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박찬극 제독 평전 착수...알레이 버크 제독과 인연, 韓해군 현대화 기여
2023.02.19 16:07
수정 : 2023.02.19 16:10기사원문
19일 군에 따르면 해군역사기록관리단은 올해 안에 '박찬극 제독 평전'을 편찬하기로 하고 최근 관련 작업에 착수했다.
6·25전쟁 시기 미국에서 소형 군함을 인수해 태평양을 건너와 풍전등화의 조국을 구하는 데 힘을 보탠 해군 예비역 준장 박찬극 제독의 일대기가 평전으로 나오게 된다.
군관계자는 한미동맹 70주년이 되는 올해 미측과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6·25전쟁에서 맹활약하고 전후 한국 해군 전력 증강에 크게 기여한 박 제독의 일대기를 정리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박 제독은 1926년 9월 22일 평북 박천에서 태어나 1947년 홀로 월남한 뒤 그해 9월 해군사관학교 3기로 입학, 1950년 2월 소위로 임관했다.
1949년 10월 17일 미국으로부터 구매한 450t급 전투함정 금강산함(PC-702) 인수 항해장으로 군 생활을 시작한 박 제독은 1950년 6월 12일 미 본토에서 인수 요원들과 함께 금강산함을 인수받고 그해 6월 24일 하와이를 거쳐 오는 도중에 6·25전쟁 발발 소식을 전해 듣는다. 한 달 넘는 항해를 거쳐 같은해 7월 16일 진해로 입항했다.
금강산함은 정원 70여 명보다 훨씬 작은 숫자의 승조원 15명만 탄 채로 귀국 입항해 군산·인천 봉쇄 작전 등 서·남해 봉쇄에 투입돼 활약했다.
1950년 7월 22일 인천항 입구에서 북한이 월미도에 설치해둔 122㎜ 곡사포 10문을 파괴했고,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중에는 미 해군 상륙함이 조류에 떠밀려 와 금강산함과 충돌하면서 아찔한 순간을 겪기도 했다. 또 덕적도·영흥도 탈환 작전, 통영 상륙작전, 흥남철수작전, 피난민 수송 작전 등에 참가해 숱한 전공을 세웠다.
금강산함은 현재 서해 근해를 지키는 450t급 유도탄고속함(PKG)과 비슷한 크기로 당시 금강산함은 한국이 사들이기 전 민간으로 매도된 상태여서 관리가 부실해 인수 요원들이 필요한 부속을 직접 마련해야 했고, 레이더조차 없어서 함정 위치를 파악하려면 별을 보면서 나아가는 천측 항해가 필요했다고 전해진다.
박 제독은 1951년 5∼12월 미 극동함대 로스앤젤레스(LA)함에 파견된 연락장교를 지냈는데 당시 LA함 함장은 미 해군의 전설 알레이 버크 제독이었다. 버크 제독은 박 제독을 "한국인 아들"이라 부르면서 미 해군 장성들과 친분을 맺어주고 미 해군의 교리를 전수하는 등 그와 한국 장교들을 챙겨준 인연이 있다.
한국 해군이 1963년 최초의 구축함 충무급 1번함을 도입한 뒤 1967년 2·3번함 도입을 추진할 때 미 의회의 반대에 부닥치자 1967년 3월부터 1967년 9월까지 무관으로 미국에 있던 박 제독이 버크 제독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미 예편했음에도 존경받는 해군 제독이던 버크 제독이 발 벗고 나서면서 미 의회가 입장을 바꿨고, 이후 한국 해군은 충무급 2·3번함을 무사히 도입할 수 있었다.
버크 제독은 미 해군참모총장을 3번 연임하면서 한국에 총 30척 넘는 함정을 제공, 한국 해군 전력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1991년 생존 인물로는 미 해군 역사상 최초로 이름이 함명으로 제정돼 이지스 구축함 1번함이 '알레이버크함'으로 불린다.
전쟁 중 충무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박 제독은 1974년 제5해역사령관 재임 시절 어청도 근해에서 간첩선을 격침하는 등 활약을 이어가다가 정전 후 각종 함장과 해군대학 교관, 해군본부 병무과장 등을 역임 후 1976년 1월 31일 전역했다. 그는 이후에도 라스팔마스 총영사와 주볼리비아 특명전권대사를 지내며 외교 일선에서 조국에 헌신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