매년 무죄가 확정된 구속피고인·피의자들에게 준 형사보상금 액수를 보면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 보인다. 지난해에만 당초 배정된 예산을 훌쩍 넘긴 443억원이 형사보상금으로 나갔다.
1990년 '부산 낙동강변 살해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모진 고문에 허위자백으로 21년간 억울하게 옥살이한 장동익씨는 재심 무죄판결에 "100명 진범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했다. "허위자백이라는 주장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는 그의 말은 과연 30년이 지난 현재 얼마나 힘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clean@fnnews.com 이정화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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