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회계업계 초미의 관심사 XBRL, 그게 뭔데?

      2023.05.10 06:00   수정 : 2023.05.10 06: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국제표준 전산언어(XBRL), 최근 금융당국이 정착에 애쓰고, 회계업계는 새로운 먹거리로 여기는 대상이다. 미국·유럽 등에선 이미 활발히 쓰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시민 일반은 물론 기업 재무·회계 담당자들에게도 낯설다.



‘eXtensible Business Reporting Language’ 약자로, 일단 말부터 어렵다. 쉽게 풀면 모든 기업 정보(재무공시)를 디지털 방식으로 일괄 정리해 유통하는 제도다.
적용되면 투자자들이 재무제표나 주석 등을 엑셀 등을 통해 쉽게 정리·분석해 활용할 수 있게 되고, 영어를 비롯한 각국 언어로 자동 변환됨에 따라 투자자 외연도 확장된다.

‘공시’에 ‘태그’를 붙인다

10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XBRL은 공시되는 정보(Fact)에 표준이름(Tag)을 붙여 문서를 작성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해당 ‘Tag’는 금융감독 기관이 제시한 택소노미(Taxonomy), 즉 분류체계에 따라 일정 양식으로 정해진다. ‘표준화’ 과정을 거치는 셈이다.

이에 따라 동일 기준에 맞춰 공시정보라는 데이터가 정리됨으로써 일괄 비교가 가능해진다. 구체적으론 차세대 언어인 확장마크업언어(XML) 형태로 전환한 결과를 뜻한다. 현재는 각 기업 보고서를 내려 받은 후 개별 값을 일일이 대응시키는 매핑(mapping)과 주석사항을 검색해 비교하는 과정을 거쳐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또 다른 특징은 ‘자동번역’이다. 가령 사업보고서가 국문으로 공시돼도 즉시 영문으로 확인이 ‘실시간’ 가능하단 뜻이다. 국제회계기준(IFRS) 분류체계 사용 시 영어를 비롯해 일본어, 불어, 아라비아어 등 14개 언어로 자유롭게 전환도 가능하다. 외국인 투자자를 국내 시장으로 끌어들일 가장 큰 유인책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금감원 관계자는 “국내외 정보이용자가 상장사나 주요 비상장법인 재무데이터를 엑셀 등 데이터 분석 도구를 활용해 쉽게 분석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IR보고서 등 후행자료에 의존하던 외국인 투자자에게 시의적절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등 국제 신뢰도 제고도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 입장에선 표준 데이터 내 내장된 연산 기능을 통해 재무제표와 주석 간 내용 불일치를 방지해 정확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며 “당국은 한계기업, 산업 리스크 등을 신속·정확히 식별하고 회계법인은 감사 전문화를 통해 회계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누가, 언제부터?

금융감독원은 해당 제도 적용 대상 범위를 차츰 넓어갈 계획이다. 현재 국내에선 비금융업 상장사 재무제표 ‘본문’만 유일하게 XBRL 공시가 의무화돼있다. 금감원에서 직접 개발한 전용 프로그램(작성기)을 활용하면 된다. 교육을 통해 익숙해지기만 하면 별다른 지식 없이도 쓸 수 있다는 게 금감원 측 설명이다.

재무제표 본문의 경우 올해 3·4분기 보고서(11월14일까지 제출)부터 금융업 상장사(유가증권·코스닥시장)와 사업보고서 제출 및 IFRS 적용 대상인 비상장법인까지 적용한다.

주석은 2023년 사업보고서(2024년 3월경 제출)부터 적용되는데, 일단 비금융업 상장사만 그 대상이다. 이때 3개 그룹으로 나뉘는데, 각각 직전사업연도 개별자산 총액 기준 △2조원 이상 △5000억원 이상 2조원 미만 △5000억원 미만이다. 첫 그룹부터 시작해 각각 2023년, 2024년 2025년 사업보고서부터 제출하면 된다.

금융업 상장사는 시스템 개선 후 2024년 중 시행을 검토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미국·유럽 등 주석 공시사례를 참고해 공시 수준을 원칙적으로 세부 항목 단위 속성 값 부여(Detailed Tagging) 방식으로 결정했다”며 “문장위주로 구성된 항목 등에 대해선 하나의 영역으로 처리한다”고 짚었다.

해외는 어떻게 하고 있나
전자인식기호를 이용해 계정과목의 대차관계, 계산방식, 표시순서 등을 정의하는 기업재무정보 국제 표준화 언어인 XRBL은 현재 전 세계 60여개국에서 사용하고 있다. 특히 미국, 유럽, 일본, 대만 등은 금융을 포함한 전 업종에 대해 적용 중이다. 또 한국과 달리 본문뿐 아니라 주석 일부도 표준 데이터화 대상이다.

가령 주석사항을 비교하고 싶을 때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선 정기보고서 내 주석 목차 및 내용을 직접 검색하고 수집해야 하는 반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전자공시시스템(EDGAR)에선 각 데이터를 쉽게 조회할 수 있도록 별도 화면까지 제공된다.

“新 먹거리” vs “부담”

다만 현재 회계업계와 재계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국내 ‘빅4(삼일·삼정·안진·한영)’는 수요 증가에 대비해 부서를 신설하고 인력을 확충하는 등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지만, 비상장법인 등 이에 익숙하지 않은 기업들 중심으론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삼일은 올해 초 XBRL 전문 인력을 충원하고 전담팀을 만들었다. XBRL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인 삼정은 지난 4월 28일 ‘XBRL과 재무공시 선진화 세미나’를 개최했다. 안진은 지난달 초 기업 재무정보 전문가 30여명으로 구성된 ‘XBRL센터’를 출범시켰고, 한영 역시 인력을 추가 영입했다.

하지만 기업들은 당국의 적극적 추진 흐름과 회계업계 움직임에 난감한 분위기다. 회사 규모가 작고 인프라가 미흡한 곳들은 당장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재무제표 본문 XBRL 적용’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향후 그 범위가 주석까지 확대된다면 기업 회계담당자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이란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국은 지난 2007년 K-GAAP 기반 XBRL 시스템을 처음 도입하고, 2011년 K-IFRS 기반 공시시스템으로 전환했으나 9년여 간 이 상태를 유지했고 2020년에야 선진환 로드맵 수립 작업이 개시됐기 때문에 최근 몇 년 간 이뤄지는 빠른 추진 속도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금융업종은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등 소속 협회를 통해, 비금융업종은 한국공인회계사회 등을 통해 지원하겠단 계획이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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