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로 울려퍼진 ‘오페라의 유령’, 부산시민 사로잡다
2023.04.03 18:12
수정 : 2023.04.03 18:12기사원문
13년 만에 성사된 한국어 공연의 주역인 배우들의 가창력과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지난 3월 30일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전동석·송은혜·황건하 등 주조연 모두 '월드클래스' 작품에 걸맞는 기량을 뽐냈다. 팬데믹을 뚫고 전 세계 유일하게 한국에서 공연된 월드투어(2019~2020)가 '오페라의 유령'의 위용을 맛보게 했다면, 모국어로 듣는 한국어 공연은 캐릭터들의 감정에 이입돼 더욱 진한 재미와 감동을 안겼다.
■유령처럼 미스터리한 ‘무대예술’
유령의 요구에 크리스틴의 노래가 거듭 절정에 달하자 객석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행여 뮤지컬을 못 봤어도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오페라의 유령' 넘버가 객석을 압도한 순간이었다. 비단 송은혜의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쭉쭉 올라가는 고음뿐 아니라 이 장면이 품고 있는 다양한 감정과 상징에 새삼 놀랐다.
가스통 르루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오페라의 유령'은 19세기 파리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흉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숨어 사는 천재 음악가 유령(전동석·조승우·최재림·김주택)과 떠오르는 프리마돈나 크리스틴(송은혜·손지수) 그리고 귀족 청년 라울(황건하·송원근)의 러브스토리를 그렸다.
1986년 영국서 초연된 이 작품은 해롤드 프린스 연출, 질리언 린 안무, 마리아 비욘슨 프로덕션 디자이너 등 쟁쟁한 제작진에 의해 탄생해 완성도 자체가 높다. 특히 무대 전환에 스토리텔링을 접목한 연출은 수수께끼처럼 흥미롭다.
분장실 거울을 통해 나타난 유령이 크리스틴의 손을 이끌고 무대를 가로질러 어느새 지하 미궁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있는가 하면 마술처럼 무대가 파리 오페라하우스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호수로 변한다. 크리스틴을 태운 배는 반짝이는 촛불과 자욱한 안개를 뚫고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이렇듯 암전 없이 물 흐르듯이 연결되는 무대는 작품의 미스터리·판타지를 고조시키며 관극의 재미를 더한다.
유령이 만들고 크리스틴이 공연하는 극중 오페라는 그 자체로 보는 재미가 있으면서 인물들의 감정도 대변한다. 첫 작품인 '한니발'에 나오는 넘버 '생각해줘요 Think of Me'는 '우리가 어떤 이유로 헤어지거나 멀어지더라도 함께 했던 시간을 기억해달라고 호소하는 가사로 마치 유령의 마음처럼 들린다. 오페라 ‘돈 주앙의 승리’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과 겹쳐진다. 돈 주앙으로 분한 유령은 ‘돌아갈 수 없는 길 The Point of No Return’을 부르며 "뒤돌아보지 말고 (나와) 함께 가자"고 노래한다. 돈 주앙의 꼬임에 넘어간 마을 처녀를 연기하는 크리스틴은 "영문을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끌렸다"고 가창한다.
이날 전동석은 예의 매혹적인 목소리와 섬세한 연기로 자신만의 유령을 표현했다. 같은 넘버도 소절마다 다채롭게 부르면서 유령의 복잡한 내면을 표현한 그는 "유령은 너무나 외로운 캐릭터"라고 해석했다.
■한국·지역 뮤지컬 시장 견인
‘오페라의 유령’은 한국 뮤지컬시장의 성장과 함께했다. 2001년 초연 당시 7개월간 24만명을 동원하며 국내 뮤지컬 산업화의 시작을 얼었다. 2012년 내한공연은 국내에서 단일 작품 최초로 누적 100만명을 돌파했다. 13년만의 세 번째 한국어 공연은 오는 6월 18일까지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공연하고 이후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이어간다.
뮤지컬 시장은 코로나 침체기로 바닥을 찍었던 2020년을 기점으로 매년 성장세다. 연도별 티켓판매액을 살펴보면 2020년 1453억원에서 2021년 2345억원, 2022년 4200억원을 기록했다.
부산 지역 1분기(1~3월) 티켓 판매 건수도 2021년 3만7599건에서 2022년 8만7805건, 2023년 16만4322건으로 2배가량 늘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이번에 부산에서 11주나 공연하면서 지역 최장기 공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형호 문화산업분석가는 "뮤지컬 시장이 코로나19 대비 매년 2배씩 커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 부산 공연시장이 있다"며 "특히 부산 인구 감소에도 해당 공연시장은 매년 증가세"라고 말했다. 이는 드림씨어터가 경남 지역 관객도 흡수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jashin@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