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은 한류앓이중'..발디딜 틈없는 도쿄 한인타운
2023.03.04 05:00
수정 : 2023.03.04 09:51기사원문
[도쿄=김동규 기자]나루히토 덴노(국왕)의 생일이었던 지난달 23일, 도쿄 신주쿠구에 위치한 한인타운 신오쿠보는 모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다. 소위 맛집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한식을 맛보려는 현지인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주말을 끼지 않아 다음날 출근을 해야하는 '반짝 공휴일'이었지만 수도권에 사는 많은 일본인들은 한국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신오쿠보로 몰려들었다.
중심가로부터 골목길에 이르기까지 폭 2~3m가량의 골목 곳곳에는 호떡과 핫도그, 떡볶이 등 한국의 대표적 길거리 음식을 사먹으려고 길게 줄을 서다보니 일부 손님의 경우 1시간 넘게 대기하기가 일쑤였다.
인파가 대거 몰린 탓에 이날 기자는 약 1~2분간 가다서다를 반복한 끝에 20여분 만에 겨우 중심가로를 지날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설렁탕을 먹기 위해 신오쿠보를 찾았다는 한다모씨(31·남성)는 "원래부터 복잡한 동네였지만 최근 1~2년 사이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사람이 늘어났다"며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후루 등 오버 더 톱(OTT) 서비스를 통해 드라마와 영화 등 한국 콘텐츠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다 보니 (일본 사회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나 역시 이들 중 1명"이라고 말했다.
신오쿠보 韓人 점포 약 5년 새 1.5배 증가
4일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가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신오쿠보 일대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점포 수는 634곳이었다. 약 5년 전인 2017년(396곳)과 견주어 무려 60.1%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현지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이 점포 수가 늘어나는 배경에 대해 다시금 일본 사회에 한류 열풍이 거세게 불고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10~30대 일본인 여성들이 한국문화의 주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한류 열풍을 견인한다고 이 관계자는 강조했다.
실제 이날 신오쿠보에서 만난 일본인 상당수는 10~30대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한국식 카페에 입장하기 위해 1시간 넘게 줄을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일본의 젊은 층에 한류가 깊숙히 파고들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식 카페의 매력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코미나토모(23·여성)씨는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한국식 카페 사진이 자주 올라온다"며 "패밀리 레스토랑 분위기를 풍기며 중년층이 찾을 법한 일본식 카페의 분위기와 달리 차분한 분위기에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한국식 카페의 분위기가 SNS 사이에서 상당한 유행"이라고 밝혔다.
이어 "아마 여러 한국 콘텐츠에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주변에서 느끼기 힘든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스티커 사진을 찍기 위해 신오쿠보를 방문했다는 타케우치모(17·여성)씨는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신오쿠보를 찾았다"며 "신오쿠보에 오면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들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독창성 아닌 보편성으로 승부하는 한류
이 같은 한류 열풍 때문일까. 한국 식문화에 대한 수요도 갈수록 폭발하고 있다.
이날 중학생 딸과 함께 신오쿠보를 찾은 스스키모(44·여성)씨는 "집에서 한국음식을 자주 먹다 보니 한국식 김과 간장, 된장 등 한국 식자재를 사기 위해 2~3달에 1번 꼴로 신오쿠보를 방문한다"며 "최근 1~2년 사이 편의점에서는 참이슬과 막걸리 등을 팔고 있는 것이 어느 순간 당연하다고 다가왔다"며 들 뜬 모습이었다.
앞선 한다씨는 "찜닭 등 일반적인 일본 가정식과 같이 간장과 된장 등을 베이스로 한 단 맛에 고소한 음식들도 일본사회에 많이 퍼져있다"며 "이 같은 공통분모를 지닌 한국 음식들이 일본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 콘텐츠가 일본 사회에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일각에선 한국사회만이 지닌 일국적 독창성을 강조하기보단 자본주의사회가 지닌 세계적 보편성을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히토츠바시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생 우메가키모(30·남성)씨는 "한국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표면적으로 연애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빈부격차와 장애인에 대한 차별, 여성의 경력단절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사회 문제를 개연성 있게 담아내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문학적 장치들이 일본인들도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만들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