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깜짝 감산'에도 유가 제자리, 중소 산유국 물량 덕분
2023.04.10 16:40
수정 : 2023.04.10 16:4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주요 중동 산유국들이 이달 유가 부양을 위해 갑작스레 석유 감산을 선언했지만 그 효과가 예상보다 약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미 남미, 아프리카, 북유럽 등의 다른 산유국들이 지난해부터 감산 합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란, 가이아나, 노르웨이, 카자흐스탄, 브라질, 나이지리아 등 중소 산유국들이 지난해부터 석유 생산량을 늘렸다고 전했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지난해 9월에서 올해 2월 사이 석유 생산량이 35만배럴 증가해 일평균 130만배럴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이란의 생산량도 일평균 20만배럴 늘어났고 카자흐스탄도 일평균 24만2000배럴 증가했다. 브라질은 리우데자네이루 연안의 새 부유식 채굴 시설이 가동된 데 힘입어 올해 1월 역대 최고의 생산량을 기록했다.
앞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13개 회원국과 러시아 등 10개 비(非)OPEC 산유국들이 모인 OPEC+는 2022년 10월 회의에서 일평균 석유 생산량을 200만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이 러시아 석유를 제재하자 보복 차원에서 지난 2월부터 독자적으로 일평균 생산량을 50만배럴 줄인다고 선언했다. OPEC의 종주국인 사우디는 시장을 관망하다 지난 2일에 갑작스레 석유 생산을 일평균 50만배럴 줄인다고 알렸다. 이날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이라크, 쿠웨이트, 오만, 알제리, 카자흐스탄도 연달아 감산을 선언했으며 이들이 밝힌 감산 규모만 일평균 116만배럴이었다. 같은날 러시아는 올해 말까지 2월 감산 계획을 연장한다고 알렸다.
외신들은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새 경제 건설에 몰두하는 사우디가 막대한 자금 확보를 위해 유가 방어 차원에서 감산을 감행했다고 추정했다. 그러나 북해산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9일 기준 배럴당 81달러 언저리로 지난달 초와 거의 비슷하다.
WSJ는 사우디와 일부 중동 국가들이 감산에 나섰지만 다른 중소 산유국들이 그 전부터 합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유가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사우디가 지난해 9월~올해 2월 사이 감산한 분량은 일평균 56만배럴로 나이지리아와 카자흐스탄의 증산량과 비슷한 규모다.
다만 WSJ는 중소 산유국의 증산이 투자 확대에 따른 계획적인 변화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나이지리아의 경우 우회 파이프라인을 통한 석유 절도 문제가 불거진 이후 일부 석유 채굴 작업을 중단해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 현지 생산량은 이후 보안회사를 투입해 바지선을 통한 운송로를 확보하면서 다시 늘어났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의 흑해 해안 수출 터미널의 잠정 폐쇄로 빚어진 가동 차질에서 벗어나면서 생산이 늘어났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 그룹의 원자재 담당 분석가인 조반니 스토노보는 나이지리아와 카자흐스탄에서 추가적인 대량 증산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미국과 핵협상을 벌이고 있는 이란을 언급하며 이란의 석유 생산이 최대 위험 요소라고 지적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