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 맞는 한일관계… 과거사 매듭, 자르지 말고 풀어야
2023.04.09 18:26
수정 : 2023.04.09 20:38기사원문
한일 국교 정상화는 1965년 결론이 났지만 협상은 1951년부터 시작되었다. 이정식 교수는 한일회담이 '세계 역사에서 가장 긴 협상'이 된 이유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양국의 인식 차이'라고 본다. "한국인들이 원했던 것은 일본인들에 의해 짓밟힌 국민감정을 진정시킬 수 있는 '정신적 화해'였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정신적·도덕적 측면에서)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지만 일본은 (법적·실용적 측면에서) 이미 물질적 보상을 했으며 법적으로 완결되었다는 입장이다. 청구권 자금이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국민정서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창위 교수가 저서에서 '일본 천황과 총리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 일지'를 정리한 바에 따르면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부터 2018년 아키히토 천황에 이르기까지 53번의 사과가 있었다고 한다(토착왜구와 죽창부대의 사이에서). 하지만 '진정한 사과'가 없었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게 일반적 정서이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법적 문제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협정은 한국 정부가 국민의 개인 청구권을 일괄 대리해 일본의 지원금을 수령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역대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분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지난 3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다. 정부는 그동안 피해자 보상을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강제동원조사법' 등을 통해 "1974년 92억원, 2007년 약 6500억원을 정부가 재정으로 보상해 드린" 바 있다. 그러나 일부 피해자들이 일본제철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2012년에 이어 2018년 우리 대법원이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문제는 완전히 다른 국면이 되었다. 개인의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기존 판결과 다른 '폭탄'이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사법 자제(judicial restraint)' 원리를 무시한 판결이란 점 등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비판과 별개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이제 '인도적' 차원이 아닌 '법률적' 해결이 필요한 사안이 되었다. 일본 기업의 자산 매각이라는 더 강한 폭탄이 터지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화급한 문제이기도 하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승소한 원고에게 판결금 등을 지급한다는 제3자 대위변제 방식이 나온 배경이다. 문제는 이를 거부하는 피해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민법 제469조 제1항은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한다. 제3자도 채무변제를 할 수 있다는 본문을 근거로 재단의 변제를 채권자인 피해자들이 거부할 경우 채권자 지체가 생기고, 재단이 법원에 공탁함으로써 변제의 효과가 발생한다고 해석하는 법률가도 있다. 반면 위자료청구권이라는 채무의 성질과 함께 거부하는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명확한 이상 제3자 변제가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 정부가 제3자 변제를 시작할 경우 소송전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양국 정치
"한국의 신화, 그에 맞서는 일본의 전후 신화가 부딪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역사를 둘러싼 대립이다. 두 신화 모두 국가의 형세를 변명 혹은 변별하는 것이므로 양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신화는 원래 국내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외국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는 숙명을 지닌다.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일본 저널리스트 와타나베 노부유키의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에 나오는 구절이다. 저자는 "복잡한 세력 관계 속에서 역사는 정통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신화'를 신봉하는 한일 양국이 역사적 사실이나 그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객관적 인식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일정서와 혐한감정을 이용하는 양국 정치권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한일 갈등의 완전한 해법은 없다는 뜻이다.
#박정희 대통령
1964년 3월 30일.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협정 반대시위를 주동한 서울 시내 11개 대학 학생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러 면담했다. 박 대통령은 평화선 문제, 청구권 문제 등 학생들이 제기한 의문점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학생대표들에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하고, 한일 교섭의 기밀사항까지도 알려주는 등 한일 수교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1965년 6월 23일 오후 8시. 한일 수교협정 조인 다음 날. 박 대통령은 '한일 국교 정상화에 즈음한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아무리 어제의 원수라 하더라도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들과도 손을 잡아야 하는 것이 국리민복을 도모하는 현명한 대처가 아니겠습니까." 박 대통령은 호소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가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느냐,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느냐 하는 관건은 우리의 주체의식이 어느 정도 건재하냐에 달려 있습니다."
#해법은 없나
■국민과의 소통 강화해야
이른바 군사독재 시대에도 대통령이 직접 시위 주동자들을 만나 한일 관계 정상화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국민을 상대로 담화를 발표하는 자세를 보였다. 제3자 변제 해법을 발표하기 전 윤 대통령이 피해자 등을 만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면 어땠을까. 일본 방문 후 국무회의 석상에서 무려 23분에 걸쳐 피력한 입장문 대신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면 어땠을까. 완전한 설득은 어렵다 해도 훨씬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피해자 및 관련자들을 만나고 담화 발표, 기자회견 등을 할 필요가 있다. 맹목적인 여론 추종도 문제이지만, 여론을 외면하는 정치도 현명하지 않다.
■법률적 해법 찾아야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지난 정부에서 제3자 변제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바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 정대철 헌정회장 등도 윤 대통령의 "불가피한 결단"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들 원로를 초청하여 조언을 구하고 역할을 부탁할 필요가 있다. 문 전 의장은 지난 정부에서 '2+2+α(알파)', 즉 한일 기업(2)과 양국 정부(2)의 기부금, 국민의 성금(α)으로 피해자에게 배상하되 새로운 재단 설립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현 재단의 정관만 고쳐서 정부가 돈을 내면 불법이라고 지적한다. 문 전 의장 등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만들어 해법을 논의한다면 넓은 의미로 야권과의 대화통로도 마련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한일 갈등에 대한 인식 전환을
성급한 '해결책' 대신 양국 관계가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한일협정이나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는 합의가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신정화 교수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 역대 정권의 대응' 논문에서 결론을 내린 것처럼 "한일 정부가 양국 간 갈등의 존재를 인정하고, 섣부른 해법을 모색하기보다 한국에서의 반일여론이나 일본에서 반한감정이 분출하지 않도록 선제적 관리에 힘쓰는 게 현명한 대응책"이라고 본다.
■인적네트워크의 (재)구축 및 활용 필요
'니어재단'이 발행한 '외교의 부활'은 양국 관계 악화 원인 중 하나로 정치인, 경제인의 인적 채널 및 네트워크 약화를 든다. 국교 수립 후 한일 정치인 간에는 수많은 공식, 비공식적 채널이 존재했다.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는 양국의 잦은 정권 변동과 정치인의 세대교체에 의해 약화되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거나 그 의미를 상실했다. 저자들은 한일 정상 및 고위급 간의 정례적 협의채널 가동, 정치인·경제인·언론인·지식인 등 오피니언리더들 간 점진적 네트워크 복원, 양국 국민의 활발한 왕래와 소통 지원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방일 과정에서 일한의원연맹 및 일한친선협회중앙회 인사들을 접견했고,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이끌어낸 오부치 총리의 딸 유코 일한의원연맹 부회장을 면담했다. 우리나라에도 의원 180여명이 참여하는 한일의원연맹이 있다. 윤 대통령이 정진석 회장, 윤호중 간사장 등 여야 대표 의원들을 면담하는 등 한일 정치인들의 네트워크에 힘을 실어주고 앞으로 한일 관계개선에 연맹 소속 양국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없다
복잡하게 엉킨 사안을 단칼에 해결하는 것을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른다고 한다. 고르디우스의 마차를 묶어 놓은 매듭을 푸는 자는 아시아의 왕이 된다, 알렉산드로스 왕은 복잡하게 엉킨 매듭을 풀 수 없자 칼로 잘라버렸다.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아시아의 왕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다 아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그의 제국은 분열되었는데, 매듭을 정상적으로 풀지 않고 칼로 끊어버린 것 때문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이 복잡하게 꼬인 한일 관계 매듭을 단칼에 자르듯 제3자 해법을 내놓은 결단은 높이 평가한다. 과거에 매달리기보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가 필요하다는 기본인식에도 동의한다. '굴욕외교'라는 민주당의 비판과 달리 김진표 의장이 "필요한 선택"이라는 긍정적 의견을 밝힌 것은 직전 한일의원연맹 회장으로서 남다른 관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김 의장 역시 "피해자나 유족들과 좀 더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단칼에 매듭을 잘라 물꼬를 텄지만 보다 정교한 후속 '정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감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반전에서 더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잘려진 매듭을 이제라도 하나씩 수습해야 한다. 우리 옛 어른들도 "매듭은 자르는 게 아니라 푸는 것"이라고 하셨다.
dinoh7869@fnnews.com 노동일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