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량위기 재점화.. 푸틴 심술에 가뭄까지 덮쳐

      2023.01.19 05:00   수정 : 2023.01.19 05: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세계 식량가격지수가 9개월 연속으로 하락한 가운데 올해 식량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변덕으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다시 악화될 수 있으며 이상기후로 전반적인 식량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며 전혀 안심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다보스를 휘감은 식량 위기 공포

지난 16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시작된 제53차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총회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식량 위기 대처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데이비드 비즐리 사무총장은 1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번 WEF는 더 없이 중요한 시기에 열린다"며 "주요 분야의 지도자들이 전례 없는 세계 식량 위기에 대해 논의하길 바란다"고 적었다.

캐리 파울러 미국 국제 식량안보 특사 역시 포럼 전날 CNN 인터뷰에서 "분쟁과 코로나19, 기후변화, 에너지 가격 상승 등 식량 위기의 모든 주요 원인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험난한 2023년을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WEF는 이미 11일 발표한 '2023 국제 위험 보고서'에서 식량 문제를 경고했다. WEF는 전 세계 약 1200명의 전문가에게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앞으로 2년간 전 세계에 닥칠 가장 심각한 위기가 '생계비 상승'이라고 진단했다. WEF는 식량 부족과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비료의 핵심 재료가 천연가스인 만큼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비료 가격도 덩달아 올라 결국 식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CNN은 비록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하는 식량가격지수가 지난해 3월 159.7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9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지만 식량 부족이 해소되지는 않았다고 진단했다. 세계적으로 식량을 구할 수 없어 생명이 위험한 '식량 불안'에 시달리는 인구는 2019년 1억3500만명에서 지난해 3억4500만명으로 늘어났다. CNN은 최근 식물성 기름과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식량 가격 지수가 내려가긴 했지만 여전히 비료 가격이 전년보다 높은 수준이며 우크라 문제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푸틴, 곡물 수출 또 막나?


전쟁 전 세계 5위의 밀 수출국이었던 우크라이나는 매년 4500t의 곡물을 수출했고 이 가운데 95%를 흑해 해운으로 처리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2월 우크라 침공 직후 흑해 연안의 우크라 항구를 봉쇄했다. 그 결과 약 2200만t의 곡물이 우크라에 묶였다. 우크라는 침공 전에 밀 외에도 옥수수, 보리, 해바라기유를 수출했으며 주로 아프리카와 중동에 밀을 공급했다.

러시아는 식량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이어지자 지난 7월에 튀르키예와 유엔의 중재로 우크라의 곡물 수출을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11월에 수출 합의를 올해 3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합의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우크라와 서방 세계를 비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9월에 전황이 불리해지자 서방이 거짓말을 했다며 합의 파기를 언급했다.

푸틴은 16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미국 등 서방 국가가 계속해서 우크라에 무기를 공급하여 적대행위를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에르도안은 이날 푸틴에게 평화 중재를 계속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양측 모두 곡물 수출 연장에 대해서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또 푸틴은 17일 회의에서 필요하면 농산물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우크라 사태 이전 세계 1위 밀 수출국이었다.

푸틴은 "올해 수확량에 투자할 수 있도록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가공업과 축산업 등에서 모든 것을 해외로 내보내도록 허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유럽의 날씨가 예년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았고 동시에 중앙아시아에 한파가 찾아왔다며 "올해 러시아의 농업 생산량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안정적인 비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달 보도에서 이미 러시아가 합의를 공공연히 어기고 있다며 우크라의 항구 13개 가운데 7개를 계속 차단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은 이외에도 화물 검사로 운항을 방해하면서 우크라의 전력망을 공격해 화물 터미널 운영을 마비시켰다.

NYT는 동시에 세계 최대 비료 수출국인 러시아가 비료 공급 차단으로 서방세계에 보복중이라고 분석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1년 483달러였던 요소비료 1t 가격은 지난해 700달러(약 86만원)로 44% 급등했다. 17일 BBC는 영국 에든버러대학 연구를 인용해 에너지와 비료 가격이 지금처럼 유지된다면 올해 국제 식량가격이 2021년보다 74% 상승한다고 예측했다. 아울러 러시아 및 우크라의 곡물 수출까지 중단되면 식량 가격이 2021년보다 81%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상기후에 식량 공급 차질


현재 세계 농산물 시장은 푸틴의 지적처럼 전례 없는 이상기후로 인해 작황을 예상할 수 없는 형편이다. 천연가스 공급을 끊어 유럽을 압박하려 했던 푸틴은 유럽의 겨울 날씨가 이례적으로 따뜻해지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에 공공연히 식량 공급 차단을 언급하고 있다.

CNN은 유럽 외에도 지난해 파키스탄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고 '라니냐' 현상이 기승을 부렸다고 설명했다. 라니냐는 동태평양의 적도 지역에서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낮은 저수온 현상이 5개월 이상 일어나 생기는 이상현상이다. 라니냐가 지속되면 북미 지역에 한파, 남미에는 가뭄이 발생한다.

남미 남부 가뭄정보시스템(SISSA)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중부와 칠레 중부, 우루과이 전역과 브라질, 볼리비아 등은 16일 기준 ‘극심한 가뭄’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는 극도의 건조 상태인 '비정상 가뭄'에 처했다.

같은날 아르헨티나 매체인 부에노스아이레스타임스는 국토 54%가 가뭄 영향권에 들었다고 전했다. 아르헨티나 경제부는 2022∼2023년 밀 수확량이 1150만∼1340만t으로 지난 수확 시기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추정했다. 중남미 경제 전문 일간지 엘피난시에로는 부에노스아이레스 곡물 거래소(BCBA) 최신 보고서를 인용해 대두 수확 규모가 애초 예상보다 11.7%p, 옥수수의 경우 7.7%p 각각 낮아졌다고 보도했다.

아르헨티나는 2021년 세계 6위의 밀 수출국인 동시에 2020년 기준 세계 4위의 대두 수출국이자 세계 3위 옥수수 수출국이었다. 아르헨티나의 곡물 수출량은 가뭄 피해로 인해 올해 21~33%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밀·옥수수·대두 값은 지난해 4월 이래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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