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 줘야 하는데..." 단축된 영업시간에 신권교환 막혔다
2023.01.24 13:45
수정 : 2023.01.24 20:32기사원문
설 연휴를 앞둔 지난 20일 손주들에게 줄 세뱃돈을 찾으러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B은행의 한 지점을 찾은 A씨(85)는 가만히 서서 눈만 깜빡거렸다. 은행이 문을 열지도 않은 오전 9시20분임에도 길게 늘어선 줄 때문이다.
"(신권을) 못 찾을까봐 불안해서 일부러 빨리 나왔거든요." A씨는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10분 후 셔터가 올라가고 번호표 기계 옆에 있는 종이 한 장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신권 교환은 종료되었습니다" 그 뒤에는 금소법 시행 및 인근점포 통폐합 등으로 인해 30명의 고객이 몰릴 경우 대기시간이 2시간 소요될 수 있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24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은행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였으나 코로나19 유행 이후 지난 2021년 7월 12일부터 영업 시작시간이 30분 늦어지고 마감시간은 30분 당겨졌다.
거리두기 해제 후 은행 영업시간을 정상화하라는 여론이 거세졌다.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들까지 나서 영업시간 정상화를 압박하고 있지만 논의를 위해 출범한 금융노사 TF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설 명절과 같이 자금 수요가 많을 때는 시민들의 불편이 더 크다. 시중은행에 풀린 신권 수도 줄었는데 은행 영업시간마저 줄어 신권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서울시 종로구에 거주하는 탁영훈씨(69)는 "적어도 오후 4시까지는 영업을 해야 자식들 세뱃돈 줄 신권을 찾으러 여유롭게 올 수 있지 않겠냐"며 "신권 수량이 얼마 되지 않을까봐 마음을 졸였는데 오후 3시 반에 은행이 문을 닫는다고까지 하니 시간 맞춰 돈 찾으러 오기 가 너무 힘들었다"고 호소했다.
은평구에 거주하는 장인석씨(53)는 "아예 은행도 편의점처럼 밤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되레 운영시간을 단축시켜 버리니 시간이 너무 촉박해졌다"면서 "제가 비서 일을 하고 있는데 회장님 손주들 세뱃돈으로 신권 찾아가는 길이라 바쁘다"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경기도 성남시에 거주하는 C씨(73)는 "은행이 정말 고객을 생각한다면 금리 인상으로 마진 남길 생각만 하지 말고 영업시간을 돌려 놔야 한다"고 역설했다.
관악농협 낙성대지점 앞에서 만난 D씨(83)는 이날 오후 3시 35분경 닫힌 은행 문 앞에서 "은행 마감시간 맞춰 온다고 왔는데 결국 이렇게 됐네요. 바쁜 일만 마치고 최대한 온 건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문 앞에 있는 '신권 배분 종료' 안내 문구를 보더니 "이제는 은행시간 때문에 소비자들이 일정도 미뤄야 하나 봐요"라며 씁쓸함을 토로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국민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한, 신권 교환을 비롯한 일상적인 금융 수요는 계속 생긴다"며 "은행 영업시간 단축은 이런 수요를 억제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은행 측도 이제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처럼 수요에 맞는 접근성 개선 시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은행에 대한 접근 장벽을 완화하는 첫 시도가 바로 은행 영업시간 정상화"라고 덧붙였다.
yesji@fnnews.com 김예지 박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