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처럼 살다 영면한 윤정희 "제 꿈은 90살까지 배우"

      2023.01.20 12:38   수정 : 2023.01.20 12:3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1960∼1970년대 한국영화를 이끈 1세대 여배우 윤정희(본명 손미자)가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알츠하이머병을 앓다 별세했다. 향년 79세.

1960년대 문희, 고 남정임과 함께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린 윤정희는 생전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카메라 앞에 서겠다" "제 직업은 영원하다" "아흔 살까지 배우를 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유작 '시'로 기억돼 감사"


윤정희의 소천 소식에 영화팬들은 "또 한분의 별이 지셨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대한민국 영화계의 한 획을 그은 윤정희 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며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고인의 사진을 게재했다

"영화라는 단어를 알게 된 즈음부터 윤정희 님은 영화의 상징이었다"고 기억한 한 영화팬은 "그녀의 얼굴과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 파리에서 가셨다. 오래 고생하셨는데 평안에 드시기를"이라며 영원한 안식을 바랐다.


"결국 이창동 감독의 '시'가 마지막 작품이 되었지만, 이 영화로 2000년 이후 윤정희 배우의 연기가 남게 되어서 감사한 마음"이라고 밝힌 한 팬은 "당대 트로이카 여배우들보다 좀 더 폭넓은 연기와 지적인 이미지가 결합되어 차별화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 배우였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썼다.

윤정희는 2010년 '시' 개봉을 앞두고 "이창동 감독이 저를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을 때 얼마나 감동적이고 기쁘고 행복했었는지 모른다"며 "이창동 작품은 다 좋으니까 기쁨으로 잠을 못 이뤘다"고 벅찬 마음을 밝힌 바 있다.



이창동 감독 역시 당시 "윤정희 선생님이 80, 90살이 됐을 때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에 윤정희는 "제 꿈이 90살까지 영화배우를 하는 것"이라며 기뻐했다.

300여편 넘는 영화 출연 "파격적 캐릭터는 윤정희"


데뷔작 '청춘극장'(1967)에서 1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데뷔한 그는 이 영화가 흥행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로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그는 '안개' '지하실의 7인' '독짓는 늙은이' '무녀도' '효녀 청이' '화려한 외출' '위기의 여자' '만무방' 등 300여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고 신상옥 감독은 생전에 "파격적 캐릭터는 윤정희 아니면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정희는 영화 '안개'(1967)에서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성을 유혹하는 인숙, '독짓는 늙은이'(1969)에서 남성을 향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 시골 아낙네 옥수를 연기했다.

'야행'(1977)에서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때로는 남성을 유혹하고 또 홀연히 떠나는 현주 역을 맡아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먼저 세상을 떠난 신성일과 '영혼의 단짝'으로 불렸는데, 두 배우는 '내시'(1968), '극락조'(1975) 등 약 100편의 영화에서 호흡을 맞췄다.

활동을 중단한 지 16년 만인 지난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시'로 영화계에 복귀해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고 이 영화로 LA비평가협회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성폭력에 가담한 손자의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노인 미자가 문화센터에서 시 쓰는 강의를 듣는 이야기다.

"시의 미자, 저하고 비슷한 점 많아"


윤정희는 생전 인터뷰에서 "양미자가 사실, 저하고 비슷한 점이 참 많아요"라고 밝혔다. "들꽃 하나를 봐도...저는 양미자보다 더 감탄사를 크게 하는데, 양미자는 그 아름다움에 빠져 있고, 또 꿈이 많고, 또 남들 앞에 나갈 때는 아름다운 옷을 입는 걸 좋아하고, 참 순수하고"라고 말했다. 미자는 공교롭게도 알츠하이머에 걸린 환자로 나왔다.



윤정희는 세기의 러브스토리로도 유명했다. 독일 뮌헨에서 윤이상 감독의 오페라 '심청이' 공연장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만나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1976년 결혼했다. 둘은 프랑스 파리에서 살며 오랜 시간 문화계 '잉꼬부부'로 지냈다.


하지만 말년에 투병 중인 윤정희를 둘러싸고 남편과 딸 그리고 윤정희 형제들간 갈등이 불거졌다. 윤씨의 딸인 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가 윤정희의 성년후견인 자격으로 그녀를 돌봤는데, 윤정희 동생이 (매형과 조카가) 누나를 방치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윤정희가 사망함에 따라 성년후견인 소송은 법적 판단없이 종결될 전망이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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