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유럽 역내 질서 재편… 요동치는 동북아, 군비경쟁 본격화될 것"
2022.12.27 05:00
수정 : 2022.12.27 05:00기사원문
올해는 미·중 패권 다툼을 비롯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등 국제질서 재편을 둘러싸고 주요 강대국들간 본격적인 경쟁이 펼쳐졌다. 특히 반도체를 비롯해 원자재를 둘러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놓고 미·중간 사활을 건 힘겨루기가 어느때보다 치열했다.
2차 대전 이후 핵무기 보유국인 미·중·러가 '군사적으로 직접 충돌'하는 전쟁(War) 리스크는 줄어든 반면 '영향력 확대(Expansion of influence)'를 통한 국제질서 재편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게 특징이다.
2022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해 일본의 대규모 군사력 강화로 막을 내리고' 있다.
미·중 갈등의 심화와 대만해협 위기의 고조, 중공 20차 당대회와 시진핑 총서기의 3연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마찰, 콜롬비아와 브라질의 대선, 중·러를 뒷배로 잇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등을 통해 끊임없이 핵 위협을 고도화하는 북한까지 많은 사건이 발생했다. 올해 발생한 개별적인 사건들을 모두 묶어 통찰하긴 쉽진 않지만 이를 토대로 향후 국제질서가 어떻게 재편될 지 조망해보고자 한다.
■유럽의 역내 질서 재편 전망
올해 국제질서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지역은 유럽으로 지난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 순식간에 키이우 함락과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완강한 저항을 직면해 10개월째 전쟁 중이다.
전쟁은 대규모의 인명 피해와 난민을 발생시켰고, 식량 생산과 에너지 수급을 포함해 세계 군사·경제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럽은 이를 계기로 미국과 함께 고강도 대러 제재를 부과하고 빠르게 규합해 북유럽의 오랜 중립국 스웨덴과 핀란드가 NATO에 가입했고, 덴마크도 30년만에 EU 공동방위정책에 참여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국방비 증액과 무기 도입 확대를 천명했으며, 반면 중국은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전쟁은 진영 간 대결 양상을 띠게 됐다. NATO는 새로운 전략개념을 채택해 러시아는 '위협'으로, 중국은 '도전'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그 속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 진영 모두 견고하지 않으며, 모두 균열 요인을 내포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유럽 주요 국가들은 러시아의 위협에 대해선 미국과 유사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중국에 대해선 그렇지 않으며, 미국 우선 일방주의 정책에 갖는 불만이 커지고 있으며, 러-우 전쟁에 대한 피로감도 계속해서 쌓이고 있다.
한편 중국도 러-우 전쟁에 과도한 연루를 원치 않으며, 동시에 러시아의 힘이 약화돼 미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손대권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진영간 대립이라는 구심력과 개별 국가들의 이익이라는 원심력 간의 상호작용 결과에 따라 2023년 유럽 역내 질서가 재편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사우디간 균열..러·중엔 기회, 이란 카드로 지속 불투명
중동 지역에선 전통적 친미 노선의 사우디아라비아가 빈살만 왕세자의 주도하에 점차 미국과의 거리두기에 나섰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오바마 행정부 시기의 이란 핵합의(JCPOA)를 파기,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을 중심으로 중동 질서를 재편하고자 했고 사우디는 그런 트럼프의 중동 정책에 협력, 배후 지지 역할을 맡았었지만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후, 미국은 중동 정책을 다시 오바마 시기로 돌려놓고자 시도하고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에 반대하기도 하는 등 미국과 사우디 간의 지속적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둘러싸고 바이든 대통령은 빈살만 왕세자를 강력히 비난해, 국가 간 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우디와 미국의 균열은 러·중국에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좋은 기회다. 2016년 OPEC Plus에 초청받은 러시아는 사우디와 석유 증산 계획과 관련하여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군사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사우디 역시도 이에 응해 대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중국도 사우디와의 관계 증진에 나서 시진핑 주석은 최근 사우디를 방문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으며 석유와 가스 거래에 위안화 사용을 추진할 것을 밝힘으로써 페트로 달러 질서를 흔들어보겠다는 야심을 내비쳤다.
현재 사우디는 에너지 의존형 경제구조를 벗어나 첨단산업을 육성하고자 시도하고 있으며, 사우디도 미국의 중동 내 영향력 견제 전략을 굳혔다면 중국은 좋은 협력 대상이다.
카타르 월드컵에 세계가 정신이 팔려있던 사이, 중국은 카타르와 610억 달러 규모의 LNG 수입 계약을 맺었다. UAE도 중국산 5G 장비를 구매하지 말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고 중국과의 산업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다만 사우디의 대미 거리두기가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사우디에 제공해줄 수 있는 보상은 제한적이며 빈살만의 반감은 미국이라기보다는 바이든이라는 개인을 향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무엇보다 사우디가 반미 노선을 지속할 경우, 미국에는 '이란 카드'가 있다"며 "현재 이란은 반정부 시위와 JCPOA 재협상 난항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매우 많은 상황이지만 2023년에는 이러한 불확실성이 일정 수준 제거될 전망에 따라 중동 정세의 변화 방향도 더욱 명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중남미 지역서 '핑크타이드' 상시 재교체 가능
중남미 지역은 2018년 멕시코 선거를 시작으로, 2019년 아르헨티나, 2020년 볼리바아, 2021년 페루와 칠레, 온두라스, 2022년 콜롬비아와 브라질도 모두 좌파 정권이 승리함으로써 중남미 지역 내 경제규모 상위권 국가들에서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에 지리적·경제적으로 많이 의존하고 있는 반면 정치적, 경제적 갈등을 겪은 바 있다. 33개 중남미 국가들 중 절반 이상이 냉전기 미국의 비밀공작으로 정권이 전복된 경험이 있고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반감의 정서가 있다.
이들 국가는 미국의 정책에 협조하기보단,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을 추진한다. 브라질을 비롯한 다수의 중남미 국가는 미국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고, 쿠바·니카라과·볼리비아·엘살바도르·베네수엘라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2022년 6월 미국은 1994년 이후 28년 만에 자국에서 첫 미주 정상회의를 개최했지만 바이든 정부는 '비민주 국가'의 정상들은 초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워 쿠바·니카라과·베네수엘라 정상은 초청하지 않아 중남미 일부 국가들은 미국의 이 같은 정책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멕시코는 대통령은 회의 보이콧을 선언했고 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 등 국가는 국가 정상 대신 대리인을 회의에 파견한 바 있다.
지난 2010년 중남미 국가들은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국가 공동체(CELAC)를 설립, 미국 주도의 미주기구(OAS·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를 견제하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은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하고 있으며 중국은 브라질의 최대 수출국 관계로 지난 10월 정권을 잡은 룰라 정부이 이 같은 역할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의구심이 있다.
최근 중·러는 브라질과의 유대 강화의 플랫폼으로 BRICS의 외연을 확대하는 BRICS plus를 추진해 이란과 아르헨티나도 가입 의사를 밝혔다.
손 교수는 "중남미의 핑크타이드'('분홍색 물결' 중남미에서 좌파 세력이 다수 집권하는 현상)는 상당 부분 우파 정권의 무능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 불안정, 빈곤과 실업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중적 분노의 발호였기 때문에 좌파 정권들은 언제든 재교체될 수 있다"고 봤다.
이어 "하지만 중남미의 경제적 불안은 상당 부분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것으로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 주도의 IMF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자 하고 있어 중남미 국가들에 영향력의 확대를 추구하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 자국 이익이 최우선인 중남미 국가들 간의 치열한 수 싸움이 지속할 전망이다.
■인도·태평양, 북·중·러 對 한·미·일 대치속 일본 군사력 강화
미·중 간의 전략경쟁이 가장 치열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AUKUS나 IPEF 등 다양한 소다자주의 협의체를 구축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특히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위기의 상시화 형태를 띠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여러 차례 대만 유사시 미국 개입과 전략적 모호성 포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의 대만 방문으로 인해 양안 간 사실상 '제4차 대만해협 위기' 정도의 긴장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은 3연임에 성공한 20차 당대회 연설에서 대만 독립 반대와 대만에 무력 사용 포기 약속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다. 미·중 경쟁 구도 격화는 북한 운신의 폭을 넓혀 주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미·중 사이의 완충지대인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커지지만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레버리지가 줄어들어 북한에 유리한 국면으로 작용한다.
북한도 이러한 계산을 바탕으로 지난 1년간 김정은 정권은 마음 놓고 도발을 감행할 수 있었다. ICBM을 포함해 일상적으로 미사일 실험발사 도발과 9월 핵무력정책법 재정, 고체연료 미사일 발사 실험 등 '핵무력 확보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은 앞으로도 지속 상승할 전망이다.
한편 미국은 유럽 전역에서 러시아를 상대하고, 동시에 세계 도처에서 확대되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로 인해 북한 문제 해결에 전력을 투사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한미동맹의 확장억제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일각에선 면피하듯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에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할 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2021년 출범한 일본의 기시다 내각은 그해 10월 중의원 선거와 2022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를 바탕으로 중·러의 공세적 외교와 군사력 강화, 우크라이나 전쟁·대만해협 위기·북한 미사일의 일본 상공 통과 등을 겪으며 국가안전보장전략, 방위계획대강, 중기방위력정비계획 등 세 개의 문서 개정하여 반격능력을 확보하고, 방위비를 GDP 대비 2퍼센트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관련, 손 교수는 "향후 일본은 동아시아 국제질서 구축에 있어 더 큰 역할을 하려고 할 것이고, 중국은 이를 견제하고자 군사력 강화를 더욱 가속할 가능성이 커, 북한의 도발과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 한 데 엮여 동북아 지역에서 군비경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