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투자 유도하려면 금융·稅혜택 등 패키지로 추진해야"
2023.01.03 18:00
수정 : 2023.01.03 18:01기사원문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2년차인 2023년을 '개혁 추진의 원년'으로 삼았다.
경기침체 터널 속에서 칼을 뽑아들어야 하는 예고된 위기와 도전과제 앞에 경제계의 목소리는 비교적 명확하다. 본지가 마련한 '국내 경제 5단체 상근부회장 특별 지상좌담회'에서 부회장들은 공히 "초일류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 적어도 경쟁국들보다 불리하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구체적으로는 법인세율 추가 인하, 글로벌 기준에 맞는 노동개혁·규제개혁의 완수, 투자세액공제 확대 등 위기극복을 위한 '강력한 시그널' 제시, 정부와 야권과의 소통 강화 등 총 4가지로 요약된다. 특히 "개혁의 성공을 위해 정치권이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 경쟁 선진국들이 자국 산업을 키우겠다고 각종 보호장치를 마련하는가 하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 달라는 요구다. 좌담회엔 전국경제인연합회 권태신 부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우태희 부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이동근 부회장, 한국무역협회 정만기 부회장, 중소기업중앙회 정윤모 부회장이 참여했다.
―올해 한국 경제가 '성장률 1%대'란 혹독한 시기를 맞이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어떤 수단을 강구해야 하나.
▲우태희='1.16%'란 수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국 제조업체 2254개사(대한상의 조사)의 전망치다. 현장의 체감경기를 의미한다. 국내외 기관들의 전망치가 1.5~2.0%인 것에 비하면 체감은 더 좋지 않다는 뜻이고, 경기위축으로 가는 시그널을 의미한다. 고금리 영향이 본격화되는 새해 초부터 '경기급락'과 'L자형 침체' 양상이 우려된다. 생존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비상상황이다. 긴축재정이 불가피해진 만큼 국가가 돈을 풀어 성장을 이끌기엔 한계가 있다. 그 대신 기업의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 같은 규제'를 풀 때다. 투자·고용에 중요한 투자세액공제 확대, 반도체특별법 등과 같이 정부가 위기극복을 위한 '강력한 시그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권태신=세계적으로 경제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에선 단연 신속한 정책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정책 지연' '입법 지연'에 대한 우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입법 지연으로 위기극복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 반도체특별법이 여야 간 의견 차이로 국회에서 표류하는 동안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반도체 산업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내몰린 형국이 되지 않았나.
▲정윤모=중소기업의 금리 리스크를 덜기 위한 정부 정책이 시급하다. 지난해 한국은행은 총 7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중소기업의 99.6%가 고금리 리스크 대응방안이 전혀 없거나 불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투자목적 대출은 저금리로 유지하고, 과감한 세제혜택과 규제개혁 등 '기업투자 촉진 패키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번엔 '1%p 인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법인세 인하 문제다. 문재인 정부 때 올린 법인세율을 이명박 정부 때로 환원하기 위해 3%p 인하가 추진됐지만 결론은 1%p 인하에 그쳤다.
▲이동근=아쉬운 부분이다. 법인세 최고세율(기존 25%)을 22%까지 추가적으로 더 낮춰야 한다. 상속세 최고세율 역시 현행 50%(실질 최고세율 65%)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25%까지 내려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최소한, 외국 경쟁기업보다 불리하지 않은 환경에서 뛰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우태희=어정쩡한 인하다. 정치권이 국내 시각에만 매몰되지 말고, 세계 경제로 시야를 넓혀 봤으면 한다. 초부자 감세라는 '우물 안 개구리식' 문제 제기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정만기=선진국조차 자국 제조업을 부흥시키겠다고 노력하는 마당이다. 야당도 견제와 비판은 해야겠지만, 국가의 핵심적 이익에 대해서는 거리낌없이 나서서 정부 정책을 도와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국가의 미래가 별로 없다.
―윤석열 정권이 집권 2년차를 맞아 개혁에 대한 의지도, 요구도 커지고 있다. 민간 중심, 민간 주도의 경제 기본을 말하고 있는데.
▲권태신=올해는 구조개혁에 돌입해야 한다. 전 세계는 이미 자국 산업, 자국 기업 육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경영활동에 심각하게 영향을 주는 법률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상법 등 기업규제 3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이다.
▲이동근=한국의 상황을 좀 객관화해서 볼 필요가 있다. 외국기업의 시선을 전하자면, 외국인투자기업 4곳 중 1곳(27.7%)은 한국에서 사업할 때 '한국 특유의 리스크가 있다'(2021년 11월 경총 조사)고 본다. 그 '리스크'가 뭔지 들여다보면 불투명한 입법규제 남발, 일관성 없는 행정규제, 강성노조, 기업인 형사처벌규정 등 노동규제다. 한국을 '투자하기 어려운 나라'로 만드는 것들이다. 외투기업의 외국인 최고경영자(CEO) 자택 앞에서 자녀 등교시간에 노조가 피켓시위를 벌인다든가, 부당 노동행위로 형사고발 등을 상당히 위협적이고 부담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사업 철수까지 고려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노동개혁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가자는 거다. 파업 시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직장 점거 전면금지, 노조의 재정투명성 확보 등이 개선돼야 한다.
▲정윤모=중소기업은 일감이 있어도 일할 사람이 없고, 근로자는 일하고 싶어도 주52시간에 묶여 일을 할 수가 없는 현실에 놓였다. 제도가 고용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장 개혁은 꼭 필요한 과제다. 지난해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복합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민생보다는 정쟁만 이어가는 국회의 모습에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실망감이 매우 컸다. 국회가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초당적인 협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지금과 같은 경기상황에서 기업의 투자주머니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우태희=당장은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기업이 많지 않겠나. 이런 상황에선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 '한시적 일몰제' 형태로라도 투자촉진책을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 경기침체기마다 운영돼 온 임시투자세액공제를 부활시켜 3~5년이라도 한시적으로 시행한다면 기업들의 숨통을 터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권태신=국내 투자 문제에 앞서 사실, 기업들의 해외이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5년간 해외직접투자(ODI)는 연평균 13.9% 증가한 반면, 국내 총고정투자는 0.2% 증가에 그쳐 기업의 해외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기업 유치는 고사하고, 기업들이 국내에 투자하지 않고 해외로 나가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과도한 기업규제, 강성노조, 고용비용 증가, 조세부담, 규제부담 때문 아니겠는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규제개혁은 과거 정권부터 반복하고 있으니 이제는 장기 미해결과제처럼 여겨진다. 정부와 정치권에 제언을 한다면.
▲정만기=미래 성장동력이라는 국내 스타트업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 중 4분의 1이 규제 때문에 해외로 나가겠다고 한다(무협 조사). 4%도 아니고, 4분의 1이다. 이건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의 연간 입법건수가 2200건 정도 된다. 미국은 대략 200건. 영국 30건이다. 일본이 80건, 프랑스도 100건에 불과하다. 이렇게 법이 많이 만들어지고 규제가 많아서는 기업들이 숨 쉬고 활동할 수 없다. 규제개혁은 대부분 법 제정·개정 사안이다. 정부 혼자서 다 풀 수 없다는 뜻이다. 집권 2년차인 윤석열 정권이 제1번으로 해야 할 일은 의회와 소통을 늘리는 일이다. 야당 내에서도 공감대를 가진 분들이 계실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개혁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가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이동근=투자나 채용을 늘릴수록 기업인의 형사처벌 리스크가 증가하는 역설적 상황,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른바 '노란봉투법'(노조법 2, 3조 개정안)과 같이 인기에 영합한 입법은 최소한 지양해야 한다. 의원 입법에 의한 과도한 규제 양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의원입법 규제영향 분석제' 도입도 필요하다고 본다. 벌써부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포퓰리즘 입법을 추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구조개혁 분야의 입법활동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정윤모=정권 초기에 강한 규제개혁 드라이브를 걸다가 점차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규제만큼은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각오로 정권 말까지 개혁의 동력을 유지해야 한다.
▲권태신=두말할 나위 없이 국토가 작고 자원이 부족한 한국의 성장전략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대표기업을 육성하는 것인데, 기업 자산규모가 1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커지면 이른바 '대기업 차별규제'가 5개에서 127개로 늘어난다. 규제를 이렇게 많이 달고서는 글로벌 거대기업과의 싸움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2003년 헤지펀드 소버린이 SK의 경영권을 공격해서 시세차익 9459억원을 벌고 먹튀했던 사건, 기억하실 거다. 대주주 의결권 3% 제한규정의 맹점을 이용한 헤지펀드의 공격이었다. 1962년 상법 제정 당시 들어간 조항으로 전 세계 유례없는 한국만의 규제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