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3월 독립운동가' 권애라·심영식·신관빈·임명애

      2023.02.28 14:24   수정 : 2023.02.28 14:2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28일 국가보훈처는 일제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주체적으로 3·1운동을 주도하고, 유관순 열사와 서대문감옥 같은 감방에서 옥고를 치른 여성독립운동가 권애라·심영식·신관빈·임명애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 이분들은 유관순 열사와 서대문감옥 여옥사 8호 감방 '동지'이기도 하다.

△권애라(1897~1973) 선생은 경기도 강화(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나 이화학당 졸업 후 호수돈여학교 부설 유치원 교사로 재직 당시 1919년 3월 1일 예배당에 숨겨둔 독립선언서를 꺼내 심영식, 신관빈 선생 등과 함께 개성 시내에 배포하고 호수돈여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준비했다.



이틀 후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거리에 나서며 개성 최초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독립선언서 배포 혐의로 체포된 선생은 그해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받았고 상고했으나 7월 형이 확정돼 옥고를 치렀다.
이듬해 7월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내 조직원으로서 독립자금 모집에 관여한 혐의로 종로경찰서 구금돼 조사를 받았다.

선생은 또 그해 가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해애국부인회와 고려공산당 상하이 지부에서 활동했고, 1922년 1월에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극동민족대회에 상해애국부인회 대표로 참가했다.

그는 1940년 아들 김봉년과 함께 중국 지린성 영신농장을 거점으로 독립군 병력 충원을 위해 활동 중 1943년 3월 일본 관동군에 체포돼 만주국 고등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장춘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45년 광복으로 석방됐다.

△심영식(1897~1983) 선생은 개성 출생으로 열병으로 시각 장애를 갖게 됐으나 호수돈여학교를 거쳐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공부했고, 1919년 기독교 전도사로 활동했다.

1919년 3월 1일 권애라, 신관빈 선생 등과 함께 개성 시내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했고 3월 4일 개성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1919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 수감됐다. 투옥 중 간수에게 구타당해 고막이 터져 평생 한쪽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1920년 3월 1일, 3·1운동 1주년을 맞아 개성 미리흠여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준비하다가 체포돼 다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6개월 만에 출옥했다.

△신관빈(1885~?) 선생은 황해도에서 태어나 호수돈여학교 재학 중 기숙사에 기거하면서 기독교 전도사로 활동 중 1919년 3월 1일 권애라, 심영식 선생 등과 함께 개성 시내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이튿날 선생은 교회에서 체포됐고 다음달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 투옥됐다.

1920년 4월 만기출옥 후, 선생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감옥생활에 대해 "사람으로는 받지 못할 만큼 망측한 대접을 받았다"라고 회고했다.

선생은 인터뷰에서 "우리의 할 일은 학교를 많이 설립하여 청년 남녀에게 교육을 많이 시키고 해외로 유학을 보내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임명애(1886~1938) 선생은 경기도 파주 출생으로 한국 구세군 사령(염세호)의 배우자로서 1919년 3월 10일 파주군 교하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 1백여 명을 이끌고 앞장 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파주에서 첫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같은해 3월 25일에는 선생의 집에서 배우자, 학생 등과 함께 '3월 28일 만세시위를 일으킬 테니 모두 둥글봉으로 모이라'는 격문을 작성해 배포했다.

선생은 거사 예정 이틀 전인 3월 26일 염규호 등 700여 명과 와석면사무소로 가서 면서기들에게 휴무하라고 압박하고 이어 경찰 주재소로 진행했다.
시위대를 향한 일제 헌병의 발포로 최홍주가 현장에서 숨을 거두었고 시위대는 해산됐다.

선생은 현장에서 체포돼 1919년 6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권애라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심영식 선생과 신관빈 선생에게 각각 1990년과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임명애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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