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0 10:28   수정 : 2023.02.20 10:3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대한민국 부산에서 버스로, 튀르키예까지 비행기로, 또 다시 현지서 지진현장까지 버스로 장장 29시간을 이동하며 달려간 그린닥터스 '튀르키예 대지진 긴급의료봉사단'은 쉴 수 없었다.

지진 현장은 언론보도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참혹했고, 의료진의 손길을 곳곳에서 절실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린닥터스-온병원그룹 사회공헌재단 합동 긴급의료봉사단은 주말인 지난 18일 오후 1시(튀르키예 현지시각) 이스켄데룬 이재민캠프에 설치돼 있는 컨테이너하우스에서 임시 진료소를 차려 곧바로 진료활동에 나섰다.



긴급봉사단 단장인 정근 그린닥터스 이사장(안과전문의)을 비롯해 온종합병원에서 파견된 오무영 소아청소년과 과장·김석권 성형외과 과장, 일신기독병원 박무열 외과과장 등이 진료에 참여했다.

지진으로 건물이 붕괴되면서 잔해 등에 손상 입은 탓인지 안경이 깨지는 바람에 생활불편을 호소하거나 눈이 잘 안 보이지 않는다며 안과질환을 호소하는 이재민들이 진료소를 많이 찾아왔다.


알레르기 등 피부 질환 환자,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외과계 환자, 당뇨나 고혈압 등 기저질환자들이 지진 등으로 제때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해 그린닥터스의 임시진료소를 몰려들어 약처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네댓 살로 보이는 아이가 머리 뒷부분을 다쳐서 앰뷸런스로 이송 중이라는 소식에 때마침 외래진료 중이던 김석권 성형외과 과장이 봉합수술을 준비했으나 다행히 꿰맬 정도로 찢어지지 않아 드레싱처치를 받고 귀가했다.

3시간 동안 진행된 첫날 임시진료소에서 작은 수술 2건을 비롯해 △소아과 20명 △외과 12명 △성형외과 20명 △안과 25명 등 모두 77명의 이재민들을 치료했다.

주로 아이들을 진료한 오무영 소아청소년과 과장은 "소아 환자의 경우 저개발국에서 빈번한 양쪽 귀에서 고름과 함께 통증을 호소했고, 심지어 난청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성 중이염을 앓고 있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며 지진복구 지연으로 아이들이 치료적기를 놓칠 것을 우려했다.

어른들은 피부 가려움증과 위장질환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오무영 과장은 덧붙였다.

이스켄데룬 이재민캠프에서는 영어로 소통하면서 튀르키예 의료진들과 공동 협력진료 활동을 펼쳤다. 튀르키예 의료진들은 현지서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대한민국 그린닥터스 의료진들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었다고 한다.

현지시각 토요일 새벽 이스탄불공항에 비행기가 착륙 직후 튀르키예 승무원들이 녹색십자가와 태극기가 새겨진 구조조끼를 걸친 그린닥터스 봉사단원들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감사인사를 건네면서 형재의 나라답게 친근감을 보였다.

공항 입국장에서도 통관절차도 간소화했고, 경찰로부터 밀착안내를 받는 등 '국빈 대우'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는 게 그린닥터스 대원들의 소감이었다. 튀르키예 한 경찰관은 화장실까지 따라와서 끝까지 안내해주고 떠나면서 "코리아,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둘쨋날 주일 진료활동을 펼친 안타키아의 지진 피해는 심각했다. 특히 살아남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통도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걸핏하면 울고, 지진 이후부터 밤만 되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여진은 계속되지만 조금씩 일상회복을 위한 튀르키예당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공무원들은 집집마다 방문해 건물에 대한 안전진단을 시작했고, 등급판정에 따라 정부지원의 정도를 정하고 있다. 당장 추가 붕괴 위험이 있는 건물의 입주민들을 위해 비닐하우스 등으로 임시 거주지를 설치했다. 이번 주부터 초중고생들은 등교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린닥터스 봉사단은 베이스캠프를 차린 아다나에서 차량으로 3시간 이동해 안타키아(안디옥)의 무너진 교회 마당에 임시 진료실을 마련해 이재민들을 치료했다. 안타키아에서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119대원들이 인명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안타키아 지진현장은 처참한 상황이었다. 임시진료소를 차린 안디옥교회는 지진으로 무너졌고, 아직 구조하지 못한 한 명이 매몰돼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지진 중심지인 탓에 주민들은 대부분 안전한 곳에 설치돼 있는 이재민캠프로 이동하는 바람에 도시의 집들은 텅 비어 있었다. 이따금 난민캠프에 가있는 주인들이 집을 살피러 드나들기도 했다. 안타키아에 도착한 그린닥터스는 근처를 지나던 튀르키예 군인의 도움으로 무너진 가게 안에서 꺼낸 책상 등으로 임시진료실을 꾸렸다.



첫날 이스켄데룬처럼 안타키아 임시진료소에도 눈 다친 사람, 호흡기환자, 피부과, 외상환자 등이 많이 찾아왔다. 그린닥터스 의료봉사단은 진료를 마친 이재민들에게 집에서 응급상황에 간단히 대처 가능한 의약품 등이 담긴 응급의료키트 100개를 나눠줬다.
그린닥터스는 또 여진 등에 대비할 수 있게 미리 준비해간 비상용손전등과 텐트 배터리 등과 진료하고 남은 의약품들을 현지 이재민 지원단체 등에 기증했다.

정근 단장은 "진료시간이 미리 정해진 탓에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온 많은 이재민 환자들을 돌보지 못하고 철수해 무척 아쉬웠다"면서도 "튀르키예 국가재난청(AFAD)에서 대한민국 의료진의 현지 진료활동을 직접 승인해 주고, 버스까지 지원해 그린닥터스 봉사단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역대 어느 재난지역에서보다 더 편하게 진료를 할 수 있었다"며 한국 의료봉사단에 대한 튀르키예 정부의 깊은 배려에 고마워했다.
정근 단장은 또 튀르키예 재난지역엔 생필품 등 물자는 상대적으로 풍족한 편이나, 의료지원은 거의 이뤄지지 못한 실정이라며 더 많은 나라의 의료지원단체에서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roh12340@fnnews.com 노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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