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이 요청하는 마지막 구제 절차, '비상상고'란
2023.04.13 15:04
수정 : 2023.04.13 15:5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검사의 실수로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음에도 '동명이인'이라는 이유로 기소됐다 벌금까지 받은 황당한 일이 대법원에서 바로잡혔다. 40대 A씨는 만취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 경찰의 음주단속에서 적발됐는데, 그의 음주운전에 따른 약식명령을 청구하는 공소장에 적힌 이는 60대 동명이인 B씨였다.
공소장에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 사항이 잘못 기재된 사실을 법원은 모른채 B씨에게 벌금 7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고, 이는 B씨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이 상황을 바로잡은 것은 검찰총장의 비상상고 제도를 통해서다. 비상상고(非常上告)는 형사판결이 확정된 후 판결이 법령을 위반한 것으로 발견된 경우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다시 재판해달라고 신청하는 일종의 비상구제 절차다. 이때 대법원은 단심재판으로 사건을 다시 심리한다.
형사소송법 제441조에 규정된 비상상고는 확정판결에 대한 비상구제 수단이라는 점에서 재심과 같지만, 피고인의 구제가 아닌 법령의 해석·적용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점이 다르다. 즉 재심의 결과에 따라 이미 확정된 판결의 결과를 유죄에서 무죄로, 또는 무죄에서 유죄로 뒤집을 수 있지만 비상상고는 원칙적으로 기존 판결의 위법사항을 바로잡는 절차라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법령해석과 법령적용의 통일이 목적이라 피고인의 이익은 본질적 문제가 아닌 부차적으로 고려 대상이 된다.
비상상고의 대상은 모든 확정판결이다. 형사소송법 제44 1조는 "검찰총장은 판결이 확정한 후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것을 발견한 때'에는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비상상고 신청이나 제출기한은 제한이 없다. 판결 확정 후 언제든지 가능하다.
비상상고 사건은 보통 잘못 부과된 벌금이나 폭행 합의했음에도 형사 처벌, 법정형을 초과하는 벌금형 등 비교적 가벼운 수준의 과잉 처벌을 정정하는 것이 대부분이나, 때로는 사회적 주목도가 큰 사건도 있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로 꼽히는 '형제복지원'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시민들을 불법 감금하고 시설에서 강제노역과 폭행, 가혹행위, 성폭행, 사망과 실종이 자행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검찰은 1987년 불법 감금 혐의 등으로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을 재판에 넘겼지만 법원은 1989년 7월 정부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3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난 2018년 검찰 과거사위원회 사건 재조사 권고에 따라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박씨 사건을 비상상고했다. 그러나 결론은 기각이었다.
대법원은 박 원장이 헌법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했다는 중대한 문제점은 인정하면서도, 이 비상상고는 법적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비상상고의 근거가 된 내무부 훈령이 아니라 법령에 의한 행위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 형법 20조를 근거로 박씨에게 무죄가 선고된 만큼 법을 위반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비상상고는 과거 판결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돼도 이미 확정된 박씨의 무죄 효력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다만 이에 따라 피해자들의 국가손해배상 청구 가능여부가 걸려 있어 대법원 결론에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