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폐업했지만… 한옥마을 식당인데 수입산 못쓰겠더라"

      2023.04.25 18:27   수정 : 2023.04.25 18:27기사원문
국산 콩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의 지속적인 국산 콩산업 살리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련 토종업체들이 고사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국산 콩 전도사' '우리콩 독립투사'로 일컬어지는 함정희 함씨네토종콩식품 대표마저 최근 도산 위기에 처했다.

지방 향토기업으로, 국산 콩 살리기 노력을 인정받아 각종 정부 표창 등을 받았지만 경영악화로 사업을 접어야 할 상황이다. 대기업들이 외면하는 국산 콩산업을 지방 중소 토종기업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산 콩 살리기를 위한 우리 정부의 정책 효과도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수입 콩과 가격경쟁에서 밀리며 국산 콩으로 사업을 하는 토종기업들의 어려움이 더욱 가속화됐다. 파이낸셜뉴스는 '위기의 국산 콩' 산업을 집중 조명하는 특별기획을 통해 활로와 대책을 찾고 토종 콩산업을 살리기 위한 정부, 민간의 관심 및 노력을 제안한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전주=강인 기자】 국산 콩 연구로 노벨상 후보까지 오른 함정희 대표(70)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전주한옥마을에 열었던 식당이 문을 닫으면서 본격화된 경영난에 결국 생산공장까지 경매로 넘어간 것이다.

지난 21일 만난 함 대표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동안 국산 콩을 고집하며 겪어야 했던 어려움에도 강한 의지를 보여주던 그였다. 수입산 콩을 사용하지 않아 높아진 단가로 대형마트 납품을 포기해야 했을 때도, 국산 콩을 고수하는 함 대표를 나무라는 남편의 핀잔에도, 생업전선에서 뛰며 국산 콩을 심층적으로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감내해야 했던 고난의 시기에도 그는 타인 앞에서 항상 웃음을 보였다. 좋은 재료로 좋은 음식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콩의 꽃말인 '언젠가 올 행복'을 믿으며 여러 풍파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그런 그도 지금까지 사투를 벌여온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공장마저 경매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자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그의 인생 역정은 지난 2000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주시청에서 진행한 안학수 고려대 농학박사의 특강을 들은 뒤부터다. 이전까지 수입 콩으로 두부를 생산해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지만 강의를 들은 뒤 '좋은 먹거리'가 우선이라는 가치관을 갖게 되면서 경영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함씨네토종콩식품은 유기농 콩을 사용해 두부와 청국장 환 등을 생산하는 업체로, 2001년 전주 팔복동에서 문을 열었다. 함 대표는 2021년 원광대에서 '한국인의 건강관점에서 콩의 영양, 기원 및 유전자원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60대를 넘긴 늦은 나이였지만 국산 콩에 대한 열정 덕분에 박사학위까지 받을 수 있었다. 사람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큰 힘은 먹는 것에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오랜 연구 끝에 '쥐눈이콩 마늘 청국장 환'을 만들었고, 새로운 가공방식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20여년 모진 세월을 견디며 '옳은 식품'에 몰두한 결과 농림수산식품부장관 표창(2008), 대통령상(2010), 경찰대 감사장(2013),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장 표창(2011), 2018년 서울대 명예의 전당 등재, 2018년 전주 세계슬로워드 수상, 2018년 대한민국 동탄산업 훈장 등 다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2019년에는 노벨생리의학상 한국 후보로 함씨네토종콩식품이 선정돼 기적 같은 일을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 노벨재단은 함씨네토종콩식품을 실사한 뒤 함 대표를 노벨상 생리의학상 후보로 추천했다.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면 최종 수상까지 통상 5~20년이 걸린다. 중국에서는 투유유 중의과학원 교수가 개똥쑥을 이용한 말라리아 약을 개발해 노벨상을 수상한 전례가 있다. 우리 땅에서 나오는 쥐눈이콩(약콩)은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식품이라는 것이 함 대표의 설명이다.

이런 함 대표는 국산 콩을 고집하며 전주지역 한 대형마트 납품까지 포기했다. 마트 납품을 통해 매출이 증가했으나 국산 콩을 사용, 단가가 맞지 않아 자진해서 대형마트 납품을 포기했다. 통상 식품업체는 판로개척에 기업의 존폐가 달린 일이기 때문에 대형마트 납품 포기는 이례적인 일이다.

이런 그를 두고 일각에서는 '우리 콩 독립투사'라고 칭송했다. 함 대표의 드라마 같은 인생 이야기는 다수의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학교와 개인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며 경영환경이 개선되고 있었다. 건강한 음식을 찾는 곳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감을 얻은 함 대표는 지역 대표 관광지인 전주한옥마을에 식당을 차린다. 2017년 전주시 시설을 위탁받아 '함씨네밥상' 식당을 열었다.

하지만 가장 건강한 밥상을 차려내면서도 수익은 창출되지 않았다. 역시 높은 단가가 발목을 잡았고, 시장이 바라는 음식은 '건강'보다 '자극적인 맛'이었다. 임대료가 밀리기 시작한 함 대표는 결국 쫓겨나듯이 식당을 비워줘야 했다.

그는 이 시기를 가장 원망하고 있다. 한옥마을 정체성과 가장 어울리는 자신의 식당을 전주시가 좀 더 지켜봐 주거나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외면했다는 아쉬움이다. 이 과정에서 들려온 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함씨네밥상이 사실은 중국산 콩을 사용한다'거나 '싼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음해였다.

이런 소문에 한 전주시의원은 한옥마을에 양심 없는 음식점이 영업 중이라는 생각으로 함씨네밥상을 비판하는 5분 발언을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발언 준비 과정에서 진실을 알게 됐고, 그 뒤 함 대표의 팬이 됐다.

함 대표는 이 시기부터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밀린 임대료와 과태료 처분은 자금의 흐름을 막았다. 금융기관에서 자금이 융통되지 않았고, 학교급식 납품도 거부됐다. 함 대표의 공장은 결국 경매에 넘어갔고 비워줘야 하는 신세가 됐다.

이 같은 상황에도 그는 국산 콩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수입산 콩을 사용해 단가를 낮추고 시장경쟁력을 갖출 생각은 없나"라는 질문에는 눈을 질끈 감고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어 인터뷰 내내 어두운 얼굴이었지만 국산 콩과 음식에 대해 말할 때는 표정이 금방 밝아졌다. 현대인들이 건강하지 못한 음식을 접하고 있다고 말할 때는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쥐눈이콩의 효능에 대해 말할 때는 눈이 반짝였다. 곧 공장을 비워줘야 하는 현실을 잊은 듯 했다. 어떤 역경도 그가 가진 장인정신을 훼손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함 대표는 "좋은 재료로 좋은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면서 "지금 이렇게 경영난을 겪고 있는데 국산 콩을 지키고, 좋은 음식을 만드는 정신을 지켜줄 사람이 있다면 회사를 내줄 생각도 있다"고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오직 좋은 식품을 만드는 데 집중해왔다. 그런데 음해하는 사람들도 있더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생각은 없다.
건강을 지키는 식품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kang1231@fnnews.com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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