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침체 틈타 기업 흔들기… 목소리 높이는 ‘행동주의 펀드’

      2023.02.13 18:34   수정 : 2023.02.13 18:3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지난해 인수합병(M&A)이나 주주 환원을 기업에 요구해 주가를 높여 이익을 챙기는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이 4년 만에 가장 활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각국의 금융긴축 정책으로 인해 글로벌 증시가 동시에 침체되면서 '기업사냥꾼'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의 약점을 파고들며 공격적인 경영 간섭을 시도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헤지펀드, 빅테크·플랫폼 조준

13일 미국 투자은행(IB) 라자드에 따르면 지난해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에 제안·요구한 건수는 전년 대비 36% 증가한 235건으로 집계됐다.

데이터 집계를 시작한 이래 사상 최다였던 2018년(249건)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지역별로는 미국 135건, 유럽 60건, 아시아태평양 지역 40건 등이었다.
내용별로는 수익성이 없는 사업 매각 등 M&A 관련 제안이 100건에 조금 못 미치는 40%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로 채용을 늘린 빅테크들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테크 분야 제안 비중이 2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8~2021년 평균(16%)을 웃돈다.

영국 TCI펀드매니지먼트는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에 인력 감축과 자율주행 사업의 수익성 개선을, 미국 얼티미터 캐피털 매니지먼트는 메타에 인력 감축을 요구했다.

올해도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고객관리 소프트웨어 대기업인 세일즈포스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스타보드밸류도 세일즈포스 주식 보유를 공표하면서 경영진을 압박했다.

세일즈포스는 M&A로 몸집을 키웠지만 수익성이 오르지 않자 결국 직원의 10%를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주인 이들 펀드의 요구를 수용한 사실상 백기선언이다.

사업 구조조정 요구도 눈에 띈다. 미국 블랙웰 캐피털은 피트니스 기기업체인 펠로톤 인터랙티브에 회사 매각과 경영진의 해고를 요구했다.

미국 서드포인트는 월트디즈니에 스포츠방송 사업의 분리를 요구했다가 철수했다. 또 다른 펀드인 트라이안 파트너스는 이사 파견을 요구했다가 디즈니가 인력 감축을 결정하면서 요구를 철회했다. 역시 펀드의 요구가 반영된 사례다.

■헐값에 '기업 흔들기' 쉬워져

행동주의 펀드는 2020~2021년에는 비교적 잠잠했다.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대책으로 이른바 '돈 풀기' 경기부양책을 펴면서 주가가 급등해 이들 펀드의 입장에선 운신의 폭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각 정부가 금융 긴축으로 정책에 변화를 주자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시장에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싼값에 기업들을 흔들기 쉬워진 토양이 만들어졌다.

일본에서도 행동주의 펀드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
기업설명(IR) 재팬에 따르면 일본에 참가하고 있는 행동주의 펀드 수는 지난해 말 기준 68개로 3년 만에 2배로 증가했다.

라자드의 아키야마 켄타는 "도시바 등의 사례를 통해 해외 행동주의 펀드들은 일본에서도 서양식의 적대적 주주 제안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학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기업들은 실적 예상치를 낮추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테크 분야 등에서 인력 조정이 아직 부족하다는 견해가 있는 만큼 기업들은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에 계속 노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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