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시기도, 지역도 없다…화약고 된 '메마른 산'

      2023.03.21 05:01   수정 : 2023.03.21 05:01기사원문
김창현 산림재난상황실장 13일 대전광역시 서구 정부대전청사 산림청 중앙산불방지대책본부 상황실에서 전국의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 하며 봄철 산불 비상근무를 하고 있다. 2023.3.13/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지난해 5월31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춘화리에서 산불이 발생하여 산림청 헬기가 화재진압을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김영훈 기자


지난해 3월13일 경북 울진군 북면에서 본 산들이 잿더미로 변해있다.

/뉴스1 ⓒ News1 최창호 기자


대전광역시 서구 정부대전청사 산림청 중앙산불방지대책본부 상황실에서 지난 13일 직원들이 전국의 화재 상황을 실시간으로 살펴보며 봄철 산불방지 및 대응에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3.3.13/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편집자주]매년 봄마다 발생하는 산불이 이상기후와 함께 점차 대형화, 연중화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울진·삼척에서 역대 최악으로 꼽히는 산불이 일어났고, 올해 역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정부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할 정도로 대형 산불 위험성이 큽니다. 뉴스1은 산불의 대형화, 연중화의 원인과 이를 부추기는 이상기후, 또 그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는 이재민들의 삶을 현장에서 살펴보는 4편의 기획물을 만들었습니다.


(대전=뉴스1) 김기남 박상휘 박동해 박혜연 이정후 기자 = "예전 이맘때면 산불이 자주 나는 지역으로 병력을 미리 전진배치했지만 지금은 못 하죠. 언제 어디에서 산불이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지난 13일 산림청에서 만난 김창현 중앙산림재난상황실장이 산불 진압용 헬기 배치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는 그의 말처럼 한반도가 그려진 상황판에는 헬기들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분포돼 있었다.

김 실장은 "헬기들이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아닌 포천, 속초까지 출동해 있는 상황"이라며 "(산불 예방 병력이) 남하하는 것이 아니라 북상하는 추세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건조해진 기상 환경으로 더 이상 남부 지역에만 병력을 집중적으로 배치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올해 산불 통계가 적혀 있는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종이에는 1월부터 이달 12일까지 발생한 산불이 249건으로 기록돼 있었다. 같은 기간 발생한 지난 10년 평균 건수보다 157% 증가한 수치였다. 김 실장은 "갈수록 산불이 늘어나는 건 분명하다"며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아까시나무꽃은 옛말…이제는 밤꽃 기다린다

지난해 3월 동해안 대형 산불을 경험한 산림청은 그 어느 때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산불 발생 위험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날(12일) 전국에 내린 비 덕분에 매일 10회 안팎으로 울리던 산불 발생 사이렌은 이날 조용했다. 하지만 산불이 확산하기 쉬운 강풍주의보가 곳곳에 내려져 긴장감은 여전했다.

산불 진화 과정을 설명하던 김 실장은 최근 변화한 산불 양상으로 '연중화'를 체감한다고 했다. 전체 산불의 약 60%가 여전히 봄철(3~5월)에 발생하고 있지만 여름, 가을, 겨울 가릴 것 없이 크고 작은 산불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예전엔 '아까시나무꽃이 피면 산불이 끝났다'라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밤꽃이 피어야 산불이 끝난다'로 바뀌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아까시나무는 4월 말에서 5월에 꽃이 피고 밤나무는 6월에 꽃이 핀다. 산불이 다수 발생하는 기간이 한 달 이상 늦춰지면서 속담처럼 쓰이던 말도 변해가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2010년부터 2013년까지 7월에 발생한 산불은 0건이다. 하지만 최근 5년 동안 7월에도 연평균 8회씩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예년 같았으면 장마철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6월부터는 산불 발생이 감소해야 한다. 그러나 '지각 장마'나 '마른 장마'가 빈번해지면서 산불 기간이 늘어나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는 "지난해 밀양 산불도 5월31일에 발생했는데 날씨가 엄청 더워서 '초여름 산불'이라는 표현을 썼다"며 "산불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 해마다 계속되는 '겨울 가뭄'…대형산불 위험도↑

달라진 산불 발생 양상의 또 다른 특징은 '대형화'이다. 봄철 산불은 바람이 태백산맥을 넘어가며 고온건조해지는 '양간지풍'으로 인해 종종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최근 들어 산불 피해면적이 확대되고 있다.

산림청이 집계한 '10년간(2012~2021년) 산불 발생 현황'에 따르면 산불로 인한 평균 피해면적은 1087㏊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 평균값을 웃도는 피해면적은 최근 5년 내로 집중됐다. 2017년 1480㏊, 2019년 3255㏊, 2020년 2920㏊ 등 대형 피해를 일으키는 산불이 빈번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피해면적 100㏊ 이상일 때 분류되는 '대형산불'은 지난해에만 11건 발생했다. 이 같은 대형산불의 조건에는 강수량, 풍속, 상대습도, 온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충분한 비가 오지 않은 상황에서 바람까지 세게 불면 산불이 확산하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 국립산림과학원은 6㎧의 속도로 바람이 불 경우 바람이 불지 않을 때보다 산불 확산 속도가 최대 26배 이상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김 실장은 역대 최악의 산불 중 하나로 손꼽히는 지난해 울진·삼척 산불이 이 경우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겨울(2021년 12월~2022년 2월)은 기상관측망을 전국으로 확대한 1973년 이후로 가장 적은 13.3㎜의 비가 내렸다. 바짝 마른 초목에 강한 바람이 사방으로 불면서 지난해 울진·삼척은 213시간 동안 2만923㏊가 까맣게 탔다. 당시 최대 풍속은 26㎧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도 상황은 좋지 않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전국 강수량은 평년 수준인 71.6㎜를 기록했지만 이는 1월13일 하루 만에 내린 이례적인 폭우의 영향이 컸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하루 동안 내린 비의 양이 이번 겨울 전체 강수량의 40.4%를 차지했다. 건조한 환경 속에 올해 대형 산불은 이미 발생했다. 지난 8일 경남 합천에서 발생한 산불은 마을 주민의 담배꽁초로 축구장 230개 면적인 163㏊을 태우고 꺼졌다.

◇ 건조해지면 커지는 산불…원인은 기후변화

산불이 '연중화', '대형화'되는 원인 중 하나로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를 꼽는다. 점점 건조해지는 겨울 환경이 산불 예방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기후변화로 1년 전체 강수량이 늘었지만 강수일수는 줄어들고 있다. 예전보다 비는 많이 오되 짧은 기간 집중적으로 내리면서 전체 건조일수는 증가하는 구조다. 국내 장기 기후변화 모습을 보여주는 '우리나라 109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30년(1912~1940년) 대비 최근 30년(1991~2020년)의 강수일수는 21.2일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건조특보 발령일수가 산불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산불과 날씨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50년간 통계분석을 통한 국내 산불과 기상과의 관계'에서는 1990년대에 비해 2000년대의 연평균 강수량 및 강수일수가 더 많았음에도 건조주의보 발령일이 더 많아 산불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산불에 영향을 미치는 건조한 날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 100일을 넘지 않았던 건조주의보 발령일은 2010년대에 들어 평균 127일로 크게 증가했다. 이렇게 낮아진 습도는 산불 발생 확률을 더욱 높인다.

김 실장은 "예전에 땔감으로 썼던 나뭇가지나 낙엽들이 지금은 쓰이지 않으면서 현장에는 낙엽층이 30㎝ 이상씩 두껍게 쌓여있다"며 "연소 물질이 많아지고 날씨는 건조해지면서 이중고에 시달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반도의 기후변화를 보여주듯 김 실장이 가리킨 '산불위험지역'에는 이전에 포함되지 않았던 포항, 경주, 울산 등이 새로 추가돼 있었다. 지난 20년(2002~2021년) 동안 경북 지역의 연평균 강수량은 1200㎜를 기록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이에 미치지 못하는 해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포항, 경주, 울산 등은 최근에 추가된 지역"이라며 "과거에는 고성부터 삼척까지 이르는 강원도 동해안 일대를 '산불위험지역'으로 구분했지만 (기후가 변하면서) 이 지역까지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부터 이어진 가뭄이 장기화하고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산림청은 울진에 2025년까지 '국립 동해안산불방지센터'를 설립해 체계적인 산불 예방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이정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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