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뱀의 유혹, 사랑과 사기
2023.05.13 09:00
수정 : 2023.06.10 16:48기사원문
사랑이 사기였다면?
[파이낸셜뉴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은 큰 상처가 된다. 그런데, 그 사랑이 사기였던 경우가 있다. 이를 법조 실무에서는 ‘꽃뱀 사기’, ‘연인 빙자 사기’라고 부른다.
‘꽃뱀 사기’는 노련한 법률가가 아니면 사기로 처벌하기 어렵다. 가해자의 변명이 그럴싸해서 범죄가 되는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나와 피해자는 성관계까지 하면서 깊이 사랑했던 사이였다. 나를 사랑해서 조건 없이 도와줬던 것이다. 남녀가 헤어질 수도 있다. 헤어졌다고 해서, 사귈 때 경제적인 도움을 받은 것이 사기는 아니지 않냐?"
"저 좋아서 그냥 준거에요", "헤어져서 연락 끊겼어요"
필자는 초임검사 시절에 ‘꽃뱀 사기’를 처음 봤다. 소위 ‘텐프로’ 룸살롱의 아가씨가 손님과 사적으로 만나며 2000만 원을 빌린 사건이었다. 룸살롱 아가씨가 변명했다. "검사님! 형식만 빌려준 거지, 실제로는 저 좋아서 그냥 준 거예요. 저 룸살롱 그만 뒀어요. 지금 당장은 못 갚아요. 제가 2000만 원을 갚으려면, 룸살롱에서 일해야 하는데, 이걸 원하는 건 아니시죠? 나중에 갚으면 되잖아요. 사기 아닙니다." 필자는 사기가 되는지 한참 고민하다가, 결재권자인 부장검사님과 상의했다. ‘꽃뱀 사기’임을 알게 되었다.
남자 꽃뱀 사기도 있다. 필자는 부장검사 시절에 후배 검사님의 질문을 받았다. "가해자는 사귀는 동안에 경제적으로 힘들었는데, 피해자가 자진해서 대출을 받아 돈을 빌려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후, 헤어져서, 연락이 끊긴 것이지, 돈 떼먹고 도망간 것은 아니랍니다. 사기가 될까요?" 필자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자신의 직업, 학력, 재산, 집안에 관하여 거짓말을 한 것이 있는지부터 조사해보라고 했다. 사업가, 외국 유명대학 출신, 명문가 자제라고 했는데, 모두 거짓말이었다. 이름도 가명이었다. 헤어진 이유도 말이 안 된다. 돈 빌린 후 연락이 뜸해지더니 말도 없이 연락 두절이 되었다. 피해자가 갑자기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란다. 필자는 구속 사안이라고 알려주었다.
"명문대, 대기업, 부잣집" 전부 '거짓말'...꽃뱀의 타깃은 '외로운 사람'
‘꽃뱀 사기’의 가해자는 △외롭고 혼자 사는 사람 △허영심이 있어 유혹에 약한 사람 △순진하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을 찾아다닌다. 이들은 연인 빙자 사기의 피해자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재력이 없어도 피해자가 된다. 피해자 명의를 빌려서 대출을 받거나 피해자의 신용카드를 사용한 후, 대출금과 카드대금을 갚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이렇게 말한다. "일시적으로 내 명의로 대출을 못받고 있는데, 한두 달만 명의를 빌려 달라", "잠시 자금이 돌지 않는데, 곧 받을 돈이 있어 금방 갚을 것이다. 피해자 명의의 신용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 그러나, 사실은 가해자 명의로 대출을 못 받을 일시적 사정이 없고, 가해자가 빌린 돈을 갚을 방법이나 능력도 없다. 피해자에 대한 자기 소개(직업, 학력, 재산, 집안 등)도 대부분 거짓말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좋은 학교 나와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경제력도 있고, 집안도 좋은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이 나를 너무 사랑해줘서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조금씩 차갑게 변하는 가해자에게 놀라고, 연락 두절에 놀라고, 사랑하던 연인의 약속 파기에 절망한다. 마음도 잃고, 몸도 잃고, 돈도 잃었음을 깨닫는다. 참으로 몹쓸 짓이다.
필자는 변호사가 되고 난 후, 검사 시절에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것을 보곤 한다. 공식 수사기록으로는 접하기 어려운, 날 것 그 자체, 진짜배기 세상사이다. ‘꽃뱀 사기’로 피해를 입고도,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사람도 많았다.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인데, 그냥 포기하고 피해를 감수하겠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이 사랑으로 사기를 친다는 것은 너무 슬프다. 사랑하되, 속지는 말자.
[필자 소개]
김우석 변호사는 청와대 파견, 정부 합동 반부패단 총괄국장, 서울중앙지검, 지청장 등을 거친 매서운 검사였다. 검사실에 사람이 들어오면, 구속할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지금은 아주 따뜻하고 인자한 변호사다. 매일같이 선처받을 방법을 고민한다고 한다.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