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트럼프' 지지자들, 2년 만에 의회 난동 재현

      2023.01.09 10:08   수정 : 2023.01.09 10:0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렸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2년 전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의회와 정부 시설에 침입해 난동을 피웠다. 브라질 정부와 미주 각국은 이번 사태를 강력히 규탄했으며 보우소나루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입법·행정·사법 3부 기관 난동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8일(현지시간) 보우소나루 지지자 수천명은 이날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 가운데 일부는 연방 관구에 몰려들어 의회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고 난동을 부리면서 브라질 군부의 쿠데타를 요구했다. 시위대는 의회에 이어 인근 대통령궁과 대법원으로 몰려가 마찬가지로 창문을 깨며 경찰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보안요원들이 폭행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취임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사건 당시 아라라콰라의 홍수 피해 지역을 시찰 중이었으며 의회도 아직 개원하지 않은 상태였다. 브라질 당국은 은 군 병력을 투입해 최루탄을 쏘아가며 침입자들을 몰아냈다. 현지 매체들은 정부가 8일 저녁에 3부 기관의 통제권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룰라는 이번 사태 직후 상파울루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침입자들을 "전체주의자 광신도"라고 부르며 "이번 사태는 전례가 없는 것이며 이에 관련된 사람들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모든 법령을 동원해 관련자들에 대한 죄를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당국에 따르면 최소 200명의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같은날 브라질리아 연방 주지사는 이번 사태 책임을 물어 치안 총 책임자인 안데르송 토레스 안보장관을 해임했다. 그는 전임 보우소나루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냈던 인물이었다. 룰라는 “불행하게도 연방 정부를 지켜야할 연방 경찰이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외신들은 시위대가 이날 오후 2시 30분 무렵 시설 점거에 들어갔다며 현지 경찰이 이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美 의회 난동과 판박이
룰라는 8일 회견에서 "보우소나루가 공격을 독려하는 것 같은 몇 번의 연설을 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3∼2006년과 2007∼2010년에 브라질 대통령을 역임하면서 남미의 '좌파 대부'로 불린 룰라는 지난해 다시 대선에 출마해 10월 결선투표에서 우파 진영의 보우소나루를 1.8%p 차이로 겨우 꺾고 대통령에 3번째 당선됐다. 보우소나루는 선거 패배에 승복하지 않았으며 지난달 30일에 미 플로리다주 올랜도로 떠나 룰라의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보우소나루는 선거 전부터 불복 의사를 내비쳤고 선거 이후에도 권력 이양을 시작했지만 패배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일부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군부에 개입을 촉구했고 주요 군부대 앞에 '애국 캠프'를 차리고 룰라 취임 반대 시위를 벌이는 등 선거 불복 움직임을 보였다.

취임식 당일에도 브라질 곳곳에서 진영별 시위가 벌어졌다. 브라질 당국은 취임식 당일 흉기와 폭죽을 들고 행사장에 들어가려던 남성을 체포했으며 브라질 대법원은 이달 2일까지 브라질리아에서 총기 소지를 금지했다.

외신들은 지난 2021년 1월 6일 당시 미 워싱턴DC에서 벌어졌던 의회 난동 사건을 언급했다. 당시 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의회에 난입해 대선 결과를 확정하던 의회 절차를 방해했다. 트럼프는 사태가 일어난 뒤 한참 뒤에야 지지자를 말리는 성명을 냈고 미 야권은 트럼프가 난동 사건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보우소나루는 8일 사태 직후 트위터를 통해 "평화적 시위는 민주주의의 일부지만, 오늘 일어난 것과 같은 공공건물 파괴와 침입은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룰라를 겨냥해 "현 브라질 정부 수장이 내게 제기한 혐의에 대해서도 증거가 없으므로 부인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는 임기 중에 항상 헌법 조항 내에서 법률, 민주주의, 투명성 및 신성한 자유를 존중하고 수호했다"고 강조했다.


■각국 정상, 브라질 사태에 강력 규탄
보우소나루는 재임 도중에 극우에 가까운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트럼프와 매우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 외신들은 지지자들이 난동을 부린 것 또한 트럼프와 닮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꺾었던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사건 직후 트위터를 통해 "브라질에서의 민주주의와 평화로운 권력 이양에 대한 공격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그는 "브라질의 민주주의 제도는 우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브라질 국민의 의지는 훼손돼선 안 된다"며 "나는 룰라 정부와 계속해서 협력하길 고대한다"고 설명했다.

같은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트위터에다 "우리는 브라질 대통령직과 의회, 대법원에 대한 오늘의 공격을 규탄한다"며 "민주주의 제도를 공격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어떤 때에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의 샤를 미셸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브라질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절대적으로 규탄한다"며 "자유로운 선거에서 브라질 국민 수백만 명이 민주적으로 선출한 룰라 대통령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룰라가 합법적으로 선출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브라질 국민의 의지와 민주주의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중남미의 좌파 정부도 잇따라 이번 사태를 규탄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브라질 국민이 평화와 대통령을 수호하기 위해 집결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우리는 브라질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우파가 조장하는 쿠데타 유령의 귀환을 다시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브리엘 보릭 칠레 대통령은 "민주주의에 대한 비겁하고 비열한 공격"이라고 지적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과두정치 지도자들과 대변인, 광신자들이 선동한 브라질 우파의 쿠데타 시도는 비난받을 만하고 비민주적"이라며 "룰라는 혼자가 아니다.
그는 조국뿐만 아니라 멕시코, 아메리카 대륙, 전 세계 좌파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