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미궁에 빠진 '경찰의 억울한 죽음', '이 증거' 찾아 실마리 풀었다
2023.04.19 08:00
수정 : 2023.04.19 08:00기사원문
전북지역의 대표적인 장기 미제 사건이었던 '백선기 경사 피살사건' 최근 다시 주목받게 된 이유는 결정적인 물증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21년 묵힌 미제사건
19일 경찰에 따르면 '백선기 경사 피살사건'과 관련해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범인 중 한 명인 이정학을 유력 용의자로 보고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백선기 경사 피살사건'은 추석 연휴 첫날이던 지난 2002년 9월 20일 0시 50분께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금암2파출소에서 근무하던 백선기 경사(당시 54세)가 괴한의 습격을 당해 흉기에 찔려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백 경사는 다른 직원들이 순찰 나간 사이 혼자 일하다 누군가 휘두른 흉기에 가슴과 목 등을 찔린 채 살해당했다. 불상의 피의자는 백 경사를 살해한 후 그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38구경 권총을 탈취해 도주했다. 해당 권총에는 실탄 4발, 공포탄 1발이 장전돼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파출소에서 일어난 사건인 만큼 설치된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쉽게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특히 결정적인 단서를 쥔 파출소 내 CCTV의 먹통으로 인해 수사에 난항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해결이 안 된 사건으로 남아있다.
사건 직후 경찰은 백 경사의 단속에 걸려 오토바이를 압류당했던 20대 3명을 붙잡아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건 발생 시간에 현장에 있지 않았다는 알리바이가 있었고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이었다고 진술을 번복하면서 미제사건이 되고 말았다.
결국 경찰은 사건 발생 6개월 만에 수사본부를 해체했다. 백선기 경사는 사후 경위로 1계급 추서됐다.
"이정학이 범인이다" 대전 은행강도 이승만의 진술
21년째 미궁 속에서 헤매던 사건의 실마리가 잡힌 것은 백 경사의 사망과 함께 사라진 권총이 발견되면서부터다.
지난 2월 13일 전북경찰청에 "백 경사를 죽이고 총을 빼앗은 범인을 알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가 날라 왔다. 제보자는 '대전 은행강도 살인사건' 피의자로 검거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이승만이었다.
이승만은 전북경찰청에 보낸 편지에서 백 경사 사건과 관련해 "이정학이 바로 범인"이라고 썼다. 실제 이승만이 알려준 대로 울산 어느 여관 천장에선 진짜 총이 나오면서 신빙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대전 은행강도 사건과 얽힌 백 경사의 죽음
'대전 은행강도 살인사건'은 백 경사 사건보다 9개월 앞선 지난 2001년 12월 21일 대전 서구 둔산동 한 은행 지점에서 발생한 강도 살인사건이었다. 사건은 발생한 지 21년이 지난해 8월 25일에 피의자 이승만(1970년생), 이정학(1971년생)이 검거되면서 미제사건의 오명을 벗게 됐다.
이때부터 경찰은 이승만과 이정학,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백 경사를 살해한 범인으로 확신하고 수사를 이어가는 중이다.
지난 17일 윤 청장은 전북경찰청 강력계 장기미제사건팀을 방문해 사건 브리핑을 들은 뒤 "돌아가신 분과 유가족의 원한을 달랠 수 있도록 철저히 수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승만이 이정학을 백 경사 살해 진범으로 지목한 것은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이승만과 이정학은 지난 2월 있었던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1심 재판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가 '이승만이 총을 쏜 주범, 이정학은 조력자'로 판단한 결과였다. 이에 이승만은 바로 항소했고 전북경찰청으로 편지를 보내게 됐다. 편지를 통해 이정학이 '경찰을 죽이고 총을 빼앗을 정도로 흉악한 자'라는 걸 부각시켜 자신의 형량을 줄이겠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coddy@fnnews.com 예병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