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해 기억 안나" 주취감형 사라질까…음주범죄, 2배 가중처벌 추진
2023.01.11 05:00
수정 : 2023.01.11 05: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은 지난 2020년 11월 술에 취한 채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중 택시기사의 목을 움켜잡고 밀치는 등 폭행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 이 전 차관 측은 "만취한 상태라 차량이 운행 중이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2부는 지난해 8월 1심 선고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술에 취한 채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감형을 받는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재판상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주취감형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어 주목된다. '주취감형'(酒醉減刑)은 '술이 취한 상태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심신미약으로 간주해 형벌을 감형한다'는 뜻이다.
'심신미약'으로 간주, 감형 판결
10일 경찰청이 최춘식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관련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21년 사이 발생한 5대 강력범죄(살인·강간·강도·폭력·절도) 230만7017건 중 23.8%인 54만9500건은 음주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형법 제10조 제1항 및 2항은 심신장애로 인한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 상태일 경우 그 행위를 처벌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법원이 해당 조항에 근거해 술에 취한 채 중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사물변별' 또는 '의사결정' 능력이 없었다"는 이유로 형을 감면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20대 남성 A씨는 지난 2021년 12월 인천시 미추홀구 소재 한 빌라에 몰래 침입해 금품을 훔쳤다. 당시 A씨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그러던 중 집주인 B씨(80)가 잠에서 깨자 흉기를 여러 차례 휘둘러 B씨를 다치게 했다. 강도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인천지법 형사12부는 지난해 9월 "심신미약 사태에서 저지른 범죄로 초범인 점을 고려했다"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주취감형 규정이 가해자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 보호 및 음주상태에서의 중대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선 음주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주취감형 규정을 적용하는 대신 오히려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음주행위가 결국 본인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이뤄지는 만큼 범죄가 발생하는 원인 제공도 결국 가해자 자신이라는 논리에서다.
최근 60대 택시기사와 50대 전 여자친구를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구속송치된 이기영(31) 역시 60대 택시기사를 살해하던 당일 음주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기영은 음주운전 중 택시기사 차량과 충돌사고가 발생하자 그를 집으로 유인해 살해한 뒤 시신을 숨긴 혐의를 받는다.
최춘식 의원, 형법 개정안 발의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감경 규정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돼 향후 심사과정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여당 소속 최춘식 의원은 음주 상태에서 형법 상의 모든 죄를 범했을 때 형을 감면하는 대신 각 죄에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에 2배까지 가중처벌토록 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지난 9일 발의했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음주 범죄 당시 피의자의 '자발적 음주행위'는 자의적으로 심신장애를 유발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며 "법적 책임주의 구현을 위해 현행법을 현실에 부합하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강조했다.
최 의원은 이어 "우리나라는 근대 형법상의 기본 원칙인 '책임주의'를 해석해 적용할 때 형벌의 대상을 '책임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적용하고 있어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책임능력이 없도록 만든 개인의 '사전적 고의 또는 과실' 역시 형벌의 대상으로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며 "가중처벌로 주취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시킨다면 각종 음주범죄의 폐단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