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계산해줄까"...69시간 연장근무 불신 팽배

      2023.04.14 05:00   수정 : 2023.04.14 05: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늦게까지 일하면 상사가 '내일은 쉬고 오라'고 했다. 그게 내가 아는 탄력근무다."
유통업계의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임모씨(33)는 잦은 야근에도 따로 탄력근무를 활용한 적은 없다.

현행 '주 52시간' 근로제도 아래서도 회사 내규에 따라 특정주 최대 60시간까지 탄력근무가 가능했다. 어려운 제도를 따르기보다 각 부서의 '재량에 따라' 직관적으로 알기 쉽게 "하루 힘들었으면 하루 편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일했다"는 것이 임씨의 설명이었다.

정부가 새롭게 제시한 '69시간' 개편안으로 오면 계산은 더 복잡해진다. 간단하게 하루에 8시간씩 5일, 그리고 주 최대 야근시간 12시간을 합해 '52시간'을 제시했던 현행에 비하면 고려 요소가 대폭 늘어났다는 지적이다. 주52시간제 틀 안에서 ‘1주 단위’의 연장근로 칸막이를 제거하겠다는 것이 이번 개편안의 취지라고 정부는 설명하지만, 현행의 2주 단위 탄력근로도 현장에서의 적용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2주 단위에서도 어려웠던 근로시간의 추적과 관리가 선택 근로제 확대를 통해 분기와 반기, 연간으로 늘어났다. 미래의 근로시간을 현재에 소진할 경우 분기는 90%, 반기는 80%, 연간은 70%의 저감을 추가근로시간의 총량에 적용해야 한다.

예로, 월단위 관리를 선택하면 주 평균 12시간에 맞춰 1개월 간 쓸 수 있는 최대 연장근로 시간을 부여받는다. 1개월을 약 4.435주로 계산해 월 최대 52시간의 근로가 가능하다. 분기 단위 관리를 선택한 근로자는 주평균 10.8시간, 3개월(분기) 기준으로는 약 141시간을 연장해 근무할 수 있다.

기본근무 40시간과 연장근무 29시간을 더해 1주차에 최대 69시간 근무했을 때, 2주차의 근로시간 선택지도 달라진다. 월단위 근로자는 최대 연장근로 52시간에서 29시간을 차감한 23시간 안에서 남은 3주의 근로를 편성해야 한다.

반대로 분기단위를 선택했다면 3개월 141시간에서 29시간을 차감해 남은 2개월 3주간의 근로시간을 편성할 수 있지만, 야근 총량은 감소했으므로 2개월 차에서는 월단위 근로자보다 적은 시간을 근무할 가능성도 있다. 연장근로 단위가 늘어날 수록 총량이 줄어들어 '실 근무시간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취지도 일리가 있는 셈이다.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개편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근무시간의 엄격한 추적과 관리가 현행에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임씨는 "유통업계 특성상 물류 현장 업무가 많은데 전산에 제대로 등록이 어렵다"며 "주 제한 업무시간도, 제한 시간 지났으니 박스 내려놓고 퇴근하는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정부가 제시한 근로시간 선택 예시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됐다. 1~2주차에서 현행 최대 근로시간보다 많은 근무를 할 정도로 바쁜 시기를 보낸 후 바로 다음 주에 2~3일씩 일을 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거나, 독립된 인사팀이 없는 경우도 있는 중소기업은 더욱 적용이 어렵다.

수원에서 중소 IT회사에 근무하는 홍모씨(31)는 "사무실에서 인사로 출퇴근 확인을 대신하는 수준인데 갑자기 근무시간을 분단위까지 확인할 수 있겠나"며 난색을 표했다. 현장에서의 지적에서도 불구하고 중소기업계에서는 개편안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며 "공짜야근만 늘어나는 것 아닌가"하는 불만도 덩달아 커지는 추세다.

근로시간 개편안의 입법예고 기한은 오는 17일로 종료된다.

정부는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치겠다고 밝혔지만, 근무시간 관리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한 도입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난 3월 17일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이 전국 만 18살 이상 1003명에게 의견을 물은 결과 ‘반대’는 56%에 달한 반면 ‘찬성’은 36%에 그쳤다.
반대한 응답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삶의 질 저하 우려 등을 이유로 꼽았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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