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걷히는 한·일관계

      2023.01.17 18:06   수정 : 2023.01.17 18:06기사원문
2018년 10월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기업이 일인당 1억원씩 배상해야 한다고 최종 확정했다. 이는 일본에서 1997년 첫 소송이 시작된 지 21년, 국내에서는 2005년 2월 소송을 낸 지 13년8개월 만이다. 복잡한 두 나라 역사에서 실마리 하나가 풀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를 번복했다며 즉각 반발했다.

보복 카드를 찾던 일본은 결국 한국의 급소를 찾아 찔렀다.
이듬해인 2019년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의 생산에 필수적인 품목의 한국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한국수출의 20~30%를 책임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목줄을 죄면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란 계산에서다. 그해 8월에는 한국을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며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이렇게 비화된 한일 간의 외교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끝난 뒤에도 지속되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했던가. 또 '인사는 만사'라고 했던가. 지난해 한국과 일본이 모두 역사적 사건을 겪으면서 양국 관계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한국은 윤석열 정부로 정권교체(3월)가 이뤄졌고, 일본은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사망(7월)한 것이다.

전 정권의 숙제를 넘겨받은 윤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일본에 대화하자며 구애를 펼쳤다. 그때까지도 막강했던 아베의 눈치를 살핀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움직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아베가 피살됐다. 이후 기시다 내각은 아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책에 시동을 걸었고, 양국 분위기는 급속도로 바뀌었다.

첫 번째 난관인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한 실무라인이 바빠졌다. 최근 일주일 사이만 봐도 한국 정부가 공개토론회를 열어 해결책을 제시하고(12일), 양국 외교장관은 전화로 문제를 논의(13일)했다. 한일 정치인들은 도쿄간담회에서 의견을 교환하고 공감대를 확인(13일)했다. 이어 16일에는 도쿄에서 외교당국이 만나 견해차를 조율했다.

무엇보다 기시다 총리의 변화한 상황인식이 인상적이다. 지난 15일 미국을 방문 중이던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한일 정상회담에서 정상 간에 합의가 있어 외교당국이 노력하고 있다. 이 노력을 계속했으면 좋겠다"며 소통 의지를 강조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북한에 가까웠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미·일 모두 윤석열 정부라면 한·미·일 협력이 가능하다고 본다.
기시다 총리는 주변에 '윤 대통령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기시다 내각은 오는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도 윤 대통령을 초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한해협에 5년이나 계속되던 짙은 안개가 점차 옅어지고 있다.

km@fnnews.com 김경민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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