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가스요금 인상 언제까지나 미룰 수만은 없다
2023.03.31 17:05
수정 : 2023.03.31 17:0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2·4분기 전기·가스 요금 인상이 보류됐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31일 당정 협의 후 "에너지 가격 변동 추이 등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 있어 지금 바로 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재확인했지만 인상 시기, 폭은 앞으로 더 논의 과정을 거쳐 결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여전히 불안한 물가와 서민 부담, 에너지 가격 현실화 사이에서 정부와 여당의 고민은 컸을 것이다. 그것도 2·4분기를 하루 앞두고 이같이 결정했다. 막판까지 줄다리기가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인상 시기를 기한 없이 늦추면 사실상 동결로 볼 수 있다. 4월 이후에도 1~3월 요금이 그대로 적용된다.
당정이 설명한 보류 배경은 국제 에너지 가격의 하락 전환과 한전과 가스공사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이다. 우선 에너지 가격이 앞으로 얼마나 떨어지는지 추이를 보고, 그와 함께 두 공기업이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단 것이다. 일견 틀림이 없는 말이다. 여기에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물가와 윤석열 대통령의 에너지 요금 속도 조절 주문도 작용했다고 본다.
우리는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방만경영의 개혁 작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요금을 제때 현실화하지 않아 생기는 시장 왜곡과 두 에너지 공기업 손실은 이미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다만, 요금 인상에 대한 저항을 줄이고 국민 동의를 얻으려면 최소한의 자구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고 본다.
한전의 지난해 적자금액은 32조원이 넘는다. 업계는 올 1·4분기에도 5조원대 적자를 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 1월 기준 전기를 kWh(킬로와트시) 당 164.2원에 사서 kWh 당 147.0원에 팔았다. 이런 밑지는 장사로 적자가 계속 쌓이면 뒷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온다.
가스공사도 마찬가지다. 원료는 비싸게 들여오고 요금은 그에 못 미치는 상황이 반복됐다. 미수금은 지난해 말 9조 원까지 치솟았다. 지금은 12조원까지 늘었다. 난방비 폭탄에 놀라 1·4분기 요금을 아예 동결했던 여파가 컸다. 이런 악순환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요금 인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냉방을 위해 전기를 많이 쓰는 여름이 다가오면 국민들을 설득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하반기와 연말로 가면 총선 정국과 맞물려 여론 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다. 미룬다고 능사가 아니다. 당장 곤란한 상황은 모면할지 모르지만 정부로서도 부담만 커진다.
무리한 요금 억제는 포퓰리즘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요금 인상을 계속 미뤄서 이 지경이 됐는데 같은 전철을 밟는 우매한 정치를 반복해선 안 된다. 다만 앞서 밝힌 대로 두 공기업은 자구 계획을 속히 내놓아야 한다. 가스공사 임직원의 34%, 한전 임직원의 15%가 억대 연봉자라는 사실을 아는 국민에게 요금을 올려달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