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어딜가든 백제 현인의 흔적... 꽃놀이 갔다 '왕인 박사' 되겠네
2023.03.24 04:00
수정 : 2023.04.29 17:45기사원문
【영암(전남)=정순민 기자】일본 도쿄 우에노공원에 가면 왕인박사비(王仁博士碑)가 우뚝 서있다. 백제 근초고왕(재위 346-375년) 때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달한 '백제의 현인' 왕인 박사를 기리는 비석이다. 일제강점기인 지난 1937년 세워진 이 비석에는 "공자가 죽은지 760년 후 한국에서 태어난 왕인 박사는 일본 황실의 태자들에게 충신효제(忠信孝悌)의 도를 가르쳤다.
■30일부터 영암왕인문화축제
일본에서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왕인 박사를 테마로 한 문화축제가 열린다. 오는 30일부터 내달 2일까지 전남 영암군 군서면 왕인박사유적지와 상대포 역사공원, 구림전통마을 등지에서 열리는 '2023 영암왕인문화축제'다.
코로나19 여파로 4년만에 오프라인으로 개최되는 이번 축제는 'K컬처의 시작, 왕인의 빛'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대표 행사인 테마 퍼레이드 'K레전드, 왕인의 귀환'을 비롯해 왕인박사 춘향제(春享祭·봄에 지내는 제사) 등 주제행사, 국립공원 월출산 생태탐방원 영암 유치기원 음악회 등 각종 문화공연, 어린이 직업체험 테마파크 '키자니아 in 영암' 등 여행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4일간 펼쳐진다.
이밖에도 왕인 천자문 월드, 북카페 왕인의 숲 등 왕인 박사가 전한 문자, 활자, 책을 활용한 콘텐츠와 영암 봄꽃 사진관 등 계절 맞춤형 주제관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어 온 가족이 함께 떠나는 봄 나들이 코스로 안성맞춤하다.
■상대포와 왕인박사유적지
왕인 박사가 천자문을 들고 일본으로 떠난 출발지가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상대포(上台浦)다. 삼국시대 이곳은 국제무역항으로 일본이나 중국으로 가는 배가 여기서 출발했다고 한다. 왕인 박사도 아마 이곳을 출발해 영산강을 거쳐 서해로 나간 뒤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일본으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1970~80년대 진행된 영산강 하구둑 공사 등으로 인해 작은 규모의 저수지로 변해 더 이상 포구로서의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왕인 묘와 석상 등이 있는 왕인박사유적지는 영암 구림전통마을 동쪽 문필봉 기슭에 있다. 유적지 정문 격인 백제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일본에서 헌정한 왕인정화비가 있고, 그 맞은편에 왕인전시관이 있다. 또 문 하나를 더 지나면 그 안쪽으로 왕인 사당이 보인다.
유적지 안에는 신비로운 우물이 하나 있다. 왕인 박사가 마셨다고 전해지는 성천(聖泉)이다. 성천의 물을 마시면 왕인과 같은 훌륭한 사람을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또 왕인 사당에는 영정과 위패가 봉안돼 있어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문필봉 쪽으로 더 오르면 왕인 박사가 책을 읽으며 학문을 수련했다는 책굴이 나온다.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입구가 좁지만 굴 안쪽으로 길이 7m, 너비 2.5m 정도의 공간이 있다. 그 앞에는 후대 사람들이 왕인 박사의 모습을 바위에 새겼다는 왕인 석상이 우뚝 서있다. 또 문산재(文山齋)와 양사재(養士齋)는 왕인이 후학을 가르쳤던 곳으로, 월출산 서쪽 산중턱에 터만 남아 있던 것을 최근 복원했다.
■느릿느릿 걷기 좋은 구림마을
왕인 박사의 탄생지로 알려진 구림마을은 400년 넘게 보존되고 있는 고색창연한 고택과 울창한 솔숲 사이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누각들로 인해 고즈넉한 느낌을 준다. 마을 북쪽은 북송정, 동쪽은 동계, 남쪽 산 아래 지역은 고산 혹은 남송, 서쪽은 서호정이라 불린다. 지금은 낭주 최씨, 함양 박씨, 연주 현씨, 해주 최씨, 창녕 조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구림마을은 왕인 박사 외에도 통일신라시대 명승 도선국사와 조선시대 명필가 한석봉과도 인연이 있다. 이 마을 숲속에 한 아이가 버려졌는데 비둘기들이 그 아기를 감싸 돌보는 바람에 죽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이 아이를 데려와 문수사라는 절에 맡겼는데 그 아이가 훗날 풍수사상으로 이름을 떨친 도선국사가 됐다는 이야기다. 이 마을이 비둘기 구(鳩), 수풀 림(林) 두 글자를 써서 구림마을이 된 연유다.
개성 태생으로 알려진 한석봉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미한 가문 출신인 한석봉은 어린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서예가 신희남의 문하에 들게 되는데 그의 고향이 바로 전남 영암이었다. 하여 한석봉은 12세 때부터 진사시에 합격한 25세 때까지 영암에서 살게 됐고, "나는 떡을 썰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라는 그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도 여기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달이 뜨는 산' 월출산과 영암다원
전남 영암엔 왕인 박사와 관련한 유적지만 있는 건 아니다. 왕인문화축제를 충분히 즐겼다면 '달이 뜨는 산'으로 불리는 월출산과 드넓은 차밭이 펼쳐져 있는 영암다원을 찾아도 좋다. 월출산은 해발 809m로 높지 않지만 산체가 매우 크고 수려해 금강산이나 설악산에 견줄만한 경치를 자랑한다. '남도의 금강산'이니 '남도의 설악산'이니 하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월출산 최고봉은 천황봉이다. 남서쪽에 연이은 구정봉 능선을 경계로 북쪽은 전남 영암군, 남쪽은 강진군이다. 월출산에는 많은 문화재와 사적지가 있는데, 천황봉 정상 가까이에 국보로 지정된 월출산마애여래좌상이 있고, 그 동쪽 사면에는 구절폭포가, 서쪽 사면에는 용추폭포가 있다. 또 월출산 매봉과 사자봉을 연결하는 해발 605m 높이의 구름다리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월출산을 마주보고 있는 영암다원은 산으로부터 신선하고 시원한 공기를 사시사철 제공받을 수 있는 뛰어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난 1951년 한국홍차라는 이름으로 처음 차사업을 시작한 한국제다(韓國製茶)의 두 번째 차밭으로 지난 1979년 처음 조성을 시작했다. 한국제다의 첫 번째 차밭은 전남 장성에, 세 번째 차밭은 해남에 있다. 푸르게 펼쳐진 차밭과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월출산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