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미국 비난하더니...‘겨울왕국’으로 영어 가르치는 北
2023.05.12 10:55
수정 : 2023.05.12 10:55기사원문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지난주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평양에 있는 엘리트 학교 ‘세거리초급중학교’ 교실에서 10대 학생들이 2013년 디즈니의 흥행작 ‘겨울왕국’을 한글 자막과 함께 시청하는 모습이 나온다.
교실 속 칠판을 자세히 살펴보면 겨울왕국에 나오는 유명 대사인 “Do you wanna build a snowman?”(눈사람 만들래?)도 적혀 있다.
다큐멘터리는 북한 김정은의 독려로 영어 수업 방식을 바꿨다고 했으며, 겨울왕국을 활용해 영어를 가르치던 북한 여교사는 “문법 중심에서 회화 중심으로 수업을 바꾼 뒤 학생들이 수업에 더 흥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NK뉴스는 학교에서 미국 영화를 수업 자료로 사용한 것을 두고 북한이 해외 미디어 규제를 완화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세거리초급중학교는 평양의 고위 간부 자녀들이 다니는 엘리트 학교인데, 수업용으로 미국 영화를 활용하는 것이 아직까지는 ‘상류층 엘리트’ 자녀에게만 허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다.
NK뉴스는 또 교육 목적으로 특정 장면을 따로 편집해 사용하도록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념적으로 덜 위험한 어린이 콘텐츠라는 점도 고려됐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한편 북한은 2020년 만들어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따라 해외 영화나 방송, 음악 등을 접하는 주민을 처벌하고 있다. 국가의 승인 없이 디즈니 영화 같은 해외 콘텐츠를 시청하면 처형당하거나 종신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20년 ‘제국주의자들’이 글과 음악, 일상용품 등에 사상·문화를 교묘히 숨겨 퍼트리려고 한다며 해외 문물 유입을 경계한 바 있다.
그러나 외국 문화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북한에서 디즈니 콘텐츠가 허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초에는 아동 병원의 복도를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그림으로 꾸민 장면이 북한 국영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2012년 김정은이 참석한 공연에 ‘미키마우스’ 등 디즈니를 상징하는 캐릭터 복장을 한 무용수가 등장한 적도 있다. 2016년에는 북한 정부가 운영하는 시장 가판대에 ‘니모를 찾아서’ ‘미녀와 야수’ 등 DVD가 판매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sanghoon3197@fnnews.com 박상훈 기자