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또 터질지 몰라" 불안… 꼬리표 붙은 동네 거래 뚝
2023.04.23 18:19
수정 : 2023.04.23 18:19기사원문
지난 21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피해지원센터를 나선 30대 장모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버지가 물려준 자금으로 계약한 전셋집에 보증보험 가입 사기가 의심돼 센터에서 법률상담을 받고 나오던 참이었다. 장씨는 "생애 첫 전세계약이라 부동산만 믿고 한 거였는데 어안이 벙벙하다"며 "집주인에게 연락하니 '문제를 몰랐다' '어머님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어서 어렵다' 등의 말로만 회피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당하고서야 집주인 '1000채 빌라왕'인걸 알아"
최근 전국 각곳에서 상습 전세사기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전세사기가 휩쓸고 지나간 지역에서는 '언제 또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23일 HUG에 따르면 이른바 '빌라왕' 사건으로 전세사기 피해가 막심했던 화곡동에는 지난해 9월부터 전세피해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개소 이후 이달 12일까지 4160명이 센터를 이용했고, 법률상담·피해접수·긴급주거 지원상담 등 8524건의 상담이 접수됐다.
지난 21일 피해를 증명할 각종 서류를 한아름 안고 센터를 방문한 A씨(50) 역시 보증보험 사기 피해자다. A씨는 지난 2020년 9월 '신축빌라에 당장에 보증보험 드는 게 어려우니 1년 뒤 가입해주겠다'는 말만 믿고 전세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뒤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일방적 통보를 받았다. 새 집주인 B씨는 보증보험 가입 여부를 묻는 임차인들의 연락을 피한 채 잠적했다는 게 A씨 설명이다.
A씨는 "집주인 B씨가 임대사업자 등록 뒤 단 석달 만에 빌라 1000개를 사들였다는 것을 이번 사건으로 알게 됐다"며 "같은 빌라에 거주하는 또 다른 피해자들은 마음에 속앓이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전세사기 피해는 사회초년생·신혼부부 등 젊은 세대가 주로 거주하는 서울 서남권 지역에서 주로 발생했다. HUG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강서구가 99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금천구 32건, 관악구 27건, 은평구 27건, 구로구 2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이 일대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20대 사회초년생 C씨는 이번 피해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꿈이 모두 물거품이 됐다. C씨는 세들어 살던 원룸 집주인에게 퇴실 통보를 했지만 집주인은 "돈이 없어 새 세입자를 구해야 보증금을 내줄 수 있다"고 답변했다.
C씨는 HUG에 전세사기 피해를 접수하려 했지만 '자체 법률상담을 받은 이들만 신고 접수가 가능하다'는 답을 듣고는 또 한 번 좌절했다. 그는 "이미 연차휴가를 수차례 써서 시청 법률상담을 받고 왔는데, 지자체 법률 지원과는 연계가 안되더라"며 "마땅한 신고기관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전세에 매매까지 냉각"
전세사기 피해 지역 중개업소는 들어서는 곳마다 썰렁했다. '전세사기 지역'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전세 거래가 뚝 끊기면서 매매물량까지 줄었다는 게 현장의 전언이다.
화곡동에서 15년 가까이 영업한 태양공인중개사무소 민복기 대표는 "(전세사기가 터진 이후에는) 전세 거래가 이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전세에 발이 묶이다 보니 나올 사람도 없고, 이사 갈 물량도 없는 데다 전세에서 매매로 전환하려는 사람조차 없어 전세에 매매 시장까지 함께 침체되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이어 민 대표는 "세입자 전세 만기일이 가까워지면서 '보증금을 못 돌려줘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그야말로 '멘붕' 상태인 집주인들의 문의가 들어온다"며 "정부 정책으로 갭투자를 부추겨놓고는, 이제는 공시가격 하락과 보증보험 가입 기준이 강화되면서 엉켜버린 실타래가 곧바로 풀리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