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부터 이어온 ‘도심장터의 원조’ 종로 피맛골
2023.01.29 18:16
수정 : 2023.02.01 15:17기사원문
탑골공원 뒤편에 자리한 낙원상가는 국내 최대 악기상가로 유명하지만, 이 건물 지하로 깊숙이 내려가 보면 전통장터인 낙원시장도 함께 둥지를 틀고 있다.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하지만 이곳 지하에선 작은 시골장터 같은 소박한 낙원시장이 서민들과 오랜 세월을 함께했다.
어둡고 허름한 주상복합건물 지하공간에서 각종 먹거리와 청과물들이 여전히 거래되고 있다. 다소 음침하지만 이색적인 도심 지하속 재래시장 풍경을 접할 수 있다. 또한 낙원시장에선 여느 거리 장터와 마찬가지로 막걸리와 함께 소박한 전통음식들도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지난 1970~80년대 만해도 국내 1세대 주상복합건축물인 세운상가와 낙원상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가였다. 오늘날로 친다면 타워팰리스형 쇼핑몰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세운상가는 초창기에 아파트와 상가가 함께 들어섰지만, 지금은 상가로만 활용되고 있다.
세운상가와 낙원상가는 서울시와 중앙정부가 낙후된 종로 일대를 재건하기 위해 대규모로 추진한 국영사업으로 손꼽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세운상가 준공식에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과 함께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세상의 운이 모두 모인다'는 뜻을 지닌 세운상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컸다.
세운상가는 용산전자상가가 등장하기 전까지 국내 최초 전자·전기제품의 메카의 역할을 했다. 세운상가에선 잠수함 부품도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컴퓨터부품, 오디오, 전축까지 온갖 전기·전자 제품을 팔았다.
낙원상가는 세계 최대 악기상가로 한때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세계적인 헤비메탈그룹 메탈리카조차 지난 1998년 내한했을 때 낙원상가를 가장 가보고 싶은 곳으로 손꼽았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낙원상가 일대는 조선왕조와 구한말 시대를 통틀어 국내 최고의 동·서양의 음악 연주회가 정기적으로 열리던 곳이었다. 낙원상가 옆 종묘에선 조선왕조 500년간 종료제례악이 울려퍼졌다. 종묘제례악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유네스코 등재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그래서인지 인근 낙원상가 일대에는 전통 국악기 상점들도 여전히 제법 많다.
또한 바로 옆 탑골 공원에선 대한제국 시절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클래식 연주회가 정기적으로 공연됐다. 낙원상가 일대가 동양과 서양 음악의 성지였던 셈이다.
■피맛길 따라 수백년간 상권 이어져
낙원상가와 세운상가가 자리 잡은 종로 일대는 원래 조선시대 상업 특구의 첫 탄생지였다. 조선 초기부터 현대까지 역대 집권자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종로 일대 상권 개발을 한 셈이다.
조선의 왕들은 종로 인근 상가 건설에 대한 관심이 컸다. 조선 초기에 종로 일대에는 국가가 직접 설립 및 임대하는 상인 거리가 조성됐다.
'시전행랑(市廛行廊)'으로 불린 이들 조선시대 관설 상점들은 나라에서 직접 가게를 건설하고 상인들에게 임대해 세금을 받았다. 지금으로 치자면 쇼핑몰 거리를 정부가 직접 건설하고 임대사업을 하는 것과 같다.
시전행랑은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때 3차에 걸친 대규모 토목, 건축공사 끝에 수천여칸 규모로 조성했다. 근대에 세운상가와 낙원상가를 건설하기 전보다 먼저 대규모 상가 건설이 이미 조선 건국 초기에 이뤄진 것이다. 수도 한양 내 도심시장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태종은 시전행랑 공사기간 동안 여러 번 인부들에게 술을 내리는 등 은전을 베풀었고, 공사에 대해 흡족한 마음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세종은 시전행랑과 가옥들이 대형 화재로 전소되자 크게 한탄하면서 즉시 복구를 지시하기도 했다.
종로는 초기에는 길 이름이 없었지만 시전행랑이 설치된 뒤로 인파가 구름처럼 모이면서 운종가(雲從街)라고 불렸다. 이후 보신각이 있는 큰 도로라고 해 종로라고 했다.
■권력자마다 심혈 기울인 거리상권
시전행랑이 들어선 마을은 피마동(避馬洞) 또는 피맛골이라고 불렸다. 이 마을은 종로1가동·종로3가동·서린동에 걸쳐 이어졌다.
피마동을 따라 이어진 길목은 '피맛길'로 불렸다. 피맛길은 종로 인근 왕궁으로 오가는 양반들이 타고 다니는 말을 피하기 위한 길이라는 뜻이다. 양반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서민들에게 고관대작들을 태우던 말들을 피해서 뒷길로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피맛길은 민본주의를 내세웠던 정도전이 한양 도성을 설계할 때 백성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만든 길이라고도 전해진다. 하지만 정도전을 죽이고 왕권을 강화한 태종 이방원은 피맛길을 따라서 대규모 국립상점인 시전행랑을 건립했다. 그 규모는 1400여채에 달했다. 시전행랑을 통해 세수가 늘어나 재정이 튼튼해지면서 조선 왕권 강화에는 큰 도움이 됐다.
시전행랑 발굴 유적지는 종각역 1번 출구에 나오면 곧바로 만날 수 있다. 서울 도심개발 속에 시전행랑 유적지가 피맛길을 따라서 함께 발견됐다.
시전행랑 유적지는 조선 왕의 직속 사법기관인 의금부 터와도 맞닿아 있다. 누명을 쓰고 의금부에 투옥됐던 이순신 장군이 졸병으로 강등돼 백의종군 길을 떠난 첫 출발지라는 표식이 이곳에 함께 있다. 머나먼 백의종군길에 나서는 장군의 초라한 뒷모습을 시전행랑의 조선 상인들이 하염없이 지켜봤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민족 1호 백화점도 종로서 시작
오늘날 종로 일대를 방문하면 유독 '육의전'이라는 간판을 내건 상점들이 눈에 많이 띈다. 종로 일대 일부 시전은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공급하는 대신 특정 물품에 대한 전매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비단, 명주, 종이, 어물, 모시, 무명을 파는 점포가 가장 번성하였는데 이를 육의전이라고 했다.
육의전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종로 일대 상점들의 브랜드가 됐다. 심지어 일제강점기에는 우리 민족 1호 백화점인 화신백화점이 조선시대 육의점이 있던 터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 종로타워 마천루가 들어선 곳이 화신백화점이 원래 있던 자리다. 종로타워 앞에 가면 육의전이 있던 곳이라는 표식을 만날 수 있다.
일본 자본의 백화점들이 명동지역에 주로 자리한 반면, 조선인이 운영했던 화신백화점만은 민족의 상권인 종로에 자리했다. 화신백화점은 같은 시기에 들어선 대형 일본 자본 백화점들과 대등하게 경쟁했다.
화신백화점의 전신은 민족자본으로 1890년 설립한 화신상회다. 화신상회는 금·은·귀금속품을 전문으로 거래하는 상회로 운영하였는데, 화신상회 제품은 대표적인 한국공예품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종로 일대에는 귀금속 상점들이 여전히 활발히 상권을 이루고 있어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세운지구 '제 3의 부활' 시동
세운상가는 오세훈 서울시장 부임 이후 다시 변신을 준비 중이다. 오 시장은 "세운재정비촉진지구를 보면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밝힌 적이 있을 만큼 재개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지난 10년간 멈춰 있던 세운지구 재정비사업은 이르면 2024년 착공한다. 서울시의 2040 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창덕궁에서 종묘와 남산을 연결하는 세운지구 일대 녹지축 조성 계획이 담겼다.
오 시장은 재개발과 녹지 확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세운지구 개발 복안을 갖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2006년 세운지구 일대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해 주변을 개발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문화재 고도제한 심의 등으로 사업이 지연됐다. 이후 지난 2012년 박원순 전 시장은 지역 보존을 위해 건물 높이 제한을 강화하고 사업 구역을 세분화해 개발이 장기간 표류했다.
오 시장의 계획안대로 고층빌딩과 녹지축이 조화롭게 형성되려면 부지 중심에 있는 세운상가를 비롯한 저층 노후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1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박 전 시장이 조성한 세운상가 공중보행로도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또한 일대 층고 규제를 다시 완화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한 대가로 민간 사업자에게 부지 일부를 기부채납받아 이를 공원이나 녹지로 조성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오 시장은 "높이 제한을 풀면 시민에게 돌아가는 녹지 공간이 더 늘어나게 된다"며 "민간이 적극적으로 개발계획을 제안할 수 있도록 공공에서 선제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도심 재개발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혀왔다.
◆파이낸셜뉴스는 연중기획으로 '길 위에 장(場)이 선다'를 연재합니다.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전통시장, 근대 상가, 지역 특화 '시그니처 상권' 등 다양한 팔도 상권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