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직접 보니.. 2막부터 뭉클한 몰입, 아쉬운건 넘버

      2023.01.26 16:39   수정 : 2023.01.26 16:3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교과서 속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이 연민을 자아내는 고독한 인간으로 되살아났다. 뮤지컬 ‘베토벤’을 통해서다.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지난 20일, 뮤지컬 '베토벤' 무대에서 베토벤이 사랑한 불멸의 여인 토니 역의 조정은이 베토벤 소나타 14번 ‘월광’ 선율에 맞춰 청아한 목소리를 뽐냈다.



‘마법에 물든 달, 영혼의 비명 들려와, 찬란하게, 돌이킬 수 없는, 이미 달라진 날, 감추지 마, 달빛에, 이제야 뛰는 내 심장’(넘버 ‘매직문’ 중). 정략 결혼한 남편의 무심함에 거듭 상처받은 토니는 하얀 달빛에 꼭꼭 숨겨왔던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이런 토니와 우연히 재회한 베토벤도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결국 ‘비창’의 선율에 맞춰 “잔인한 내 사랑아, 내 심장 찢어놔도, 그 상처마저 달콤해”(넘버 ‘사랑은 잔인해’)라고 노래한다. 박은태는 저음과 고음을 넘나드는 우아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로 베토벤의 고뇌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작 ‘베토벤’은 ‘악성(樂聖)’ 베토벤 사후 발견된 불멸의 편지를 바탕으로 그의 러브스토리를 베토벤 음악들로 구성한 뮤지컬이다.

국내에 유럽 뮤지컬 붐을 일으킨 두 주역 '엘리자벳' '모차르트!' '레베카'의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오랜 파트너십을 맺어온 EMK뮤지컬컴퍼니와 협업해 내놓았다. 박효신·박은태·카이(이상 베토벤)·조정은·옥주현·윤공주(이상 토니)에 김문정 음악감독,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 등 스타급 배우·스태프가 참여했다.

인간 베토벤 내면과 사랑에 초점

‘베토벤’은 위대한 음악가보다 상처받은 고독한 인간 베토벤의 내면과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갈 때인 1810년~1812년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그린다.


1막은 베토벤의 어두운 면모가 부각돼 감정이입이 쉽지 않다. 하지만 2막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사랑 이야기는 베토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뭉클한 감흥을 전한다.

베토벤은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1막에서 베토벤은 "난 사교성도 없고, 높으신 분도 몰라, 난 자산가도 아냐, 나란 사람 그저 나니까”(넘버 ‘그저 나니까’)라며 자신의 음악을 존중하지 않는 귀족들에게 불처럼 화내고, 하나뿐인 동생의 약혼녀를 탐탁치 않아하는 괴팍한 면모가 부각된다. 무대 디자인 역시 고립을 자초한 베토벤의 내면처럼 좁고 어두우며 무채색이 지배한다.

베토벤 동생과 토니 시동생의 사랑도 부각된다. 이는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한 베토벤, 토니과 비교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나 산만한 느낌을 준다.

1막 마지막 ‘운명교향곡’을 활용한 넘버 ‘너의 운명’을 기점으로 둘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세 아이를 둔 기혼녀와 도덕성을 중시하던 베토벤은 서로를 밀어내다 결국은 사랑에 빠지는데 이러한 과정은 베토벤에 대한 연민을 자아낸다.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사업가의 아내 토니와의 사랑은 실제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그는 베토벤의 불멸의 여인 중 한명으로 추정됐던 인물이다.

'베토벤'은 당시 록스타처럼 인기는 많았지만 불우했던 한 예술가의 고독한 삶에 금기의 사랑이 얼마나 인생의 단비와 같았는지 절절히 전한다. 특히 청력을 잃은 뒤에도 위대한 음악을 완성한 베토벤의 삶을 이해하는 주요한 조각이 된다.

해외 진출을 겨냥한 작품답게 체코 프라하 명소 카를 다리를 재현한 웅장한 세트와 화려한 의상 등 볼거리는 풍성하다.

피아노는 베토벤의 내면을 드러내는 주요 소품으로 활용된다. 무대 중앙에 첫 등장한 피아노는 베토벤의 명성을 상징하다 이후 공중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모습으로 불안을 자아내며, 2막에선 베토벤의 부서진 마음과 함께 피아노 역시 조각난 모습을 드러낸다.

베토벤의 음악을 포르테, 안단테, 알레그로 등 여섯 명의 혼령으로 의인화한 안무는 제법 신선하다. 혼령의 안무는 음악과 잘 조화돼 눈길을 끈다.

베토벤 원곡을 최대한 살린 넘버는 반가우면서도 아쉽다. 친숙한 멜로디에 붙여진 한국어 가사를 듣는 경험은 특별하지만 베토벤 원곡에 얽매여 있어 답답하다는 인상도 준다.
베토벤 원곡을 찾아 듣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는 점이 성과라면 성과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3월 26일까지.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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