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 주세요" 언제부터 주고 받았나…역사는 겨우 100년?

      2023.01.22 06:01   수정 : 2023.01.22 06:01기사원문
구립 삼성아트 어린이집 어린이들이 17일 서울 송파구 문정 래미안 아파트 경로당을 찾아 합동 세배를 마친 뒤 어르신에게 세뱃돈을 받고 있다. (공동취재) 2023.1.17/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설 연휴를 이틀 앞둔 19일 오전 대구 북구 대원유치원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세배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2023.1.19/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설 명절을 앞둔 17일 오후 경기 수원시 장안구 한국은행 경기본부(경기남부 17개 시 관할)에서 직원들이 지역 시중은행으로 발행될 설 자금을 점검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3.1.17/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 예전과 비교해 명절의 의미는 옅어졌지만, 여전히 설날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있다. 어른들에게 세배한 뒤 받는 세뱃돈이 바로 그 주인공. 설날 아침,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린 아이들 손에는 세뱃돈 봉투가 쥐어지고 아이들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나기도 한다.


세배에 대한 답례로 어른들이 주는 세뱃돈의 역사는 얼마나 됐을까. 전문가들은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세배' 풍습은 옛날부터 있었지만 '세뱃돈' 문화는 상대적으로 짧다고 말한다. 옛 기록에 따르면 세뱃돈이 등장한 시기는 100여년 전에 불과하다.

◇조선 후기까지 '세뱃돈' 없었다…"유교 문화상 어려워"

현존하는 문헌상 '세뱃돈'이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1925년이다. 조선 후기 서예가 최영년이 집필한 시집을 간행한 '해동죽지'에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세배하면 세뱃값을 줬다'는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기록 시기가 늦었을 뿐 민간에서는 이미 세뱃돈을 주고받지 않았을까? 하지만 세시풍속을 상세히 기록한 대표적인 서적들에서도 세뱃돈과 관련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18세기 정조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득공의 '경도잡지', 1819년 한양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김매순의 '열양세시기', 1849년 조선의 연중행사와 풍속을 정리한 홍석모의 '동국세시기' 등 우리나라의 전통 행사를 기록한 서적들에서는 공통으로 '세뱃돈'을 주고받는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다.

장유승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는 "세뱃돈의 역사는 학계에서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추정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조선시대 도덕 관념상 어른들에게 세배하고 돈을 받는다는 것은 시대적으로 봤을 때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예를 중시하는 유교 문화상 웃어른에게 새해를 맞아 인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데 이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주거나 요구하는 것은 당시 시대 관념상 적절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대신 이 시기 세배 뒤에는 과일, 떡 등 음식을 받았다.

◇수고비에서 유래한 세뱃돈?…11세기 中은 '압세전' 풍습

그렇다면 세뱃돈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참고할만한 과거 문헌이 부족해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문안비(노비)가 받은 수고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외출이 어려웠던 양반가 여성들이 여자 노비를 단장시켜 설날 인사를 대신 보내면 이들이 수고비를 받은 것에서 이어져 왔다는 주장이다.

장 교수는 "조선 초기 실록에 문안비(노비)들이 대궐을 드나든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후기 여러 기록에서 문안비가 거리를 돌아다니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며 "세뱃돈이 우리나라 토착 풍습이 아니거나 외국에서 들어온 문화가 아니라면 문안비에게 주는 수고비에서 유래됐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일본이나 중국 등 해외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19세기 조선 후기까지는 '세뱃돈' 문화가 없었으나 이후 개항하고 외국 문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유입됐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실제로 11세기 중국 송나라 때는 '압세전'이라고 부르는 '세뱃돈'과 비슷한 문화가 기록에 나타난다.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중국에서 '세'는 '잡스러운 귀신'을 뜻하는데 이를 누르는 엽전이라는 뜻에서 '압세전'을 새해에 아이들에게 주기도 했다"며 "이는 나쁜 것을 물리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 연구관은 일본에서도 17세기부터 세뱃돈과 비슷한 문화가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이를 종합하면 동아시아 유교권 나라에서 존재했던 '액운을 쫓기 위해 돈을 주는 문화'가 조선후기 개항과 함께 국내로 들어왔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설 문화로 자리 잡은 '세뱃돈'…시대 따라 변화한다

20세기 들어 생겨난 '세뱃돈' 문화는 당시 기성세대들에게 사회적 문제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1925년 '해동죽지'에 세뱃돈 문화가 처음 묘사된 이후 신문기사들에서는 세뱃돈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찾아볼 수 있다.

1927년 2월6일 '매일신보'에는 '세배돈의 폐풍 다른 것을 줍시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 본문에는 '세배 다니는 소년소녀에게는 또 한 가지 바라는 바 있으니 이는 곧 세배돈(세뱃돈)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어른들도 세배를 받으면 세배돈을 주어야 하는 줄 알고 돈을 주면 어린 사람에게 어떤 영향이 끼칠는지 감히 생각지도 않고 주는 버릇이 되었다' 등 비판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세뱃돈을 주고받는 것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듯하다. 1928년 1월24일 '매일신보'에는 '음력정월초하로(하루)날 세배돈 밧아들고(받아들고)'라는 제목의 사진이 실렸고 1930년 2월7일 '중외일보'에는 '세배돈'이라는 동요가 게재되기도 했다.

정 연구관은 우리나라에 지폐가 등장하면서 세뱃돈 문화가 본격적으로 확산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해방 이후에는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해 각 가정마다 세뱃돈을 주기란 어려웠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정 연구관은 "세뱃돈을 주는 풍속이 확산한 것은 지폐의 변화와 관련이 깊은 것 같다"며 "세뱃돈이 물가 상승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고액권) 지폐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물가 상승과 함께 보관의 편의성 등을 이유로 2009년 발행된 5만원권이 세뱃돈으로 자주 쓰이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받은 세뱃돈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또 하나의 관심사다.
최근에는 세뱃돈을 '어린이 적금', '어린이 펀드' 등 금융 상품에 투자하며 목돈 마련의 기회로 삼기도 한다. 부모가 자녀 명의의 주식 계좌를 만들어 어렸을 때부터 주식을 사 모으는 모습도 새로운 현상이다.


이명열 한화생명 투자전문가는 "소액일지라도 장기로 운용하는 세뱃돈의 특성상 보험이 적합한 금융상품이 될 수 있다"며 "자녀의 진학시기, 독립시기 등 라이프사이클을 고려해 세뱃돈으로 자녀를 위한 종잣돈 마련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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