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2K 패션
2023.04.15 14:01
수정 : 2023.04.15 18:08기사원문
2000년을 눈앞에 둔 1990년대 말, 사람들은 새 천년이 오면 세상이 멸망하는 줄 알았다. '밀레니엄 버그'가 창궐해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면서다. 그러나 세상은 그대로였다.
그 시절을 상징하는 단어가 Y2K다. 연도를 뜻하는 'Year'와 숫자 '2', 1000년을 가리키는 'Kilo'의 맨 앞 글자를 따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세기말 감성을 이렇게 불렀다. 원래는 컴퓨터가 두 자릿수만 인식하는 데서 발생하는 '2000년 연도 표기 문제'를 가리키는 용어였지만 그 의미와 쓰임새가 확장됐다.
요즘 그 시절의 스타일과 멋을 소환한 'Y2K 패션'이 유행이라고 한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찢어진 청바지 △골반바지(로우라이즈) △조던 신발 △깔맞춤 트레이닝복 △크롭탑(배꼽티) △유치한 비즈 액세서리와 키치 티셔츠 같은 것들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20여년 전, 당시의 패션과 스타일을 주도했던 X세대(1970년대생)들의 옷장 문이 다시 활짝 열린 듯한 느낌이다.
티피코시, 잠뱅이, 리복, 헤드, 챔피온, 리(Lee) 등 한동안 모습을 감췄던 90년대 감성의 브랜드들이 재론칭을 하면서 부활을 꿈꾸는 것도 Y2K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보다는 조금 뒤에 유행했던 폴로 랄프로렌, 트루릴리전, 쥬시 꾸뛰르, 어그 등이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옛 추억이 방울방울 되살아난 데는 시절 탓이 크다는 분석이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는 세기말의 불안과 희망이 혼재돼 있던 때다. Y2K 트렌드 역시 젊은 세대가 안고 있는 불안과 그 속에서 꿈틀대는 자유분방함이 도화선을 제공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금 사회는 세기말처럼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데 이런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 젊은 세대들은 밝고 화려하고, 또 눈에 띄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Z세대들에게 1990년대 말이나 2000년대 초반의 복식과 소품은 촌스럽고 낯설지만 동시에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