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파산이 소환한 '대마불사 흑역사'
2023.03.17 05:00
수정 : 2023.03.17 05: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크레디트스위스 유동성 위기를 보는 전 세계 금융권은 또다시 '대마불사(大馬不死·too big to fail)'를 떠올리고 있다.
금융권에서 대마불사는 금융사 파산이 사회에 큰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금융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뜻한다. 파산하더라도 당국이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구제에 나설 수밖에 없어 금융사가 입는 손해는 사실상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SVB 파산에 CS 유동성 위기 격자, 국가가 수습 나서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SVB가 불과 36시간 만에 파산하고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 역시 유동성 위기를 겪자 미국과 스위스 금융당국이 예금 전액 보호, 긴급 유동성 지원을 골자로 하는 대책을 시급히 내놓은 데 대해 금융권 대마불사 논제가 유효하다는 판단이 나오고 있다.
금융권에서 대마불사는 줄곧 위기 확산 방지와 도덕적해이 사이에서 딜레마가 돼 왔다. 금융시장에선 금융 소비자들의 불안한 심리를 잠재우는 것이 1순위로 여겨지는 만큼 당국으로서는 당연한 조치지만, 금융업체의 부실·방만 경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서다.
대표적으로 미국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위기를 부른 대형 투자은행들에 책임을 묻지 못하고 오히려 구제금융을 투입해 살려내야 했다. 이는 대마불사 흑역사로 여겨진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SVB 파산에 대해 미 금융당국이 내놓은 대책을 보면, 미 연방준비제도와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SVB와 시그니처은행의 고객 예치금을 상한 25만달러를 넘어 전액 보장하고, 비슷한 위기에 몰리는 다른 은행들에는 현금을 신속히 빌려준다는 내용이다.
SVB 파산의 물질적 피해를 최소화하고 심리도 안정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은행 파산 사회적 파장 커..
은행 기능이 마비되면 많은 거래기업이 자금난을 겪고 임금체불, 도산 등을 통해 노동자에게도 고통이 전가된다. 예금주 불안이나 금융체계에 대한 불신이 가중되면 뱅크런이 심화해 여러 다른 은행이 추가로 위험에 노출된다.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 부를수도
하지만 이런 대마불사 인식 확산은 금융사의 무모한 경영을 부추겨 나중에 더 큰 위험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도덕적 해이는 우리 금융권에서도 큰 딜레마가 돼왔다. 일례로 증권사들이 저금리 시대 부동산 PF로 호황을 누리다 시장 불안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하면서 금융당국은 보증에 나서야 했다.
금융당국의 '시장 자구 노력' 요청에 증권업계가 모두 출자에 참여하는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 전용 펀드를 조성하긴 했지만, 유동성 파티 규모와는 차이가 크다.
한편 전문은행 파산으로 큰 은행으로 자산이 몰리는 또 다른 대마불사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스타트업 전문은행인 SVB가 파산하자 미국 2위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에 유입된 예금 규모가 150억 달러(약 19조5000억원) 이상으로,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로 거론되고 있다. 금융 소비자들이 '대마불사'에 대한 믿음으로 큰 은행들로 자금을 옮겼다는 것이다.
미국 1위 은행인 JP모건에도 수십억달러 규모의 자금이 들어왔고, 씨티그룹·웰스파고 등 다른 대형 은행에도 평소보다 많은 예금이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