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의 열병을 치료했던 의원은 자칫 부인에게 OO을 당할 뻔 했다
2023.01.07 06:00
수정 : 2023.01.07 09:59기사원문
옛날 한 관리가 열병(熱病)을 앓게 되었다. 관리의 열병은 마치 상한병(傷寒病)처럼 감기증상이 있는 듯 하더니 속열이 나면서 답답해 했다.
그러나 관리는 이러한 처방을 복용하고서는 열이 떨어지는 듯했으나 지속적인 고열은 조열(潮熱)로 바뀌었고, 가슴이 답답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열(潮熱)은 음허증(陰虛症)에 나타나는 열로 정상 체온을 유지하다가도 일정 시각만 되면 오르는 열을 말한다.
그러다 옆 마을 의원에게도 관리를 진찰하도록 요청이 들어왔다. 옆 마을 의원이 진찰을 해 보니 벌써 대변을 보지 못한 지 3일째가 되었고 진맥을 하니 맥은 깊게 숨겨져 있으면서 완만하고 활(滑)했다. 활맥(滑脈)이 잡히는 것을 보니 아직도 열을 담(痰)이 감싸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관리는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의원이 보기에 관리는 상한(傷寒)이 아닌 온역(溫疫)에 가까웠다.
의원은 대승기탕(大承氣湯)에 생지황 3돈을 가하여 처방해서 이것을 다려서 하루 2첩을 다려서 나눠서 복용하도록 했다. 대승기탕은 체격이 실하고 속 열이 심하고 배가 아주 더부룩한 경우를 치료할 때는 급하게 설사시켜 치료하는 처방이다. 또한 고열로 인한 헛소리나 광증(狂症)에도 사용한다.
그러나 자칫 잘못 처방하면 부작용이 심해 주의해야 한다. 의원이 보기에 관리가 열로 인한 조갈(燥渴)과 흉민(胸悶), 대변불통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것을 보면 적방이라 할 수 있었다.
관리가 대승기탕을 5첩을 복용하고 나자 큰 증상은 잡힌 듯했고, 관리의 집안사람들은 기뻐했다. 의원이 다시 진맥을 해 보니, 양쪽 척맥(尺脈)에 활삭(滑數)한 기미가 있었다. 이는 열(熱)이 되살아려고 하면서 역시 담(痰)도 남아 있는 맥상이다.
의원은 가족들에게 “숨어 있는 열을 아직 다 없애지 못했습니다. 흉격 사이도 열담(熱痰)이 풀리지 않았고 소변도 시원스럽게 보지 못하고 있으니 삼백산(三白散)을 복용하여 대소변을 통해서 남은 독을 씻어내어야 합니다.”하고 말했다.
삼백산이란 처방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지만 여기서는 견우자(나팔꽃씨), 상백피, 백출, 목통, 진피 등으로 이루어진 처방으로 방광에 쌓인 열이 대소변을 통해서 빼내는 처방이다. 의원은 삼백산에 열독을 치는 석고를 가하고자 했다. 그런데 주인 집안의 가까운 친척 중 의서를 많이 읽은 자가 있었는지 반대를 했다.
“가벼운 병에 약의 기운이 쎈 약을 쓸 수 없는 법 아니오?”라는 것이다.
아마도 관리가 초기에는 증상이 중했으나 의원이 대승기탕을 투여한 이후 증상이 호전이 된 것만을 보고 가벼운 병증이라고 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명의라도 환자의 가족이 반대를 하니 안타깝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러더니 관리의 가족은 또 다른 의원을 불러 처방을 요청했다. 새로 온 의원은 약성이 가볍고 시원한 기운을 가진 약재들을 처방했다. 이러한 약재들은 기운이 서늘하면서도 기운을 위로 끌고 올라간다. 이는 원래 옆 마을 의원이 기운을 끌어 내리려고 했던 치료법과는 정반대의 처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새로운 의원의 처방을 복용하고 나자 관리는 안색이 초췌해지더니 가슴을 답답해 하면서 밤낮으로 통증을 호소했다. 지금까지 진료를 요청받은 의원들은 서로 모여 상의까지 했다.
“맥도(脈度)로 보자면 삭(數)하지 않으니 반드시 열이 있다고 볼 수 없을 것이고, 눌러보아도 힘이 없으니 필시 기가 허한 것입니다.”하고는 육군자탕(六君子湯) 4첩을 지어 복용시켰다.
육군자탕은 반하, 백출, 진피, 복령, 인삼, 감초로 구성된 처방으로 기가 허해서 담(痰)이 성(盛)한 것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그랬더니 육군자탕을 복용하고서 관리는 아파서 소리를 지르면 신음소리를 더욱 내면서 미음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더더욱 한 의원은 어디서 구했는지, 처녀의 월경수(月經水)를 썼지만 흉격 사이가 답답하게 막혀 내려가지 않았다. 그러자 온 집안사람들이 손쓸 바를 몰랐다.
집안의 어른들은 옆 마을 의원을 다시 불렀다. 의원이 진맥을 해 보니, 촌관맥이 삽삭(澁數)하고 때로 부정맥의 기운이 있었으며, 양 척맥은 침소(沈小)하고 활실(滑實)하였다.
의원이 “이 병은 하초(下焦)에 숨어 있는 열을 다 씻어내리지 못하여 열담이 흉격에 가득 차 막힌 것이니, 맥이 색소(濇小)한 것은 열이 원기(元氣)를 상하게 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자 주위의 여러 의원들이 “누가 진맥만으로 장부를 꿰뚫어 볼 수 있단 말입니까?”하며 서로 비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 마을 의원이 “이제 조만간 목숨을 걸고 병과 전투를 치르지 않으면 환자의 기혈(氣血)이 모두 고갈되어 손을 쓰기 어려울 것입니다.”라고 하자 환자의 온 집안사람들은 주의 의원들의 비웃음에도 비로소 놀라며 의원에게 간절히 처방을 구하였다.
“제발 아시는 방법대로 해서 어떻게든 살려만 주시오.”라는 것이었다. 사실 의원 입장에서 환자를 앞에서 두고 완치를 장담해서는 안될 노릇이었지만 다른 의원들에게만 치료를 맡겨 놓았다가는 죽음을 재촉하는 것 같아 어쩔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옆 마을 의원은 다시 대승기탕에 생지황 1냥을 더하여 하루에 2차례 복용시키고자 했다. 이번 약은 의원이 직접 다렸다. 약을 모두 달인 후 부엌 안쪽에서 칼을 갈고 있는 부인에게 대승기탕과 함께 토룡탕(土龍湯, 지렁이탕)에 우황환 10환을 타서 아침, 저녁으로 2사발, 자기 전에 1사발을 먹이라고 신신당부하여 일러주었다.
부인은 “이 처방이면 대감을 살릴 수 있는 것이요?”라며 물었다. 의원은 괜히 꼬투리를 잡힐까 봐 “단지 제가 아는 대로 처방했을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삼백탕 대신 다시 대승기탕을 처방한 것은 다른 의원들이 인삼 등의 열약(熱藥)을 쓰면서 열독이 다시 심해진 까닭이었다. 또한 토룡탕에 우황환을 복용시킴은 환자의 맥상이 삽(澁)하면서도 중간중간 결기(結氣, 끊어짐/부정맥)가 있는 것은 심장의 어혈이기 때문이었다. 환자의 집안사람들은 의원의 말대로 2일 동안 약을 썼더니 환자는 이윽고 다시 대소변이 편하게 나왔으며 열은 떨어지고 편히 자고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밥을 달라고 한다고 했다.
의원은 다시 진맥에 나섰다. 맥이 처음에는 느렸으나 이제는 빨라지며 힘이 생겼다. 또 2일 동안 동일한 처방을 썼더니, 크게 설사하고는 여러 증세가 점점 사라졌다. 그래서 현재 복용 중인 처방을 중지하고 시호사물탕(柴胡四物湯)에 대황 2돈을 더하여 하루 2차례 3일을 마무리로 복용시켰더니 제반 증상이 모두 사라졌다.
관리의 동생이 의원을 맞았다. 동생은 의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의외의 말을 했다.
“의원님 다행입니다. 만약 의원님이 형님을 살려내지 못했다면, 형수가 칼을 갈고 기다리고 있어 필시 약을 처방한 의원님을 찔러 죽이고자 하여서 집안사람들은 매우 걱정되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니 처방조차 받지 못할 것 같아서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지금 마침내 효험을 보았으니 다행입니다. 이제야 말씀드림에 너무 송구하고 죄송합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으니 의원은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등골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환자의 열이 심하고 기가 약하여 양기가 소모되고 음기가 고갈되어 살릴 수 없게 되었다면, 이것이 어찌 의원의 죄란 말인가? 의술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부인이 약을 사용하는 시기가 늦어졌거나 다른 의원들의 처방에 문제가 있었음을 생각지 않고 칼을 들고 튀어나왔다면, 그 놀라움이 어떠했을까?’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의원의 처방으로 환자가 살아났으니 다행이다. 옆 마을 의원은 상한(傷寒)의 중병이나 온역(溫疫)을 고쳐서 기사회생시킨 것이 헤아릴 수 없지만, 대략 자신에게 있었던 가장 놀란 경험이기에 후학들의 경계로 삼고자 치료 기록을 남기고자 했다. 상한 열독(熱毒)이나 온역에 과도하게 발산(發散)을 시키거나 열한 기운의 보약을 함부로 처방하는 안될 일이다.
* 제목의 ○○은 ‘죽임’입니다.
■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상한경험방> 傷寒潮熱胸滿. 一官人得傷寒, 諸醫多用發表之劑, 潮熱升降, 胸滿不睡. 召我診之, 脈沈伏緩滑, 此未及治挾痰之毒熱, 用大承氣湯加生地黃三戔, 日再服五貼, 大勢似歇. 主家甚喜. 更診則兩尺有滑數之意. 余曰 “隱熱猶未盡祛, 膈間亦不得利, 及服三白散以滌餘毒.” 主家至親有知醫者, 以爲病輕藥重, 決不可用. 更邀他醫, 用輕淸調理之劑, 病人顔色悽慘, 晝夜叫痛. 諸醫不移侍之皆曰 “以脈度言之, 不數必無熱, 而按之無力, 必是氣虛.” 製用六君子湯四貼, 痛聲尤出, 粥飮亦廢. 一醫用月經, 膈間煩滯而不下, 擧家罔措. 余診之, 寸關澁數, 時有結氣, 兩尺沈小滑實. 余曰: “此病下焦隱熱未能滌下, 熱痰窒滿胸膈, 而脈之濇小, 熱傷元氣故也.” 諸醫曰: “誰能洞見臟腑乎?” 相與哂笑. “今明間如不用背城之戰, 氣血俱竭, 難可下手.” 病人一家始驚動, 懇求藥方. 以大承氣湯加生地黃 一兩, 日再服, 兼以地龍汁調牛黃膏數十丸, 日用二器, 夜服一器之意, 申申叮囑. 病家依余言用之二日, 病人仍得穩睡有食念, 大便滑泄. 余又診之, 脈始遲而數有力. 又勸用二日, 大泄之, 諸症漸退. 改以柴胡四物湯加大黃 二戔, 日再服三日而差. 病人之弟賀曰: “此病若不救, 吾嫂氏已磨劍待之矣. 必欲刺用藥醫, 故吾輩深憂之, 今果收效, 兩家之多幸.” 余聞此言, 不覺心悚. 如或熱重氣弱, 已成陽耗陰渴而不救, 則此豈醫罪? 不知醫理之婦人, 不思用藥之晩, 持刀突出, 其驚爲如何哉? 余治傷寒重病, 起死回生, 未知幾許, 而略服最駭處, 以戒後人.(상한조열흉만. 어떤 관리가 상한을 앓게 되어 여러 의원들이 땀내는 약을 많이 썼더니 조열이 오르내리고 가슴이 그득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나를 부르기에 진맥을 해보니, 맥이 침복하고 완활하였다. 이것은 담을 끼고 있는 열독을 제때 치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승기탕에 생지황 3돈을 더하여 하루에 2차례 먹여 5첩을 썼더니 대세가 멎은 듯하였고, 주인 집안에서는 매우 기뻐하였다. 다시 진맥을 해 보니, 양쪽 척맥에 활삭한 기미가 있었다. 내가 “숨어 있는 열을 아직 다 없애지 못했습니다. 흉격 사이도 열담이 풀리지 않았으니, 삼백산을 복용하여 남은 독을 씻어내어야 합니다.”하고 말하였으나, 주인 집안의 가까운 친척 중 의술을 아는 자가 가벼운 병에 약 기운이 센 약은 절대 쓸 수 없다고 하였다. 다시 다른 의원을 불러 약성이 가벼워 기운이 위로 뜨는 약을 썼더니, 환자의 안색이 처참해지고 밤낮으로 통증을 호소하였다. 여러 의원들이 변함없이 모시며 모두 “맥도로 보자면 삭하지 않으니 반드시 열이 없을 것이고, 눌러보아도 힘이 없으니 필시 기가 허한 것입니다.” 하고는 육군자탕 4첩을 지어 썼더니 아파하는 소리가 더욱 크게 나오고 미음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한 의원이 월경수를 썼지만 흉격 사이가 답답하게 막혀 내려가지 않자 온 집안사람들이 손쓸 바를 몰랐다. 내가 진맥을 해보니, 촌맥과 관맥이 삽삭하고 때로 부정맥의 기운이 있었으며, 양 척맥이 침소하고 활실하였다. 내가 “이 병은 하초에 숨어 있는 열을 다 씻어내리지 못하여 열담이 흉격에 가득 차 막힌 것이니, 맥이 색소한 것은 열이 원기를 상하게 했기 때문입니다.”하니, 여러 의원들이 “누가 장부를 꿰뚫어 볼 수 있단 말인가?”하며 서로 비웃었다. 내가 “조만간 목숨걸고 전투를 치르지 않으면 기혈이 모두 고갈되어 손을 쓰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니, 환자의 온 집안사람들이 비로소 놀라 간절히 처방을 구하였다. 때문에 대승기탕에 생지황 1냥을 더하여 하루에 2차례 먹이고, 아울러 지렁이 즙에 우황고 10환을 타서 낮에는 2그릇, 밤에는 1그릇을 먹이라는 뜻을 신신당부하여 일러주었다. 환자의 집안에서 내 말대로 2일 동안 약을 썼더니 환자가 이윽고 편히 자고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며 대변이 줄줄 나왔다. 내가 또 진맥을 해보니, 맥이 처음에는 느렸으나 이제는 빨라지며 힘이 생겼다. 또 2일 동안 더 권하여 썼더니, 크게 설사하고는 여러 증세가 점점 사라졌다. 다시 시호사물탕에 대황 2돈을 더하여 하루 2차례 3일을 먹이니 나았다. 환자의 동생이 하례하며 “이 병에서 살려내지 못했다면, 우리 형수가 이미 칼을 갈고 기다리고 있어 필시 약을 처방한 의원을 찌르고자 하였을 터라, 우리들은 매우 걱정되었습니다. 지금 마침내 효험을 보았으니 양가의 다행입니다. ” 하였다. 이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졌다. 만약 열이 심하고 기가 약하여 양기가 소모되고 음기가 고갈되어 살릴 수 없게 되었다면, 이것이 어찌 의원의 죄란 말인가? 의술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부인이 약을 사용하는 시기가 늦어졌음을 생각지 않고 칼을 들고 튀어나왔다면, 그 놀라움이 어떠했겠는가? 내가 상한의 중병을 고쳐서 기사회생시킨 것이 헤아릴 수 없지만, 대략 가장 놀라운 경험이기에 후인들의 경계로 삼고자 한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